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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서울시, 마음방역 캠페인-귀로 즐기는 서울여행]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가을의 끝자락을 느끼다

기사승인 2020.11.20  16: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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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BBS와 서울시가 함께하는 코로나19 마음방역 캠페인 - 귀로 즐기는 서울 여행 순서입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다시 하루 신규 확진자수가 늘어나면서 많이 불안하고 걱정되실텐데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여행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명승지를 기자가 직접 찾아 현장의 소리와 함께 얘기나누며 마음방역하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자칭 여행전문이고 싶은 기자죠, 사회부 유상석 기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유상석 기자, 어서오세요~

 

< 앵커 >

네, 안녕하십니까? 유상석입니다.

 

< 앵커 >

먼저 ‘귀로 즐기는 서울 여행’ 오늘이 첫 순서인데요, 앞으로 어떤 코너로 운영하고 어떤 소식을 전해드릴 지 먼저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 리포터 >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게 있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예전 같으면 꼭 멀리 가지 않더라도, 늦가을을 느끼러 가까운 곳으로라도 여행을 떠났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조차도 조심스럽게 됐습니다.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기 어렵게 되면서, 이 여행이라는 것, 어딘가로 떠나서 계절을 느낀다는 것. 이게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BBS 불교방송 기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방송기자가 되기 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방송기자로 근무하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젠가는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과 여행을 떠나는, 그런 코너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인데요.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 분들은 물론 어딘가로 이동을 하면서 들으시는 분도 많지만, 뭔가 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켜 놓고 청취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으시더라는 겁니다. 저희 BBS 불교방송 같은 경우도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일과 신행활동, 그리고 휴식을 함께 하시는 분이 많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도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분들. 이런 분들게 간접적으로나마 산책을 하는, 그런 체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명승지를 귀로 즐기는 코너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 앵커 >

그럼, 이제 여행을 떠나볼까요? 첫 방문지는 어디 인가요?

 

< 리포터 >

네. 이번 첫 여행에서는 서울시청 인근을 둘러본 뒤, 가을 낙엽이 쌓여있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일상도 시선을 바꾸면 여행이 되고, 여행 또한 시선을 바꾸면 일상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서울 거리도 외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여행이 아닐까 싶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꿈꾸는 외국의 이색적인 풍경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일상일 수 있지만 어떻게 되면 여행일 수도 있는 여정. 등잔 아래가 어둡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가까운 산책 코스부터 먼저 시작해보자는 그런 의미로 준비해봤습니다.

 

< 앵커 >

그렇게 되면 시작 지점은 당연히, 서울시청 앞 광장이겠군요.

 

< 리포터 >

네. 옛 서울시청사, 지금의 서울도서관 앞에 조성된 광장입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분수가 나오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조성됐던 곳입니다. 서울시가 준비한 여러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했고요. 저도 서울시 출입기자로서 이런 문화 행사를 취재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광장이 생각보다 오래됐더라고요. 서울시의 설명에 따르면,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세울 때, 황제의 거처였던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을 국가 통치의 중점으로 삼기 위해 처음으로 조성한 광장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울광장은 3.1 만세운동, 4.19 혁명, 87년 6월 항쟁 등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 시발점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왔는데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는 우리 대표팀이 출전하는 국제 경기가 열릴 때 시민들이 함께 모여 응원하던 기억도 남아 있는 그런 곳입니다.

 

< 앵커 >

발걸음을 옮겨볼까요. 조금 걸어내려가면 맞은 편에 서울시 의회가 있지요.

 

< 리포터 >

네, 시청 맞은편에 서 있는, 오래돼 보이는 흰색 건물이 바로 서울시 의회입니다. 시의회로 쓰이기 전에는 해방 이후 197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던 건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다시 한 번 유심히 들여다 보면요, 건물 앞 화단 한 쪽엔 작은 표석이 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부민관 폭파 의거 터 - 1945년 7월 24일 애국청년 조문기, 류만수, 강윤국이 친일파 박춘금 일당의 친일 연설 도중 연단을 폭파했던 자리” 이런 내용인데요.

