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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서른살 사촌 형

기사승인 2020.11.19  09: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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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 사진전 '오늘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 사진전 '오늘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때 사촌 형이 한 살 더 많았으니, 나이는 서른이었겠다. 울산의 항만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컨테이너 끼임 사고로 생을 마쳤다. 고임목이 잘 받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컨테이너 아래 있던 도구들을 수습해 오라는 지시를 받은 후였다. 밤 늦게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촌 형네 가족들은 나를 보고 마른 눈자위 위로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어쩌면 동년배의 사회초년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터였다. 나는 그보다 3년을 더 살아 내년이면 서른넷이 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하루 세 번 마주하는 식탁에도 죽음이 오른다. ‘고기 반찬’은 씹는 순간 삶의 고됨을 잊게 하는 마법 같은 음식이지만, 맛있는 한 그릇을 위해선 뭇 생명이 죽어야 함을 알려준다. 산업경제 발달로 누리게 된 오늘날의 쾌적한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마트, 택배, 방송국, 발전소 등등 산업현장 곳곳에서 기업의 이익, 소비자의 편익과 노동자의 희생이 교환되고 있다. 1년간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람은 2,400명, 하루 7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장애 판정을 받아 노동력을 잃는 사람은 집계에서 빠진 만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희생되고 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사업장의 안전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청 사업주와 기업 법인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권한과 이윤을 갖는 사업자가 책임을 지기 때문에 하급관리자에 책임을 묻는 ‘꼬리 자르기’를 막고, 실질적인 환경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과잉 입법’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산재 사망의 80%는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서 발생한다. 건설업과 제조업 등 다단계 하도급 사업장이 위험을 떠맡고 있는 구조에서 중소기업계의 불안이 크다. 위험관리 실패가 자칫 큰 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건축업과 조선업, 화학산업 등의 위축도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계의 안전보건 관리 비용은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크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노동 관계법이 늘 그러하듯,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은 절대 쉽지 않다. 논의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힘 있는 여당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당론 추진을 머뭇거리다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꺼냈다.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에게 안전 조치 입증 의무를 부여했지만, ‘경제적 제재’에 방점이 찍혀 있어 ‘형사 처벌’을 명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비해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진보진영과 노동계의 반발에 더불어민주당은 두 법이 양자택일이 아닌 ‘상호보완’이라는 입장을 냈다. 두 법은 각각 국회 법사위와 환노위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나라, 영국은 2008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같은 취지의 법을 시행했다. 이름은 ‘기업살인법’, ‘Corporate Manslaughter Act’라는 영문으로 읽을 때 더욱 느낌이 온다. ‘동물의 도살’을 뜻하는 ‘Slaughter’에 Man이 결합된 ‘Manslaughter’의 뜻은 ‘과실치사’다. 동물의 도살이 우리 인간을 위해 불가피하게 이뤄지듯, ‘Manslaughter’엔 ‘고의가 없는 죽음’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사람이 일하다가 죽었을 땐 고의가 없더라도 징벌하는 법이 ‘기업살인법’인 것이다. 국회를 찾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간절히 호소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은 안전에 대한 투자를 필수적으로 해야하고, 소비자는 그렇지 않은 기업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편익과 안락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정도로 위태로운 것이라면 차라리 그 혜택을 거부하고 싶다. 스님들처럼 산속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이다. 스님이 계율을 지키는 이유도 육류섭취를 피하고 적게 가짐으로써 다른 생명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닐지. / 박준상 기자

박준상 기자 tree@bbsi.co.kr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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