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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칼럼]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사승인 2019.05.10  15: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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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 보는 깨끗한 눈 = 바른 법으로 걸러서 보는 안목

불기 2563년인 올해도 어김없이 장엄하고 화려한 봉축탑과 연등행렬이 거리를 수놓았다. 많은 시민과 불자들은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빛으로 넉넉한 불심(佛心)을 가득 채웠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하셨듯이 나날이 부처님 오신 날처럼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누구는 아름답게 느끼지만 다른 이는 정반대로 느끼기도 한다. 또 같은 대상이라도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같은 대상에 대해 어떤 때는 좋은 느낌이 들다가도 다른 때는 반대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외부의 그 누가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마음 먹는 일은 자기 책임일 수밖에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게 자기 마음의 소관이라면 누구든 언제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느끼고 살기를 바라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 마음조차 선뜻 자기 마음대로 가지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있다. 의식 차원에서 아무리 아름답게 보려 해도 내면의 무의식에서 그렇지 않게 보는 성향이 강하다면 아름답게 보기 어렵다.

불교는 이를 업(業)으로 설명한다. 지난 세월 살아오며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은 본인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을 꾸준히 쌓아 왔기에 어느 날 “그렇지 않구나” 하는 자각이 있어도 옛날 습성의 영향이 남아 있는 한에서는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스스로 정해 놓은 가치관이나 기준 따위의 상(相, mind set)이 많을수록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무지와 욕심에 가린 안목은 흔히 눈병에 비유되기도 한다. 병을 고치기 전까지는 자기만의 이야기 내지 소음들 때문에 아무리 제대로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욕심이나 잡념을 내려놓고 즉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좋은 것을 보면 자기도 모른 새 기분이 좋아지지만 좋지 않은 것을 보면 곧바로 기분이 나빠지곤 한다.

해법은 이론상 두 가지 뿐이다. 아예 좋은 것만 보고 좋지 않은 것은 보지 않는 것 또는 좋거나 좋지 않고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전자는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기에 언제든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후자의 방법을 권한다. 제2의 화살을 맞지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가 상황마다 인연관계를 살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순경계라고 자만하고 역경계라고 비탄에 빠지는 일이 없이 사태 해결에 더 좋은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때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깨끗한 눈으로 제대로 보려면 오히려 잘 걸러서 봐야 한다.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바른 법, 진리에 의거해서 보는 법안(法眼)이다. 그렇게 가장 깨끗한 눈, 제대로 걸러서 보는 최고의 안목이 바로 부처님의 안목, 불안(佛眼)이 아닐까.(끝)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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