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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의 화쟁토론 74] “문화의 융합” 이한구-윤평중 “열린 문명 지향해 모든 문명 포용하는 보편적 문명의 기준 제시해야”

기사승인 2019.05.03  1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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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2019년 5월 3(금) 08:00(라디오)
    TV는 다음주 (화)07:40, 22:40 (수)15:40 (금)08:30
주제: 문화의 융합
진행: 이각범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패널: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이각범
-이한구 교수께서 문명 보편주의와 문명 다원주의를 비판한 변증법적 시도로서 문화 융합론을 제시한 근거는 무엇인가?
-문화 유전자의 융합이 문화 융합의 증거라고 논변하는 구체적인 사례는?
-생물학적 유전자와 문화 유전자를 대비하면 어떤 공통점이 있나?
-문명 3중구조론의 내용과 의미는?
-문명 다원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정보사회의 어떤 기능이 문화 유전자의 융합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나?
-문명 융합론은 당위론인가 현실에 대한 객관적 기술인가?
-문화 유전자의 융합에 의한 새로운 문명은 지금까지의 문명과 어떤 차이가 있나?
-열린 문명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이한구
-문화 융합론의 두 가지 근거, 현재의 세계화가 문명들의 전면적인 만남으로 문화융합이 일어나고 있고, 역사는 작은 집단과 문명들이 통합되는 과정이었다는 것.
-문화 융합의 구체적인 사례로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서양과 우리 전통 음악이 융합돼 보편적인 공감 불러일으키는 것.
-문명의 3중 구조론, 가장 안 쪽에 종교.예술.철학, 그 겉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체제, 맨 겉에 과학기술이 외피 구성.
-우리의 1960년대 이후 근대화 과정은 서구문명 수용사, 문명의 융합과정으로 볼 때만 제대로 해석될 수 있어.
-문명 다원주의는 문명들의 독자성만 강조해 보편적 문명사의 흐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구문명이 유일한 패러다임이라는 주장에 반기들었지만 문명이란 이름으로 온갖 부정의한 일들 묵과돼
-빅데이터 속에는 문화 유전자도 들어있어. 모든 정보가 빠르게 교환되면서 문화 유전자의 뒤섞임 속도도 빨리 전개되고 있고 그 위에 문화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어.
-문명 융합론은 1차적으로는 'Sein'에 대한 서술이나 미래에 대한 당위론으로 전환해서 Sollen에 대한 서술로 볼 수도 있어
-새로운 문명은 칸막이 없는 인류 보편적인 문명, 역사의 진정한 주역 되려면 자문명 중심주의 벗어나 모든 문명 포용하는 보편적인 문명의 기준 제시해야

윤평중.
-문명 융합론은 서구제국주의적 유산이 느껴지는 문명충돌론과 이에 대항하는 문명 다원주의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시의적절한 철학적 기획
-문명의 3중구조론 상당히 설득력 있어, 다만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문명의 미래 향배에 대해 어떻게 추론하는지?
-문화 유전자라고 할 때 사회생물학의 결정론적인 영향력을 어떻게 하면 문화 유전적 개념으로 돌파할 수 있을지?
-문화 융합론은 인문학적인 종교적인 영성에 기반한 거대한 담론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학의 진보와 현대사회의 성격을 담아내면서 결합시키려 시도하는 점에서 설득력 있어
-문화 융합론은 세계사의 변환 과정을 사실적 변화를 담아내면서 당위적인 지향을 갖게 하는 열린 문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현실과 당위를 조화시켜
-개인적으로는 문화 다원주의를 지지, 만일 열린 문명 다원론을 정초할 수 있다면 문화 융합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주체사상이라는 국가이데올로기는 국가 종교의 성격 강해, 북한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도전 어떻게 응전할 수 있을지?
-‘동양평화론’에서 한일간 문화교류, 공동군대 창설까지도 주장한 안중근 의사야말로 한국적 열린 문명론의 선구자 아닐까.

