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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현세 "불교 포교, 이제 웹툰으로 해야 한다"

기사승인 2019.05.19  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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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시간은 이현세 만화가와 함께합니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이현세 작가는, 1979년 월남전을 다룬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등단했습니다.
특히, 20대의 나이에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로 만화를 대중문화 영역을 리드하는 콘텐츠로 끌어올리며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1999년에는 당시 경찰로 근무하던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과 경찰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포순이 캐릭터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지난해 독립운동가 초월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웹툰 `초월`을 연재하며 불교계 독립운동을 대중에게 알린 공을 인정받아,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 조계종 불자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만화가협회장을 역임한 이현세 작가는 현재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 출연 : 이현세 만화가 /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이현세 만화가 선생님 모셨습니다. 선생님, 한 주간 잘 계셨습니까?

▲이현세 : 네, 잘 있었습니다.

△강동훈 : 부처님 오신 날 자랑스런 불자대상 그 장면을 보면서 왜 이현세 선생님이 불자대상을 받았을까, 라는 의문도 많았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쭉 풀어가면서 하기로 하고 청취자, 시청자 여러분께 먼저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현세 : 안녕하세요? 만화가 이현세입니다. 반갑습니다.

△강동훈 : 이현세 선생님이 목이 약간 불편하셔서 목소리가 좀 정상되지 않는다는 점 양해해주시고 들어주시고, 그러나 얼굴 하나는 보십시오. 모델 뺨치는 얼굴입니다. 유투브 시청하시는 여러분들, 이현세 선생님 잘 보시고 진행하는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궁금한 것이 조금 전에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항일 운동가이시고 진관사에서 오래된 태극기를 발견하신 초월 스님 이야기를 만화로 만든 배경은 어디 있습니까?

▲이현세 : 아주 약간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요. 다음이라는 웹툰이 있습니다. 거기서 사장님이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데 한 번 해줄 수 없겠냐고 해서 누구냐, 이러니까 초월 스님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그때까지는 진관사 태극기라는 이런 이야기는 익숙하게 전해 들었는데 초월 스님은 약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분은 아니셨거든요. 그런데 그 전전해에 불국사 월산 스님 이야기를 한 번 하려다가 못했어요. 

△강동훈 : 입적하신 월산 큰 스님.

▲이현세 : 이것도 안하다가는 벼락 맞겠다 싶어서 무조건 하겠다고, 해보고 싶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죠. 그러니까 은평구 구청장님, 또 진관사 주지스님 만나서 태극기랑 유품들 다 봤죠. 보고 나니까 이 만화는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강동훈 : 사실 초월 스님 하면 후손들, 젊은 층한테는 이미지가 확 와 닿지 않고 그것을 구전이나 말로 하면 이해가 안갈 텐데. 젊은 층이 좋아하는 웹툰, 만화를 통해서 한다는 것은 좀 더 초월 스님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폭 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텐데. 그 스토리를 보고 만들면서 나름대로 느낀 점이 있었을 텐데?

▲이현세 : 실존 인물이나 위인을 다룰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다큐 그대로 다루면 약간 지루해지고요. 약간 교육적이고 지루해지고. 너무 또 왜곡하거나 과장을 하면 역사적 사실에도 어긋나지만 뒤에 남아계신 분들한테도 피해를 끼치는 것이고.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음식도 아무리 예뻐도 맛이 있지 않으면 음식이 아니듯이 이 콘텐츠를 읽지 않으면 그만한 효과가 없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고민을, 어떻게 하면 초월 스님을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을까, 하면서 초월 스님이 어떤 분이었나를 알리기보다는 이러한 분이 계셨다는 존재감을 전달하는데 더 목적을 뒀죠. 나중에 초월 스님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따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여기서는 진관사 수륙재하고 수륙재를 찾아온 초월 스님이라는 컨셉 하에서 일단 재미를 집어넣어서 초월 스님에 대해서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분이 계셨나, 까지만 전달하려고 그랬죠.

