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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상경 방정환재단 이사장 "소파 방정환, 그 시대의 BTS"

기사승인 2019.05.05  18: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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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어린이ㆍ청소년 행복지수 OECD 최하위권"

<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 시간은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과 함께합니다. 
이상경 이사장은 육영사업을 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지난 2008년부터 방정환재단 이사장을 맡아 재단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이사장 취임이후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조사'를 매해 발표해 어린이와 청소년 인권문제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시 성평등위원으로 성평등 문화 확산에도 힘쓰고 있는 이상경 이사장은 현대리서치연구소 대표이사를 맡아 통계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출연 :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님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상경 : 안녕하십니까?

△강동훈 : 오늘 5월 5일 어린이날이 거의 끝난 오후가 됐는데 아마 저희 자리에 모시기에 뜻 깊은, 의미 있는 자리인 것 같아요. 애청자,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경 : BBS 불교방송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방정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상경입니다.

△강동훈 : 오늘 굉장히 바쁘셨죠?

▲이상경 : 네, 바빴습니다.

△강동훈 : 방정환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계시는데 우리가 보통 알기로는 방정환 선생님께서 5월 5일 어린이날을 제정해서, 이 날을 정해서 어린이날을 기념했다, 이렇게 알고 있거든요? 사실은 저도 자료를 챙기다 보니까 이런 것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시점이 있더라고요?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 용어를 만든 어떤 배경이 있습니까?

▲이상경 : 사실 어린이라는 용어 자체는 조선시대 문헌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 사용하셨다기보다는 어린이라는 용어를 들어 올리셔서 일반인들이 다 어린이를 어른이와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캠페인하신 그런 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강동훈 : 제가 알기로는 5월 5일 어린이날, 즉 오늘이 아니고 원래는 5월 1일이었다는 자료가 있더라고요?

▲이상경 : 천도교 청년회가 1921년 5월 1일에 결성이 됐고요. 그래서 22년 5월 1일에 어린이 선언을 하십니다. 천도교 중심으로. 그 다음해인 1923년 5월 1일부터는 전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천도교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인 단위로 넓히신 분이고요. 27년 10월에 5월 첫 번째 일요일을 어린이날로 하자, 그래서 원래는 5월 1일을 기념해야 되는데 그때 마침 28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이 5월 5일이었습니다. 그래서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됐고요. 1937년, 이때가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1937년에 폐지가 됩니다. 그러다가 46년에 5월 5일로 첫 번째 일요일로 하다가 그러다가 75년에 정부에서 5월 5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강동훈 :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면 일제강점기 때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날을 제정을 했고. 그것이 특수한 것이 천도교라는 종교 단체에서 이것을 시작을 했네요?

▲이상경 : 1921년이면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이니까 1919년의 2년 후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는 3.1 운동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독립은 멀어 보이고 이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이미 17세 때 천도교에 귀의를 했고.

△강동훈 : 17살 때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천도교에 귀의를 하셨군요?

▲이상경 : 아, 그때 결혼을 하셨군요. 그 전에 가셨고요. 17년에 결혼을 하시고 3.1 운동이 열기가 꺼져가니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족독립운동을 바라봐야 되겠다, 그러자면 어린이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강동훈 : 보통 천도교하면 서울 종로에 있는 수운회관 거기서 운동을 시작을 했다고 볼 수가 있겠네요? 그러면 천도교라면 그 당시 신흥 종교인데 아무래도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 종교단체에서 그런 일을 하면 일제 치하의 헌병들이라든지 순사들의 눈을 피해갈 수 있는 그런 모티브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상경 : 아무래도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고요. 방정환 선생님은 손병희 천도교 지도자의 셋째 사위입니다. 그렇게 되셔서 천도교를 중심으로 해서 운동을 하셨는데, 워낙 목적은 민족을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린이는 앞으로 자라면, 그렇게까지 길게 보신 거죠.

△강동훈 : 그러니까 앞에 제가 유언으로 말씀드린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어린이에게 10년을 투자하라, 그러니까 이 나라가 암울한 현시점이지만 어린이를 잘 키우면 조선의 독립도 볼 수 있다는 그런 큰 혜안이 있으셨군요.

▲이상경 : 네, 그러신 것 같습니다. 