처음 이 건물이 지어진 건 지난 1935년 일제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과 같은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친일 정치집회도 잇따라 열렸었는데요. 세 명의 청년들이 거사를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청년들은 친일 집회가 열리는 부민관을 공격한 건데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 가장 마지막의 의거라고 평가받고 있는 행동을 결행한 겁니다.

당시는 해방을 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었는데요. 태평양전쟁 이후 지지부진해 보이기도 했던 독립운동이 해방 직전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작은 표석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건물만 하더라도 지난 1980년 태평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대부분 헐렸고, 1985년 제3별관을 헌 뒤에는 지금처럼 목욕탕 굴뚝같은 첨탑과 성냥갑 같은 어색한 건물만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인서트 - 덕수궁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

 

< 앵커 >

네, 시의회에서 발걸음을 시청 광장쪽으로 돌려볼까 하는데, 북소리와 나팔소리 같은 게 들리네요? 이건 무슨 소리인가요?

 

< 리포터 >

네. 황제가 머물던 덕수궁의 수문장이 근무 교대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행사가 열리는 소리입니다.

사실 이 수문장 교대식은 그동안 덕수궁을 비롯해 남산과 경복궁에서도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볼거리와 문화 체험의 기회를 선사했는데요. 올해 초 코로나 감염 사태가 시작되면서, 약 8개월 정도 행사가 중단이 됐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부터 덕수궁에서만 시범적으로 다시 교대식 운영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북을 치는 엄고수가 세 번 북을 울리기 시작하면, 수문장 교대식 행사가 시작됩니다. 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근무를 마친 수문군과 새로 투입되는 수문군이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는 모습,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모습, 새로 투입된 수문군이 대한문을 지키기 시작하고, 임무를 마친 수문군은 일대를 순찰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인서트 - 낙엽 밟는 소리]

 

< 앵커 >

아, 낙엽밟는 소리...이제 덕수궁 돌담길로 접어든거 군요. 요즘 날은 좀 쌀쌀해졌지만 아직도 도심 거리엔 낙엽이 쌓여서 막바지 가을운치를 느낄 수 있지요?

 

< 리포터 >

네. 단풍이 ‘절정’이라고 말할 만한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만, 아직도 단풍이 일부 남아있고요, 일부는 길 위에 떨어져 있습니다. 환경 미화원 분들이 바쁘게 낙엽을 쓸어 담는 모습도 보이고요. 

하지만 아직도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은 많기 때문에, 낙엽을 밟으며 막바지 가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시청 일대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휴식 시간에 나와서 산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앵커 >

그런데, 연인들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지 않는다는 이른바 믿거나말거나 미신도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런 미신이 생긴 건지 혹시 조사해봤습니까?

 

< 리포터 >

네. 여기서 ‘여행 전문이고 싶은 기자’가 아닌 ‘현직 BBS 사회부 법조반장’이라는 타이틀을 좀 뽐내보겠습니다.

지금은 이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의 끝자락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불과 25년 전까지만 해도 대법원과 서울가정법원 청사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헤어지려 하는 부부가 마지막으로 걷는 길 아니냐... 이런 인식이 생기면서, 그런 미신이 생긴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됩니다.

참고로 서초동에 법조타운이 들어선 건 1989년이지만, 가정법원은 1995년까지 정동에 있었고요. 2012년에 양재동 신청사를 행정법원과 가정법원이 함께 쓰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이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헤어짐의 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연인들, 그리고 부부들이 손잡고 자주 데이트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인서트 - 덕수궁 돌담길 무명의 악사]

 

< 앵커 >

지금, 갑자기 들리는 악기 소리는 뭔가요? ‘오 솔레미오’ 멜로디 같은데요.

 

< 리포터 >

네. 사실 이 지역 직장인들에게는 이미 유명인사라고 합니다만, 한 백인 남성, 그러니까 외국인이 가끔 이 덕수궁 돌담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악기 연주 실력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좀 갈리는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걸 넘어서 가을을 연주하고, 지나가는 시간을 연주하는 무명의 악사 아닌가... 이런 의견들이 좀 있고요. 저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시도해볼까 해 봤습니다만, 요즘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외국인들이 언론 인터뷰를 꺼리는 상황이어서요. 생각대로 되진 못했습니다.