△강동훈 : 사실 자료를 보면서 신문지 돌돌 말려진 태극기, 그 태극기가 다시 세상 밖으로 해방이 된 이후에 나타나서 지금 현재 곳곳에서 활용을 하고 있잖아요? 태극 모양이 좀 특이했어요.

▲이현세 : 그것이 3.1 운동 이전에는 우리가 그런 태극기를 썼더라고요. 저도 진관사 태극기를 보고 그리면서 이 시기에는 이 모양이었구나, 아주 생경하지만 느낌이, 울림이 컸었죠. 그 태극기가.

△강동훈 : 만약에 일반적으로 제자들이나 계속 임계하면서 보관했다면 아마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초월 스님께서 잘 숨겨놔서 후손이 발견하는.

▲이현세 : 그러니까요. 어떤 기적 같은 것은 있는 모양이에요. 6.25 때 진관사가 다 불에 탔다고 하거든요? 칠성각만 빼고. 칠성각이 6.25 때 불에 탔으면 그것은 없었죠. 그런데 그것만 안 탄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 건물이 낡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 칠성각을 보수해야 되겠다, 라고 해서 벽을 뜯고 보수를 할 때 그 벽 속에서 나왔으니까 아주 기적 같은 일이죠. 모든 것은 그렇게,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는 것 같아요.

△강동훈 : 그러니까요. 진관사가 6.25 때 불이 났지만 그전에 또 칠성각이라 하면 일본인들도 나름대로 일본 신앙에 불교적 요소가 많은데 칠성각 같은 경우는 약간의 샤머니즘의 영향도 같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일본인들도 그것은 안건들 것이라는 어떤 초월 스님의 예지력으로 흙으로 덮어서 숨기지 않았나.

▲이현세 : 그렇게는 접근 안 했는데 그럴싸하네요. 

△강동훈 : 아마 우리 스님들이 일본 불교하고 통합되면서 여러 가지 그런 것을 피해가는, 독립운동 하시면서 그런 것들이 흔적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아마 초월 스님도 그런 생각에 칠성각에 숨기지 않았을까, 하는데.

▲이현세 : 초월 스님이 종단 갈등이라든가 조선총독부가 한국 불교계를 섞어서 희석시키려고 했을 때 많이 고생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런 기록이 있더라고요.

△강동훈 : 그러면 아까 월산 큰 스님 말씀도 했는데, 이런 불교 관련 스토리를 만화 웹툰을 그리면서 이것을 안 하면, 다음에 못 그리면 벼락 맞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월산 스님 것은 왜 안하셨어요?

▲이현세 : 그때 월산 스님은 취재가 초월 스님보다 훨씬 힘들었었어요. 왜냐하면 월산 스님이 꽤 많이 행적을 남기셨더라고요? 그러면 그것을 다 취재를 해야 되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사실 제 죄가 크죠. 그러다 보니까 불국사에서 제작하려고 하는 그 경비 가지고는 월산 스님을 다 스케치하기가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종산 스님하고 조정하는 와중에 시기를 놓쳐버렸어요.

△강동훈 : 인연이 안 닿았군요. 그때는.

▲이현세 : 그 해가 100주년이었거든요. 탄신 100주년. 그게 넘어가버리니까 약간 타이밍이 엇박자가 나면서 뒤로 미루게 됐죠. 그래서 지금도 초월 스님 이야기하고 난 뒤에 제일 먼저 종산 스님이 생각났죠. 죄스럽네요.

△강동훈 : 아마 이 방송도 들으실 것이라 보는데, 한 번 다시 인연을 맺으셔서 끊어진 인연을 다시 맺으면 큰 스님 일대기를 다시 재조명하는 그런 일도 올 것이라 봅니다. 선생님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계시잖아요? 제가 세종대학교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강단에 서신 지가 몇 년 정도 되셨습니까?

▲이현세 : 24년째인데요. 22년까지는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였었어요. 그리고 예체능대에 들어갔었죠. 그런데 2년 전부터는 공대로 가 있습니다. 만화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라고 해서 만화애니메이션텍과인데, 융합콘텐츠학과 소속입니다. 학교에서 콘텐츠를 과학하고 융합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그런 인재를 육성하고 싶다고 해서 공대 쪽으로 옮긴 거죠.