△강동훈 : 거기에 보니까 천도교 소년회도 있지만 불교 소년회라는 모임도 같이 만들었더라고요?

▲이상경 : 그러니까 23년부터는 전국적인 행사로 가져가시고 시작하셨기 때문에 관련되어있는 단체들하고 다 연합해서 하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강동훈 : 저희가 1927년에 대한불교청년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조선불교청년회를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그때 창립했는데 시점이 거의 비슷하네요. 

▲이상경 : 살짝 앞이시지만 연합해서 해야 되니까 연합해서 하시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셨던 것 같아요. 종교에 국한되신 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강동훈 : 그때는 사실은 종교가 특정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독립운동 하시는 분들이 그런 역할들을 많이 하고 교육적인 부분도 많이 강조한 것 같습니다. 방정환 선생께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한 이후에 우리가 그 당시에 조선의 백성들도 어린이에 대한 시각이 변화됐다, 이런 자료도 있던데?

▲이상경 : 그러니까 1922년에 어린이 선언을 하신 것은 거기서 어린이를 존중하고 어린이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권을 지켜주자. 이것은 어린이를 지키는 것은 바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고 나라를 잘 키우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고요. 말하자면 독립된 인격체, 독립된 개인이 되면서 우리 민족도 하나의 독립된, 이런 것을 말하자면 은유화하신 것 같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10년 후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딱 10년은 아니고요. 그런 뜻은 아니고 긴 시간을 말씀하신 것 같고요. 그래서 어린이에 대한 시각이 그 전에는 갓난이, 이렇게 하대했다면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그 생각이 제일 중요했던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바뀌는.

△강동훈 : 방정환 선생께서는 사셨던 연대를 보면 짧은 나이에 세상을 가셨던데. 이 분이 구연동화에 상당한 재질을 갖고 어린이들에게 접근하면서 구연동화를 통해서 어린이와 함께 어울렸던 그런 내역들이 있던데?

▲이상경 :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되는데, 잡지 하나 못 사줄 형편인, 잡지 사줄 수 있는 형편인 우리나라 가정이 아주 적었습니다. 어린이를 발간하시게 되면 바로 전국 투어를 다니시는 거죠. 구연동화를 너무 잘하셨다고 하고요. 인기도 엄청 많았고 방정환 선생님이 뜨시면 구름같이 몰려왔다고 해요.

△강동훈 : 소위 말하는 팬덤이.

▲이상경 : 팬덤이 아주 강하신 분이었고. 요즘 식으로 말하면 BTS라고 하면 아미들한테 혼나겠죠?

△강동훈 : 말 되네요. 방정환 선생님, 방탄소년단. 어린이들의 팬클럽을 몰고.

▲이상경 : 방정환 선생님이 탄생시킨 어린이. 그래서 방탄소년단. 

△강동훈 :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미 그 전에 BTS였다. 우리 어린이 여러분 그거 모르셨죠? BTS의 선조는 방정환 선생님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분은 전국 투어도 했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이상경 : 그 당시에는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은 상태였고 일제강점기였다는 것을 염두해둔다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요. 책을 살 능력이 있는 가정도 아주 적었고. 그러기 때문에 직접 다니면서 하시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신 거죠.

△강동훈 : 방정환 선생님이 여러 가지 어린이 잡지도 만드시고 또 필명, 작가 이름도 여러 개를 갖고 쓰셨다고 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이상경 : 이것은 추정입니다만 첫 번째로는 일단 그 당시에는 인적 자원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혼자서 다 첫 번째 기사부터 마지막 기사까지 다 본인이 작성하는 것은 좀 어려움이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번역도 하고 번안도 하고 창작도 하고 평론도 하고 시평도 쓰시고 이렇게 정말 다양하게 일하실 수밖에 없었고. 두 번째는 그 당시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검열이 아주 심했습니다. 지금 저희가 이번에 전집 내면서 보니까 동그라미로 표시된 그런 작품들이 여러 개 나왔습니다. 이미 검열당해서 지워진, 삭제된. 그것을 그대로 살려서 전집에 실었거든요? 그만큼 그런 검열이 심했다. 그 다음에 자원이 부족해서 본인이 여러 가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황을 상상하시면 충분히 이해되실 것 같고요. 그래서 저희가 아주 고민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공동으로 사용한 필명도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교차분석이라는, 어떤 지면에 비슷한 작품이 CW로 나오고 어디에는 무기명으로 나와요. 그러면 이것은 CW가 방정환이다, 라고 확정하는. 그래서 완전히 추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크로스 체크하고 교차해서 확정하고 이렇게 해서 저희가 한 20여 개 찾아내서 확정했습니다.

