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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당신과의 기억, 당신의 부재

기사승인 2020.07.21  17: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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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사내 인사이동을 앞두고, 내심 서울시청 출입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신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국회에서나 지방선거 기간에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어떤 점이 당신을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만들었는지 더 가까이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2020년 5월 30일
어쨌든 당시에는 국회 출입기자로 부처님오신날을 맞았고, 관음종 본산인 낙산 묘각사 취재를 지시받았습니다. 총무원장 홍파스님의 법문이 한창일 무렵, 누군가가 급히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뒷모습만 보인 누군가는 귀빈석에 앉으시라는 스님의 권유를 한사코 사양하다 마지못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아 이건 시청으로 가라는 부처님의 뜻이구나”는 망상도 했습니다. 법요식이 끝나자마자 당신에게 가 괜한 배짱을 부려봤습니다.

“다음 달부터 시청에 출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2020년 6월 8일
원하던 서울시청으로 새 출입처가 결정되고, 첫 출근이었습니다. 때마침 당신의 코로나19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원하는 서울시민들은 증상이 없어도 무료로 코로나19 선제검사를 시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장 예산 걱정이 들었지만, “시민이 백신이다”던 당신의 확신에 찬 표정은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2020년 7월 6일
민선 7기 2주년 기자간담회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서울이 개발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도시가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불평등’과 ‘약자’, ‘사람’ 이라는 단어가 간담회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린벨트는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보물”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대권 행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말을 아꼈지만, 시민들이 진정성을 알아 줄 거라며 아주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시민을 위한 10년의 조용한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당신에게서, 불길한 징조는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되짚어 보면, 특히 기억에 남는 언급이 있습니다. “고건 전 시장의 통찰력으로 서초구에 서울추모공원이 생겨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확히 일주일 뒤, 당신과 그곳에서 그렇게 만나게 될 줄은 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020년 7월 9일
오후 6시. 근무 비번으로 집에서 쉬고 있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립니다. 진동이 계속 울리기에 전화인줄 알았지만 카카오톡 메시지가 연이어 오고 있었습니다. 부장은 물론 기자 친구, 고향 친구 할 것 없이 다 “무슨 일이냐”고 했습니다. 순간,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일이지’ 덜컥했습니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당신이 사라졌다는 뉴스가 헤드에 올라 있었습니다. 부장의 지시로 급히 돌아간 시청 기자실에서 밤늦도록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의 부재
67자의 짧은 인사만 남기고 당신이 떠난 뒤, 시청 앞 서울광장의 여론은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 '조국 대전'에서 이름만 바뀐 듯 했습니다. 시청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한 시민과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뒤에서는 당신의 5일장을 반대한다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당신을 위해 빗속에서 오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의 선택은 잘못됐다고 느꼈고, 마지막까지 약자를 위하자던 당신의 주장을 떠올려도 별 해명 없이 떠난 선택은 옳지 않아 보입니다.

가장 오랫동안 시장실에 머물렀던 만큼, 시정 곳곳에 당신의 흔적은 짙게 남아 있습니다. 그린벨트나 복지정책처럼 하나같이 정치적 이해가 갈리는 현안들입니다. 남은 이들은 당신의 철학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늘공(늘 공무원)’들이 당신의 유산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당사자가 빠진 채 벌어지는 진실게임을 취재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무엇보다 '피해를 호소하는 직원'으로 불리다 이제 겨우 '피해자'가 된 이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당신이 떠난 지 열흘, 당신의 부재는 어떤 이유로도 크게 느껴집니다.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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