△강동훈 : 최근에 한 경제지를 보니까 시진핑 주석이 AI, 인공지능 쪽에 엄청난 투자를 하겠다. 그 다음에 문화적 게임 이런데 관심을 보이던데. 사실 우리 만화가 젊은 층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던데. 그쪽 선생님 제자 분들이 몇 분 정도 나오셨어요? 24년이면 꽤 나왔을 텐데?

▲이현세 : 초기에는 한 기에 한 20명 됐었고 지금은 40명 되니까 한 1,000여 명 정도 배출된 것 같습니다.

△강동훈 : 과거에 선생님이 만화를 배울 때는 개별 취미 활동을 하다가 어느 개별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때하고 요즘 그런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이현세 :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요. 옛날은 훨씬 결속력이 있었고요. 사제 간에 훨씬 더 끈끈하죠. 한 번 문하에 들어가면 데뷔해서 결혼할 때까지 책임을 졌었거든요. 대신 제자로 들어오면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 따라와야 되죠. 그러니까 이 문하생들이 테크닉은 빨리 익힙니다. 만화를 빨리 그릴 줄 아는데 대신 나중에 자기 것을 만들려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 미적 기준을 그대로 따라왔기 때문에. 자기 세계를 만들려면.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반대죠. 많은 교수님들이 각자 다른 견해와 사상을 전달해주니까 그 중에 아이들은 선택해서 자기 것을 만들면 되니까 빨리 자기 것을 가지고 있는 대신에 테크닉적으로 아주 서툴죠. 오래 걸리죠. 잘 그리려면. 지금 현재 웹툰 보면 재미는 있는데 디테일이나 퀄리티 자체가 밀도가 있는 작업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옛날보다.

△강동훈 : 사실 만화가 하면 그림만 잘 그려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기획, 문장력, 여러 가지 종합예술을 지면에 옮긴 것이다, 이것이 만화였는데. 요즘은 지면 갖고는 산업성이라든지 경제성이 승부가 안 되잖아요?

▲이현세 : 그렇죠. 이미 오래 전에 디지털로 넘어갔고요. 지금 특히 학교에 들어오는 Z세대는 완전히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하죠. 기본적으로 이 친구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인터넷이 깔려 있었던 세대들이죠. 그래서 그 앞 세대하고 굉장히 많이 다른데. 저 같은 경우는 그렇지만 지금도 수작업을 그대로 합니다.

△강동훈 : 선생님 은사는 누구셨나요?

▲이현세 : 제 선생님은 나하나 선생님하고 이정민 선생님, 또 하영조 선생님 세 분이 있었는데.

△강동훈 : 그 분들의 혹시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50대, 60대 이런 분들이 기억나는 만화를 하셨나요? 그 당시에?

▲이현세 : 하셨는데 그렇게 기억은 못하실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하영조 선생님은 꼬마 시리즈를 하셨던 분이고. <당술 꼬마>, <봉술 꼬마> 이걸 했던 분이고. 이정민 선생님은 <꽃서울 창경원> 이런 개그 만화를 주로 했었죠. 그러니까 저는 원래 사실적인 극화체를 좋아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개그 작가 선생님들한테 개그를 배웠는데, 그것이 나중에 외인구단이나 이런 만화를 그리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됐죠. 표현력이 그만큼 넓어진 것인데. 지금도 저는 제자들에게는 전부 디지털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제가 초월 스님 작업할 때도 그랬지만 초월 스님 작업할 때 선 작업까지는 수작업으로 합니다. 종이에 연필과 펜으로. 그리고 뒤에 편집, 컬러링만 디지털 손을 빌리죠. 그 이유가 아직도 제 감성은 냄새라는 기억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필 깎을 때 나는 향나무 냄새, 종이 펄프 냄새, 그리고 잉크 냄새. 이 냄새가 와닿았을 때 무언가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강동훈 : 작업 도구 가운데 모나미 잉크라든지 그런 것은 요즘 구하기 힘들 텐데?