△강동훈 : 조금 전에 전권 방정환 전집을 출간하셨다고 하는데, 이것을 마련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도 모으고 또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을 검색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내용도 많이 나왔다고 하던데?

▲이상경 : 이번에 새로 한 54편 정도가 완전히 새로 발굴된 것이고요. 목록에도 없었는데 나온 것, 이런 것이 54편이고요. 그 다음에 미공개 자료라고 하는 것은 목록에는 있었으나 실체가 없었던 그런 것들이 한 237편 정도가 새롭게 추가됐습니다. 그래서 방정환 선생님 작품으로 확정되고 이번에 저희가 하는 만큼 최선을 다했지만 또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저희가 이번에 방정환 정본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새로 발굴된 자료, 미공개 자료 이런 것들을 다 찾아냈고. 이것은 저희만의 힘은 아니고요. 그 당시에 간행되던 신문이나 잡지 같은 것들이 디지털화 되면서 차차 되기 때문에 최근에 출간되기 직전에 발견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올 것이라고 보고요.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강동훈 : 이제 그렇다면 한국방정환재단을 이끌고 계신 이상경 이사장님에 대해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이 재단과 인연을 맺은 지가 10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 재단하고 인연을 맺은 겁니까?

▲이상경 : 저는 2006년 정도에 저희 아버님께서 재산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저희가 어디에다 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알아보고 있는데 마침 방정환재단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고 몹시 안타까워하시고요. 그러셔서 거기에 기증을 하시게 됐고, 그래서 제가 인연을 맺었는데. 사실 저는 은퇴 후에 작은 어린이 청소년 전문 도서관 같은 것을 운영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아버님께서 저에게 아버님의 유업이시지만 저한테는 내 꿈을 확장하는, 저는 아주 작게 생각했는데 아버님 덕분에 이렇게 크고 넓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서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이 자리에 오시면 출연진들이 부모님에 대한 한 말씀 하시거든요? 아버님 어떤 분이셨어요?

▲이상경 : 저희 아버님은 말하자면 상록수의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아요.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에 그 전에 사업하면서 버신 돈으로 학교를 설립하셨고요.

△강동훈 : 어떤 학교입니까?

▲이상경 :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셔서 운영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셨고. 그것이 좀 마음에 짐으로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청소년 사업을 하고 싶어 하셨는데, 학교는 더 이상 새롭게 더 늘려가거나 할 필요가 우리나라는 사실 없잖아요? 고등학교까지 우리가 의무교육을 하려고 하는 판이니까요. 그래서 학교보다는 조금 더 넓은 컨셉의 일을 하시는 것이 어떠냐고 자녀들이 권했습니다. 학교보다는 좀 더 넓은 그런 것을 하고 싶어 하셔서 기본적으로 자산이라는 것이 재산을 좀 갖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본인이 다 벌어서 한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셨어요. 이것은 사회에 돌려줘야 된다, 이렇게.

△강동훈 : 정말 그 시대의 교육자로서 사회에 환원시킨다는 것은 웬만한 생각 아니면 어려울 텐데, 자녀분들은 거기에 동의하셨나요?

▲이상경 : 예, 한두 명은 좀, 반대하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분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다 동의를 했기 때문에.

△강동훈 : 그러면 2006년에 기증하시고 그때부터 재단과의 일을 아버님 대신해서?

▲이상경 : 대신해서 이사로 일을 했고 2008년 12월에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강동훈 : 2019년이니까 11년째. 지금 또 다른 전문적인 잡을 하나 갖고 계신데, 리서치에도 전문가로서 대표이사를 맡고 계시고.
 
▲이상경 : 그것은 제가 1987년에 창업한, 요즘 식으로 말하면 벤처회사죠. 창업한 회사고요. 32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현대리서치하면 우리가 정치권, 여러 가지 사회 문제 이런 것에 많은 서베이를 하시던데, 그런 일을 많이 하는데, 현대리서치 이상경 대표이사시네요?