 

< 앵커 >

시민들도 그렇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궁금해하는 게 하나 있는데요.

덕수궁길을 걷다 보면, 경찰차량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는 곳도 있어요. 무슨 시설이 있기에 그러게 철저히 경비하는 걸까요?

 

< 리포터 >

네. 근처에 미국 대사관저가 있기 때문에, 경찰관들이 경비를 하고 있는 구역입니다. 

‘미국 대사관은 광화문 광장에 있지 않느냐’ 이렇게 되물어보시는 분들도 가끔 계신데요. 대사관은 미국 대사가 업무를 보는 곳이고, 대사관저는 주거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이곳을 지날 수 없느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시민 보행로’가 있긴 합니다. 시민 보행로를 통해서는 덕수궁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 함께 여행하는 곳은 덕수궁 내부는 아니기 때문에, 덕수궁 내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함께 여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서트 - 학교종]

 

< 앵커 >

이건 무슨 소리인가요?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종소리 같은데요?

 

< 리포터 >

네. 들으시는 그대롭니다.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종소립니다. 실제로 학교 여러 곳이 몰려있기 때문인데요.

정동길을 따라서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창덕여자중학교, 예술계통으로 유명한 예원학교가 몰려있고요, 인근에는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도 붙어 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배재고등학교를 비롯해 더 많은 학교가 있었습니다만, 7~80년대 강남 지역이 개발되면서, 상당수의 학교가 이전을 하고, 지금은 이 정도 학교들이 남아있습니다.

다만,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이 덕수궁 돌담길, 그리고 정동길의 풍경이 학교의 교정과 어우러지면서, 상당히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파스타를 비롯한 서양식 음식을 파는 음식점, 카페 같은 게 몰려 있어서 데이트 코스로도 상당히 사랑 받고 있는 그런 지역입니다.

 

< 앵커 >

계속 걷다 보니 정동사거리가 나오고, 정동길도 끝났는데. 그런데 정동사거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수 선생이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서거한 현장이 남아 있다고요?

 

< 리포터 >

네. 정동 사거리에서 맞은 편을 보면 보이는 강북삼성병원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고,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현장인 경교장 터입니다.

원래 이 경교장은 금광 개발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던 한 조선 사람의 소유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해방에 놀란 기존 소유주가 이 건물을 임시정부 측에 내놓으면서 김구 선생이 사용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김구 선생의 사저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동시에 ‘반탁 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그리고 ‘통일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알려지자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각 정당과 단체 대표들이 모여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펴기로 결정했던 곳이 경교장입니다.

나아가 남북이 분단될 가능성이 커지자 ‘통일만이 우리가 살 길이기에 통일을 위해서는 그것이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이라고 해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며 북행을 결의하는 등, 통일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김구 선생은 지난 1948년 4월 19일, 보수 우익 청년들이 북행을 반대하며 경교장 정문을 막아서자 뒷담을 넘어 협상을 위해 북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해 김구 선생이 서거하면서 경교장의 운명도 파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원래 소유주가 되가져간 이후 타이완대사관과 미군 특수부대 주둔지, 그리고 베트남 대사관저 등으로 이용되면서 원래 모습을 잃어갔고요, 1968년에 병원이 되고 나서는 외벽만 그대로 남아있을 뿐, 내부는 원래 모습을 상당 부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랬던 경교장에 지난 2010년 전면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됐고요, 2013년에는 드디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쓰였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 재현돼 시민들을 맞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문화재라는 것, 그리고 역사라는 게 마치 생명체처럼 시민들의 관심 여부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되살아나기도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역사 공간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 앵커 >

오늘의 여행은 여기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유상석 기자, 고생했습니다.

지금까지 BBS와 서울시가 함께하는 코로나19 마음방역 캠페인 - 귀로 즐기는 서울 여행 순서를 들으셨습니다.

유상석 기자 listen_well@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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