▲이현세 : 옛날에 사둔 것도 있고요. 잉크는 요즘 일반적인 잉크를 사서 먹을 가지고 다시 갈아서 제가 만들어서 씁니다.

△강동훈 : 만들어서 쓰십니까? 저는 우리가 흔히 문방구 가서 사서.

▲이현세 : 지금은 없습니다. 만들어서 써야 해요.

△강동훈 : 소위 말하는 요즘 턴테이블 좋아하는 음악가인데 테이블의 핀을 갈 수가 없어서 그것을 다시 요즘에는 규모를 작게 해서 파는 곳도 많더라고요?

▲이현세 : 만화도 파는 데가 없어서 제가 만들어야 됩니다. 펜촉을 사려면 세계일주해야 되고요. 옛날 펜촉 그걸 사야 되거든요.

△강동훈 : 저희들도 옛날 고등학교 다닐 때 G펜이라든지 펜 같은 것은 다 나왔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기 드로잉펜으로만 다 해버리는.

▲이현세 : 그래서 가끔은 연필을 가지고 아주 정교하게 드로잉해서 바로 채색작업을 하는 작업도 해보고 있습니다. 그것대로 또 재밌습니다.

△강동훈 : 만화가 이현세 교수님하고 뉴스와 사람들 진행하고 있는데, <공포의 외인구단> 외에도 많은 작품을 사실은 했잖아요?

▲이현세 : 까치 시리즈가 굉장히 많죠. 

△강동훈 : 우리가 유독 <공포의 외인구단>이 나올 때가 바로 프로야구가 막 시작되어서 붐이 할 때니까, 기획을 그때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보고 기획하신 겁니까?

▲이현세 : 사회적 분위기를 본 것도 있지만 우리 만화가들의 입장을 되돌아본 계기가 됐었어요. 그때 80년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군부가 들어서면서 첫 번째 한 정화작업이 삼청교육대잖아요? 일반적으로 국민들은 어느 날 보니까 거리가 깨끗해졌어. 그 다음에 노린 것이 무엇이냐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뭐지, 라고 했을 때 만화가 찍혔습니다. 아이들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학부모들이 만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만화가들이 다 지금 리라국민학교 밑에 애니메이션 센터가 있습니다. 거기에 안기부가 있었거든요? 그 안기부 마당에 우리가 다 불려갔죠. 

△강동훈 : 불교계의 10.27 법란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네요?

▲이현세 : 대한민국의 모든 작가들이 거기 가을에 안기부 마당에 쭉 모여서 자정결의를 했습니다. 때마침 분위기도 맞춰서 부슬비도 약간 부슬부슬. 이렇게 막연한 겁니다. 우리는 불량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웃국가를 폄훼하거나 비방하는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아주 모호하죠.

△강동훈 :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세요?

▲이현세 : 기억하죠. 그것이 하도 머리에 박혔으니까. 그래서 그것을 결의를 하고 내려오는데 젊은 작가들이 너무 참담했죠. 이러다가는 만화가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강동훈 : 80년대면 이현세 선생님께서 그때 나이가, 한 젊은 작가라면 그 당시 나이가?

▲이현세 : 그때는 27, 28 됐을 때.

△강동훈 : 나름대로 혈기가 있었네요?

▲이현세 : 막 결혼하고 혈기가 있을 때죠. 젊은 작가들이 모여가지고 만화가 왜 이런 대접을 받지? 결국은 어른들이 공유하지 않는 문화라는 거죠. 그 당시 한국에 대통령령으로 모든 대한민국 만화는 아동에 준한다는 대통령령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모든 만화를 아동 수준에 검사를 하니까 그때.

△강동훈 : 조금이라도 성인 냄새가 나면 다?