▲이상경 : 그래서 제가 이사장 맡고 첫 번째 제 시그니처 사업으로 생각한 것이 방정환 선생님이 오늘날 살아 계시다면 어떤 일을 할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를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고 현대적으로 접근해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동훈 : 그게 몇 년도부터 나왔던, 어린이 행복지수.

▲이상경 : 2009년입니다.

△강동훈 : 그것이 이상경 이사장님이 처음 먼저 하셨군요? 그때 신선한 리서치였는데.

▲이상경 : 그렇습니까? 그것이 OECD 국가 비교하는 그런 것인데. 다른 나라, OECD 국가 다른 나라들은 다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한국만 안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함께 이것을 우리나라 것도 해서 국제적인 수준에서 한국의 어린이 청소년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보자, 라고 생각해서 조사를 시작했고요. 11년 째 애석하게도 우리가 주관적 만족도, 행복도가 OECD 국가 중에서는 꼴등입니다.

△강동훈 : 저희가 자살로 1위, 그것이 또?

▲이상경 :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해보실 수 있어요. 그동안 저희가 경제 발전에 치중해서 경제 발전의 성과물인 경제적인 여건 이런 것에 대한 것은 한 13등 해요. 11등, 13등 하는데 이것은 GNP 수준하고 비슷합니다. 그리고 교육 문제, 워낙 강조를 해서 한 1등, 2등 하고 있고. 그 다음에 안전한 생활, 보건 이런 부분은 다 좋아요. 다만 행복지수만 낮습니다.

△강동훈 : 그런데 이 행복지수에 어린이 행복지수라면 어른들의 행복지수하고는 항목이 다를 텐데, 어떤 것을 주로 어린이들에게 질문하나요?

▲이상경 : 행복지수 그 자체는 다양한 측면으로 조사하고요. 지금 낮다는 것은 주관적 만족도가 낮다는 뜻입니다. 주관적 행복도가. 그것은 지금 생활에 만족하느냐, 행복한가,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고요. 어른들도 사실 어렵습니다. 저희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실제로도 지난 11년 간 아주 낮은 수준에서 계속 유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약간 오르락내리락은 있지만.

△강동훈 : 어린이 행복지수라는 것은 아무래도 가정환경, 부모님과 연관될 텐데. 어떤 부분에서 어린이들이 당시 조사할 때 행복지수가 낮던가요?

▲이상경 :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학생들은 사실은 인터넷을 좀 길게 하고 스마트폰 게임도 오래하고 인터넷 게임도 오래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회복 탄력성이 좀 좋게 나타나요. 그런데 부모와의 관계라는 것은 저희가 아주 하나하나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부모님하고 식사를 일주일에 몇 번 하는가?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떠오르는 사람 중에 부모가 몇 번째로 떠오르는지 이런 것을 가지고 물어봤더니 일단 우리 부모님들이 너무 근무시간이 길고 사회활동을 긴 시간을 하시기 때문에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건상 집에 가서 자녀들과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쉽게 개선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에요. 경제적 성장을 그 동안 우리가 열심히 이루었다면 앞으로는 우리 사회가 부모와 자녀, 노인 다 자살률이 높잖아요? 어느 계층이든? 이런 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다 같이 노력해야 될 그런 문제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동훈 : 그것이 2016년에 조사를 했고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정치권이라든지 사회문화적 상황이 2~3년 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졌어요. 거기에 대한 인식도가 조금은 변화했을 것 같은데, 혹시 최근에 조사한 것이 있나요?

▲이상경 : 네, 저희가 매년 5월에 발표하는데요. 2019년 조사 결과가 얼마 전에 정리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여전히 낮은 편이고요. 점수 자체는 좀 올라갔어요. 예전에 처음 시작했던 2009년의 그 시기보다는 점수 자체는 올라갔는데 순위는 여전히 하위권이 머물고 있다, 이때 이 하위권이라는 것은 OECD 국가입니다. 선진국 중에서 하위권이라는 뜻입니다.

△강동훈 : 어린이날, 저도 자녀를 기르고 다 성장은 했습니다만, 1년에 한 번 어린이날만큼은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루만 잘 놀아주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하는데 실제 자녀들하고 가끔 대화를 하다 보면 역시 가정환경에서 자기가 자기 전에 부모님이 들어와서 이야기하고 외식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런 항목들이 보면 나타나죠?

