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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당시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단 까닭은?

기사승인 2019.05.17  18: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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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은 지났지만, 아직도 부처님오신날의 감동과 환희는 남아있는데요.

오늘 뉴스인사이트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불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화부 홍진호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홍 기자 먼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에도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달았다고요?

 

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에 보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관등을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관등은 요즘 말로 하면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다는 것을 일 컸는데요.

어디서 어떻게 연등을 달았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연등은 달았던 것은 분명하고요.

이순신 장군을 도와 많은 스님들이 해전에 참가했기에 군진에서 관등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스님의 말 들어보시죠.

[원철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난중일기에 나와 있는) 등을 어디다 달았을까, 어디에 가서 관등을 하셨을까가 안 나와 있어요.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군진을 비우지는 않았을 거고 아마 군진 안에 의승군들을 따로 두는 부서가 있지 않았을까 그 부서 안에 스님들이 있으니깐 초파일에 당연히 연등을 달았을 것...”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서 유학을 배운 장군이 스님들과 함께 관등을 한 이유는 무엇이죠?

 

호남지역의 스님들이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 장군을 적극 도와서 전투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무려 400명의 스님들이 의승군으로서 바다를 지켰고요.

호남의 대표적인 의승으로 정조가 구국 3화상으로 추존 했던 처영 대사도 생전에 이순신 장군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등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호남지역 스님들과 이순신 장군과의 각별함은 사후에도 이어지는데요.

호남 스님들은 이순신 장군이 돌아간 후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데요. 쌀 600석으로 노량에서 수륙재를 올렸습니다.

심청전에서 공양미 300석이 한 사람의 목숨 값에 버금가는 막대한 재산임을 감안하면, 당시 수륙재의 규모는 국가행사에 준할 만큼 대규모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 뿐만 아니라 서신 등의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어록 중에 유명한 것이 “무호남(無湖南)이면 무조선(無朝鮮)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남이 없으면 조선도 없다는 뜻인데 어떤 의미이죠?

 

무호남이면 무조선이라는 말을 두고 현대에 와서도 해석의 차이는 많습니다.

하지만 호남이 임진왜란 당시에 전략적 요충지이자 군수물자의 핵심지역이었다는데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8도가 거의 다 적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유일하게 보존 된 지역이 호남평야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해상에서 적을 막아서 일본은 병력과 군수물자 보급에 큰 차질이 있었던 반면에 우린 군은 호남에서 조달하는 군량미로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왜군도 마찬가지였고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정유년에 다시 침략을 하면서 호남지역부터 습격을 합니다.

이때 남원에서 관군은 물론 주민들까지 모두 다 싸워서 당시 남원부민 전체에 해당하는 1만명이 순절했고요.

만인의총이 남아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말 함께 들어보시죠.

[원행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임진왜란 5~6년 동안 호남 쪽에서 군량미가 서해로 해서 올라갔기 때문에 싸웠던 것이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서는 남해안이 무너져서 남원전체가 다 도륙을 당했습니다. 남원에 가면 만인의총이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호남불교가 또 호남지역에서 임진왜란에 적극적으로 임했는데, 선양사업은 아직 미진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충남 금산의 700 의총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국가차원에서 성역화 된 반면에, 호남지역을 방어했던 웅치. 이치대첩은 그 중요성에 비해 역사적 조명과 성역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호남 의승을 대표하는 처영대사 또한 당대에 추존된 구국 3화상임에도 불구하고, 금산사가 처영대사 기념관을 세운 것을 제외하고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현창 사업은 미미합니다.

 

네 홍진호 기자 잘 들었습니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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