▲이현세 : 안됐죠. 그런데 그때 고우영 선생님 <일지매>, 수호지가 막 터졌을 때. 그런데 이게 책으로 못 나오는 거예요. 책으로 만들려면 아동심의에서 그걸 다 걸러야 되니까 반금련이라는 무대를 다 들어내야 되요. 그래서 만화가 아동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남녀노소가 즐기는 것이 아니니까 만화는 언제든지 힘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없앨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이 만화를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남녀노소가 다 읽는 만화로 만들어봐야 되겠다. 외인구단은 그 첫 작품이에요. 어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의 이야기에다가, 스토커 이야기죠. 한 번 사랑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스토커 이야기에다가 패자부활전, 강한 것이 아름답다, 모든 것을 잃은 친구들이 지옥훈련을 통해서 다시 지배자로 재등장하는 그런 것을 아동들이 봐도 괜찮을 프로야구로 포장을 했던 거였어요. 실제로는 어른 드라마죠. 외인구단은. 그런데 그것을 아이들이 봐도 좋은 드라마로, 가족 드라마로 포장을 한 겁니다. 제가 그런 목적을 가지고 만든 첫 번째 만화가 외인구단입니다. 제목이 공포가 들어가니까 약간 아동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대박이 거의 우연의 산물이잖아요? 외인구단도 그런 면으로 보면 그 정도로 크게 반향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겁니다. 그게 그런 와중에 외인구단의 헤드카피가 네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지 해줄 수 있어, 라는 러브 메시지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 라는 젊은이들의 도전 그런 의욕하고 그 다음에 하기 싫은 하지 않고 살고 싶다, 라는 직장인들. 그것이 80년대 암울한, 군사정권 재등장에 의해서 암울했을 때 젊은 친구들하고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강동훈 : 그렇게 치밀한 기획이 들어간 것 같은데, 신군부가 그런 것을 보고 선생님이 작업하는데 혹시 탐지하거나 그런 것은 없었습니까?

▲이현세 : 그것은 없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주로 외인구단은 심의실 심의요원들하고 많이 부딪쳤죠. 손병호 감독 같은 얼굴 너무 강하고 너무 어둡다, 아이들한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것들, 표현에 대해서 이렇게 있었는데. 정권하고 문제가 됐던 것은 그 뒤에 항일 만화라든지 <남벌> 같은 가상전에서 문제가 많이 됐었죠. 예를 들면 그때는 인공기를 그릴 수 없는데 <남벌>에서는 인공기를 그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강동훈 : 선생님 스물 일곱 정도 그 당시에 보면, 지금도 그런데 굉장히 잘생겼을 것 같아요.

▲이현세 : 그때 조금요. 

△강동훈 : 사실 옆에서 가보면 제가 강신성일 선생님도 자주 뵙는데 좀 이미지가 비슷해요. 혹시 영화배우 하라, 모델 하라, 이런 제안은 안 받으셨나요? 충무로 쪽에 있다 보면 그런 이야기 많이 들을 텐데?

▲이현세 : 감독 제안도 받았고 출연 제안도 받았는데 제가 그전에 광고를 하나 찍어봤거든요? OB 수퍼 드라이 광고를 찍어봤어요.

△강동훈 : 주류 광고를?

▲이현세 : 예, 그래서 맥주 한 번 마시는 것을 찍었는데. 새벽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맥주 먹고 찍은 기억이 있는데요. 그래서 그때 제가 한 게 무엇이냐면 카메라 울렁증이 있더라고요. 바로 알았습니다. 제가 연기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것이 그렇게 낯설고 뭔가 큐 사인이라든지 주는 대본에 의해서 제가 움직인다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는 바로 알았는데요.

△강동훈 : 요즘은 실버 모델들도 많이 나오던데, 그런 것보다도 선생님은 그 나름대로 유투브를 보고 계신 분들 보면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고. 만화가도 만화가지만 선글라스도 끼고. 참, 그 옆에 보니까 카네이션이 있어요?

▲이현세 : 스승의 날이라 엊그제 학교 가서 받았습니다.

△강동훈 : 선생님으로서도 인기가 많고.

▲이현세 : 인기 좋습니다. 아마 학생들하고 대화가 잘 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

△강동훈 : 주로 항상 만화도 만화지만 대화에 스토리를 갖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이현세 : 면담 많이 하죠.