▲이상경 : 그렇죠.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이, 저희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대상으로 한 8,000명 정도 조사하는데 그것을 대량으로 조사할 때는 인덱스, 지표가 되는 문항을 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얼마나 보내느냐. 그런데 그 변수를 옆에다 두고 이 학생이 스마트폰 중독,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이랬을 때 다시 일상생활로 컴백할 수 있느냐, 했을 때 부모하고 관계가 좋은 아이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부모가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 떠오르게 하려면 평소에 시간을 보냈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떠오르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내가 부모에게 의지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 어려운 문제들이 그래도 회복 탄력성이 아주 높은 그런 결과치를 저희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오늘 하루가 아니라 평소에. 사람은 그렇잖아요?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오래오래 매일매일 그런 삶 속에서 그 시간들을 확보하시는 것이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오늘이 5월 5일 시간이 다 됐지만 내일도 연휴니까 정말 혹시라도 오늘 업무 때문에 또 다른 일 때문에 어린이들하고 어울리지 못했다면 내일이라도 가까운 유원지라든지 집안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면 정말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저희들도 10살부터 11~12살 때 부모님과의 맺었던 추억이 오래가는 것 같아요.

▲이상경 : 맞습니다. 

△강동훈 : 이사장님 자녀분들은 어떻게 되세요?

▲이상경 : 저는 딸 하나 있는데요. 그 딸이 결혼해서 손자 두 명을 낳았습니다. 

△강동훈 : 손자는 지금?

▲이상경 : 8살, 3살입니다.

△강동훈 : 가장 예쁠 때겠네요.

▲이상경 : 엄청 예쁩니다.

△강동훈 : 이번에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사실은 부모님보다 할머니가 전화해서 용돈도 챙겨드리고. 따님께서 어릴 때 엄마가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을 것 아니에요?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 같아요.

▲이상경 : 그건 또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 시간을 갖지 못했고요. 대신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친정아버지하고 친정어머니께서 거의 키워주다시피 하셨기 때문에 제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때는 저도 잘 못했습니다.

△강동훈 : 엄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항상 자식이라는 것은 늘 더 못해줘서 그런 부분이 있으니까. 방정환재단이 주로 하는 사업이 1년에 큰 행사 있고, 또 중간 중간에 지원도 하는 그런 사업도 있던데. 주로 어떤 사업을 많이 하나요?

▲이상경 : 저희가 장학 사업을 어떤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장학금을 1년에 한 7억에서 8억 정도 지급하고 있고요. 중, 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하고 있고. 그 다음에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작업해서 발표하고. 그 다음에 지역아동센터.

△강동훈 : 각 지역에서 하는 아동센터.

▲이상경 : 지역아동센터가 전국에 4,000개 정도 있거든요. 12만 명의 어린이들이 절대적인 보호를 학교 방과 후에 못 받는다는 것이고 방과 후에 지역아동센터에 가고요. 저는 우리가 요즘 시대를 특징으로 한 마디로 지식정보사회라고 하는데 지식정보사회라는 것은 본인이 지식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본인한테 있어야 되고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은 통해서만 자기한테 체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역아동센터에 500권 씩 책을 도서관, 작은 물결 도서관을 만들어드리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LG C&S라고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하고 있고요. 장학금은 웰컴금융그룹의 후원을 받아서 하고 있고 다른 사업들도 축구, 운동이라든지 생각하는 축구교과서, 생각하는 야구교과서 이런 책을 발간을 통해서도 하고 있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인데, 방정환 선생님의 높은 뜻을 요즘 언어로 바꿔서 알려드려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새로 쓰기, 다새쓰 문학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을 모티브로 해서 다시 현대화하는 것인데 작년에 시작했어요. 1등상이 <휘경이와 꼬마 쥐>인데, 시골 쥐와 서울 쥐 스토리 아시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새롭게 현대화한 작품입니다. 젊은 작가, 생애 처음 출간하는 본인의 책이 생겼다고 엄청 기뻐하는 그런 기쁨을 같이 누렸는데. 그런 일, 또는 연구하는 일. 방정환 선생님을 다 아는 것 같은데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아서 사실 전집도 연구를 한 4년 했고요. 그러고 나서 전집을 만들기 시작해서 또 4년이 흘렀습니다. 도합 한 8년에 걸쳐서 작업을 했는데 방정환 선생님을 제대로 잘 발굴해서 알려드리는 것, 다시 현대화하는 것,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재단에서 방정환 선생님의 유업도 챙기면서 또 방정환 선생님을 새롭게 알려주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데. 그때 보니까 그림 전시회도 했는데 제목이 “들어봐, 그려봐” 이렇게 했는데. 굉장히 쉬워요. 단순하면서도 메시지가 정확한 것 같고 앞으로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어떤 여러 가지 문화 사업들이라든지 이런 것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 이런 것은 현재 몇 개나 만들었죠?