 

이각범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이하 이각범):  
안녕하십니까. 이각범의 화쟁토론 제 74회 오늘은 문명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분들 모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서구 문명을 중심으로 세계화되는 추세와 주로 이슬람 문명권 사이의 갈등과 충돌에 대해서 논의한 바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근대성과 전근대성으로 구분하는 문명의 차이에 대해서 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의 대립을 중심으로 문명권의 충돌을 진단했습니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미국의 9.11사태 때문입니다. 이미 70년대에 헌팅턴이 터키의 농촌을 중심으로 해서 왜 터키의 농촌은 서구에 바로 인접해있으면서도 독특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논의한 바 있고, 사회발전론에서 이것이 굉장히 중심적인 텍스트로 사용이 됐었는데 9.11 사태가 나면서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종교적인 나아가서 문명적인 갈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헌팅턴 이론의 문제점을 오늘은 다시 한번 짚어보고 또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문명의 융합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해석해야 될지 오늘 심층적으로 두 분 철학자 모시고 논의해보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문명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저서를 펴내신 이한구 경희대학교 석좌교수님 나오셨습니다.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이하 이한구):
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각범:  
그리고 늘 신선한 시각으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명칼럼니스트 한신대학교 철학과 윤평중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이하 윤평중):
안녕하십니까

이각범:  
네 안녕하십니까.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 문명 충돌 여기에서 우리가 논의할 것이 문명 보편주의와 문명 다원주의를 비판하면서 변증법적 종합의 시도로서 문명 융합론을 이한구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요?

이한구:
문명 융합론은 저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문명들의 전면적인 만남이기 때문에 현재 문명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고요. 과거에도 문명들의 만남은 존재했지만 그런 만남은 간헐적이고 단편적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세계화는 문명들의 총체적 만남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또 둘째로 역사의 과정은 작은 집단과 문명들이 계속 통합되는 과정이 아니었느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작은 기류들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고 또 끝내는 그 강이 바다에서 다 합류되듯이 때로는 강물들이 또 갈라지는 지점도 있지만 결국은 강들은 통합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과 같이 저는 역사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분열과 또 상호갈등도 있었지만 역사 전체의 과정에서 보면 그런 분열도 갈등은 작은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각범:  
이한구 교수님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 해주셨는데 문명이 작은 문명이라도 그것이 갖고 있는 컴포넌트로서 전체의 구성 요소로서 전체 문명의 다원성을 형성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작은 문명도 소홀히 볼 수 없는데 그동안 우리의 경우에도 서세동점이라고 하는 커다란 추세에서 서구 문화가 기존의 우리 문화를 압도하는 경향도 있었고 서구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더라도 서구 중심적 사고가 만연했었거든요. 그런 지금까지의 추세에서 이한구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떤 변증법적 종합의 시도가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윤평중:
네. 이 교수님의 문명 융합론 테제는 대단히 시의적절하고도 대단히 장대한 철학적 기획이 아닐 수 없고요. 아까 헌팅턴 이야기를 사회자께서 모두에 말씀하셨는데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테제는 겉모습은 문명보편주의라고 그렇게 자처를 하죠. 그러니까 서구 문명이 이를테면 근대 이후에 세계사의 주역이 되면서 자신들의 어떤 문명적 패러다임이나 생활방식, 사고 체계 이런 것들이 전 지구적으로 관통하는 그런 패러다임임을 암암리에 깔고 있는 것이고요. 방금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것들이 사실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는 서구 이외의 어떤 사람들은 아무래도 서구 중심적인 이런 것에서 비판적 측면에서 보면 서구 제국주의적인 유산도 부분적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다분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맥락에서 물론 그런 서구문명 보편주의에 대항하는 문명 다원주의도 패러다임이 강하게 개진되었었죠. 좀 이따가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그런데 이한구 교수님께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역사 철학자로서 그런 서구 문명 보편주의와 그 다음에 문명 다원주의의 어떤 장단점을 그야말로 변증법적으로 통합해서 한 차원 더 고차적인 그러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대단히 유의미한 그런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기획을 지금 시도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이각범:  
그러면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앞당겨서 우리가 문화유전자의 융합이 문화 융합의 증거다 이렇게 이한구 교수님이 논변하고 계시거든요. 그 구체적인 증좌라고 할까요? 구체적인 사례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한구:
우선 문화 유전자라는 것은 제가 규정하기로는 문화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한다면 우리 몸이 수많은 세포로서 구성되어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 공동체의 문화는 그런 최소 단위의 문화 유전자로 구성되어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또 문화는 여러 영역으로 나뉘어서 정치문화라든지 일상생활 문화라든지 학술문화 이런 등소로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런 이제 문명을 문화 유전자의 융합으로 본 구체적인 실례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방탄소년단 BTS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 음악을 본다면 서양 음악과 우리의 전통 음악이 융합된 행태가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전 세계인들이 호감을, 호감 속에서 그게 이제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동서 음악의 융합적인 형태가 어떤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또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로는 만약에 과학이라고 할지라도 1세기 전만해도 문명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탐구 주제와 방법론들을 서로 달리하면서 진행되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상태에서 보면 제가 조사한 바로는 100년 전에 한 10% 내지 20% 정도의 공통분모가 있었다면 지금 현재 특히 자연과학을 예로 든다면 주제와 방법론 모두가 한 70% 정도의 공유 부분이 나타났다 이렇게 조사가 되었습니다. 전 이런 근거들에서 문명의 융합이 문화 유전자의 융합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각범:  
유전자 생물학적 유전자로 한다면 DNA 구조가 원숭이와 인간이 거의 90%가 동일하다고 보고 가령 4촌간이라고 그러면 말이죠, 그 동일한 유전자가 99.99%를 넘는다고 하니까 생물학적인 유전자로 한다면 사실은 문화 유전자를 같이 등치시킨다면 거의 비슷한 분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생물학적 유전자와 문화 유전자 이것을 어떻게 좀 대비해서 볼 수 있고, 또 공통적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윤평중:
잘 아시는 것처럼 사회 생물학이나 진화론을 사회과학과 연결을 시켜보려고 하는 작업이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었고요. 그런 맥락에서 문화 유전자라고 하는 개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학계에서는 전문가들은 이제 그것을 집중적으로 탐구해왔지만 일반 독자 입장에서 이렇게 들으면 아 유전자라라고 하는 말은 익숙하지만 문화유전자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생경하거든요? 그래서 이한구 교수님이 문화융합론을 전개를 하면서 문화 유전자의 어떤 융합에서 어떤 실체를 찾는 그런 시도가 저로서는 일반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굉장히 신선하게 들렸다라고 하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고요. 아까 이제 드신 방탄소년단의 예나 그 다음에 이제 학문 탐구 방법론에 있어서의 접속, 융합, 통합의 어떤 정도나 어떤 지평이 굉장히 확장되는 이런 것들은 저는 명명백백한 사실에 가까운 예라고 생각이 되고요. 다만, 이제 이런 의문은 좀 제기할 수 있을 듯도 싶습니다. 그러니까 유전자는 DNA RNA 나선 곡선으로 해서 어떤 생명체에 주어져 있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한구:
그렇죠.