△강동훈 : 인생에 대해서도 많이 면담을 하죠?

▲이현세 : 학생들이 제일 불안해하는 것이 미래잖아요? 제가 재능이 있습니까? 제가 훌륭한 만화가가 될 수 있을까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그런 면담인데, 그러면 제가 그러죠. 나도 내가 부자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마음의 소리, 운명을 따라가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림 그리고 싶냐, 그러면 네가 마음이 이야기하는 대로 따라가라. 그러면 저는 뭘 믿고 가야 되죠, 그러면 확신 하나도 없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를 믿고 가는 길이니까 근거 없고 확신할 것도 없지만 자기 확신을 가지고 가는 수밖에 그러면서 그때마다 박찬호 선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가서 본인이 극복한 이야기를 들려주죠. 박찬호도 극복한 것을 보니까 지독한 자기애더라고요. 자기가 너무 아까워서 포기를 못 하겠더라는 거예요. 아이들한테 그게 필요한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보고 자기가 너무 아까워서 포기하지 않는 그 확신이 유일하게 아이들한테 생명줄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강동훈 : <공포의 외인구단> 하면서 그때는 지역별 연고로 탄생된 프로야구 팀이었는데 지금 박찬호 선수 이야기하는 것 보니까, 지금 혹시 선생님이 좋아하는 프로야구 구단은 어디세요?

▲이현세 : 한화입니다.

△강동훈 : 대전을 연고로 하는? 왜 거기를 좋아하십니까?

▲이현세 : 원래는 삼성이었는데요. 총각 때는 삼성이었는데 집사람이 해태에요.

△강동훈 : 영호남입니까?

▲이현세 : 결혼하고 보니까. 그래서 막 이렇게 경기할 때 그 당시에 해태가 정말 잘했었거든요? 선동렬 설수가. 막 이렇게 응원하다가 경기가 끝나고 나면 두 사람이 분위기가 약간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이래서 안 되겠다고 아이들보고 너희들은 서울이다, 그래서 OB 이렇게 해줬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약간 연고지가 없으니까 야구 게임이 시시해지는 것 아시죠? 야구라는 건 자기 연고가 있고 개개인의 그걸 딱 알아야만 작전도 예측할 수 있고 재미가 있어지거든요. 박찬호 선수, 그 다음에 김성근 감독을 알게 됐는데, 김성근 감독이 <공포의 외인구단>의 손병호 감독 모델이에요. 왜냐하면 재일교포 선수로 일본에서 왔고 그리고 훈련만이 너희를 강하게 해준다는 약간 스파르타식이고. 

△강동훈 :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도 했잖아요?

▲이현세 : 그러니까 더 친해졌죠. 그래서 구장도 자주 놀러가고 그랬었는데 그 바람에 완전히 한화 골수팬이 됐는데 거기다가 한화 팬들의 덕목이 있지 않습니까? 한화 팬이라면 보지도 않고 결혼할 수 있다, 그런 믿음. 한화 팬들은 최고죠.

△강동훈 : 이 방송을 듣고 있는 타 구단, 이현세 선생님 존경하시는 분도 이건 순수한 프로야구 하나의 팬으로 말씀하신 거니까. 이현세 선생님은 고향이 경주라고 들었습니다. 경주하면 고대의 도시고, 경주 분들이 보면 약간의 보수성도 강해요. 

▲이현세 : 보수성 강합니다. 아주 보수적입니다.

△강동훈 : 정확하게 태어나신 곳이 경주입니까? 아니면 인근 혹시?

▲이현세 : 태어난 건 포항에서 태어났고요. 포항 바닷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일곱 살에 경주로 이사를 와서 모든 학연이나 이런 것들이 경주에 있죠. 

△강동훈 : 김석기 의원도 경주시던데?

▲이현세 : 2년 선배입니다. 중학교 2년 선배. 

△강동훈 : 하여간 이 자리 뉴스와 사람들에 출연했던.

▲이현세 : 그래서 그 분이 약간 홍보 마케팅에 재능이 있으신 분이시죠.