▲이상경 : 100군데가 넘습니다. 계속 할 것이고요. 1년에 한 10개 이상 하고 있고요. 올해 지금 하는 것이 어린이 선언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1922년 어린이 선언과 지금 2019년이라면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선언문을 다시 써봐라, 이런 공모전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모를 하시면 어린이들이 직접 쓴 어린이 선언문, 현대적인 2019년의 어린이 선언을 다시 밝혀서 옛날의 것은 결혼시키지 마라, 혼인시키지 마라, 일시키지 마라, 라고 그러는데 이것은 요즘에는 맞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어린이 선언을 어린이 손으로 쓰게 하는 그런 공모전을 지금 진행 중이고요. 또 많이 있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에 가시면 여러 다양한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으니까 많이 응모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동훈 : 이런 재단에 일을 하고 싶어서 자원봉사 같은 것을 하려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있습니까?

▲이상경 : 네, 있습니다.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이 지금도 계시고요. 또 기업들이 후원도 좋은 사업이 있으면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저희는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사실 어린이 때 어떤 분이 어떤 말을 해주느냐,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갈림길이 분명히 정해지는 것 같고 저희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데. 방정환 선생님의 재단이 그런 등대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상경 :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 선언 97주년 이 부분인데, 제가 사실은 이 질문은 드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우리나라의 사회에서 어린이를 관리하고, 관리한다는 표현은 좀 그렇습니다만,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 또 어린이에게 몹쓸 짓을 하는 이런 사회적 환경 이런 것을 어떤 형태로 풀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평상시에 갖고 있는 이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상경 : 글쎄요, 저희 작은 재단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고요. 저는 일단 지금 현재 어린이 청소년들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어른들이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게 행복지수 발표를 하면서 나아가야할 방향을 같이 논의하자, 라는 뜻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요. 그것에 화답하는 그런 정책이나 어른들의 노력이 따라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이와 관련한 정부 관련 주무부처, 교육부라든지 보건복지부라든지 여가부라든지 이런 것을 할 때 이사장님의 의견을 좀 듣습니까?

▲이상경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희가 노력한 것은 절대 아닌데 근무시간이 줄어들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사실 논란이 심해서 제가 이 말을 여기서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린이 입장에서만 본다면 우리나라 근로시간이 축소되는 것은 너무 바람직하다. 저도 사업가라서 사실 저도 그것에 대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택을 잘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강동훈 : 우리가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근로자들이 좀 더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근무시간을 단축시키는데, 이것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가족들에게 가고 아이들에게 가서 같이 놀아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할 텐데, 그 시간이 다른 데로 간다면 오히려 이것을 기획했고 정책에 반영했던 분들의 실망이 클 텐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상경 : 일단 저희가 OECD 국가 중에서는 멕시코보다는 조금 짧습니다. 그 정도로 긴 시간을 일하는 데 보내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 대기업만 대상이지 않습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그런 것들이 단지 근로시간을 줄인다,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다 같이 좀 여유 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그런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장으로서는 모순된 대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필요하고요. 노인 자살률, 성인 자살률, 청소년 자살률 이렇게 높은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어린이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연령계층이 다 힘들다면 우리가 선택을 해야 되는데, 어렵지만 선택해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부에만 의지할 일은 아니고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우리는 이미 4단계 국가이고 그에 걸 맞는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훌륭한, 저희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해왔는데 당연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동훈 : 감사합니다. 오늘 BBS 뉴스와 사람들 한국방정환재단의 이상경 이사장님 모시고 말씀 나누고 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다 정리가 됐네요. 부처님오신 날 봉축연등회도 끝났고 내일이 연휴입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가정의 달,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만 청소년들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그런 희망을 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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