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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윤의 세상살이] 걷기 순례가 준 선물

기사승인 2020.10.18  03: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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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국난 극복과 한국 불교의 중흥이라는 염원을 담고 80여명의 스님과 재가자들이 국토를 종단하는 500킬로미터 순례 대장정에 나선지도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상월선원 만행결사 자비순례라고 이름이 붙여진 순례단은 매일 새벽 4시부터 하루 8시간 가량 30킬로미터 안팎을 걷는 강행군을 연일 펼치고 있다. 순례단과 잠시나마 고행을 함께 하려는 일일 체험자들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필자도 지난 16일 일일체험단의 일원으로 자비순례단의 순례 여정에 하룻동안 동참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순례 전날에는 새벽 3시 전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해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도 하고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좀처럼 떨쳐내지 못했다. 운동은 죽어도 싫어하고 먹는 것만 좋아하는 '저질체력'의 대명사로 불리는 내가 길바닥에서 쓰러져 긴급 후송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마음을 더욱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다음날 새벽 3시 40분 깜깜한 어둠속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출발선에 섰다. 다 함께 만행결사 발원문을 합송하고 한명씩 줄을 서서 본격적인 순례길에 나섰다. 철저한 묵언속에 오직 앞 사람의 발만 바라보며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도로 위에 서서 그저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순례단의 모습은 장엄함과 엄숙함 그 자체였다. 경북 문경의 산골 마을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와 닭울음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동트기전 새벽의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걸은지 2시간 반쯤이 지나자 날이 밝으면서 주위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을 정취가 가득한 황금 들녘과 햇살에 반짝이는 강변 풍경이 반갑게 순례단을 맞는 듯했다. 푸른 가을 하늘에 대자연을 품은듯한 들판,산을 뒤덮은 나무와 꽃의 은색물결에 이르기까지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오직 내 몸에만 의지한채 뚜벅뚜벅 걷기에 열중하는 동안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내 자신과의 온전한 대화가 비로소 시작됐다. 다른 이들과 뒤섞여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보내는 동안 미처 살피지 못한 나를 천천히 탐구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내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왔는지, 반성할 일은 얼마나 많은지, 요즘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지, 그리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마치 숙제를 하듯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동안 놓쳐왔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고 마음 속에는 충만함이 가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걷기를 시작한지 7,8시간쯤 지났을까 ? 하루동안 배정된 순례가 마무리되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다. 발과 다리가 쑤시고 몸은 무거웠지만 해냈다는 뿌듯함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밀려들었다. 걷는 동안 두 다리는 고생했지만 내 마음과 내면은 호강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와의 소중한 만남을 통해 이런 결심을 하게 됐다. 늘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 나, 열등감에 자주 사로잡히고 상대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존재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칭찬해줘야겠다는 생각말이다. 사실 우리는 늘 걷는다. 인생 자체가 걷기의 연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걷기가 주는 선물을 미처 몰랐다. 선물의 혜택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라도 걷기에 올인해야겠다. 비록 두 다리에게는 고생길이 되겠지만

 

 

전경윤 기자 kychon@chol.com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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