△강동훈 : 경찰 출신인데도요?

▲이현세 : 경찰에 있을 때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그 다음에 그만두고 공항공사 갔을 때 공항공사 캐릭터 다 같이 만들었죠.

△강동훈 : 포돌이를 이현세 선생님이 만드신 거예요?

▲이현세 : 제가 포돌이 아버지인데요.

△강동훈 : 맞아요. 그걸 그때 언뜻 이야기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 그 분이 이현세 선생님이셨구나.

▲이현세 : 저는 절대 음주운전하면 안돼요. 포돌이 아버지니까.

△강동훈 : 포돌이 옆에는 포순이입니까? 그런 만화 캐릭터를 하면서 고객이나 시민들한테 굉장히 친근함을 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 또 많이 알려져서 세계 곳곳 국제 경찰, 인터폴 이런 데서도 하나의 모델링으로 됐다고 들었습니다.

▲이현세 : 몇 년 전에 중국 천진 위에 가니까 천진 파출소에 마스코트가 포돌이로 붙어 있고.

△강동훈 : 그때 소감이 어떻던가요?

▲이현세 : 재밌었죠. 그만큼 그 사람들이 볼 때 친근감이 가고 예쁘다, 그러니까 그냥 갖다 쓴 거죠. 지금은 바꿨을지도 모르죠.

△강동훈 : 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현세 선생님 뉴스와 사람들 모셔서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고 하는데 시간이 거의 정리가 되어 가는데. 혹시 올해의 불자대상을 받으셨는데 궁금한 것이 법명이 궁금한데.

▲이현세 : 저 보덕입니다. 진관사 계호 스님이 주셨습니다. 

△강동훈 : 법명과 함께 불교에 인연이 계속 이어질 텐데, 앞으로 한국 불교에 저희 BBS 불교방송도 유투브를 통해서, 새로운 뉴 미디어를 통해서 많이 포교를 하려고 하는데 만화, 웹툰을 통해서 포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이현세 : 굉장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들어가 보면 스님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고요. 이번에 처음에 불자대상이라고 그래서 저는 그렇게 큰 상인 줄 몰랐습니다. 겁도 없이 조계사로 갔었는데 생중계에다가 상이 엄청 크더라고요. 그리고 불교 작품상이 아니고 불자대상이니까 뭐지? 나는 그렇게까지 독실한 불자는 아닌데? 이런 죄스러움도 있고. 그래서 꼭 까불고 놀다가 부처님 손바닥 만나는 손오공 같은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건 무슨 인연일까. 제가 조금만 알고 있어서 불자대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인 걸 알았으면 제가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몰랐기 때문에 성큼 불자로서 다가간 것 같은 그런 운명 같은 것이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고 있고요. 그리고 원효 스님이든 모든 스님들 이야기가 사실 굉장히 드라마틱하거든요? 그리고 예를 들면 청평에 있는 청평사 같은 경우도 보면 중국 공주와 상사뱀과 스님과의 설화가 얽혀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잘 발굴하면 전혀 딱딱하지 않게 불교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고 또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고승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 수도 있죠. 저는 그러니까 콘텐츠를 홍보용이든 교육용이든 기본적으로는 재미있어야 된다고 보거든요.

△강동훈 : 저는 우리 불교의 사찰에 가보면 벽화가 있지 않습니까? 벽화들이 대부분 불자들한테 그 당시에 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녀자들한테 만화를 통해서 부처님 일대기를 벽화로 만들어줬고, 이번에 영화 신과 함께 같은 경우에도 용주사에 있는 벽화를 보고 감독이 구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사후세계라든지 이런 것들을. 결국은 이런 기록과 만화의 쉬운 접근, 포교의 매스 미디어 매체가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현세 : 좋은 콘텐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동훈 : 이렇게 시간이 다 됐는데 마지막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말씀을 갈음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현세 : BBS를 보시는 분들 또 독실한 불자 분들 제가 감히 이번에 불자대상을 받았는데 용서 많이 해주시고요. 정말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불교 나라를 전달하는데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동훈 : 감사합니다.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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