윤평중: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큰 부분이 결정되어있는 셈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잘 아시는 것처럼 문화 유전자라는 표현을 새로 만드신 분들은 이 교수님을 포함해서 그것에 답변해야 될, 설명해야 될 부담을 지게 된다고 보는데요. 문화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인간의 창조성, 창발성, 주도성, 자유의지 이런 것들하고 긴밀하게 이어져있거든요. 어떤 바깥의 요소에서 결정된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거부하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강한, 이게 이제 문화 일반, 문명이었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규정되어지는 측면을 강하게 담고 있는 유전자와 인간의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문화적이라고 하는 또는 문화라고 하는 관형사를 어떻게 이를테면 유기적으로 또는 효과적으로 그것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계신지 그게 상당히 저는 궁금했었습니다.

이각범:  
이것은 아마 우리 이한구 교수님이 추후 과제로서 생물학적인 유전자쪽 관점과 순수한 의미에서의 어떤 사회 문화적 관점에 대한 교합을 추진하셔야 될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이 문명의 구조를 3중구조로 분석하셨는데 그 3중구조라고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같이 하나로 묶어서 할 수 있는 어떤 스트럭처를 구성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이한구:
저는 이제 전통적으로 문명 이렇게 해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제국, 그러니까 같은 종교를 공유하는 거대한 제국을 문명이다 보통 이렇게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건 너무 막연한 규정이라고 보고, 3중구조로 그것을 분석한 것은 양파를 생각한다면 비유가 쉽겠습니다. 양파의 제일 중심부에 해당되는 부분이 저는 문명에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 신념 체계다 이렇게 우선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 신념 체계는 종교는 예술, 철학 이런 것들을 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런 신념 체계를 구체화시키는 두 번째 양파 껍질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사회체제가 그것을 이제 그 이념을 실현시키면서 둘러싸고 있고 제일 바깥쪽은 과학 기술이 이렇게 외피로 이루고 있다. 저는 그런 분석을 하면서 중심부로 갈수록 이제 특수성이 강화되고 바깥 부분으로 갈수록 보편성이 지배하는 이런 구조가 문명의 구조다, 이런 분석을 했습니다. 제가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구한말 서구문명이 이렇게 서세동점으로 들어올 때 제일 먼저 그들의 신식 무기에 놀라가지고 아 이 새로운 과학 기술을 배워야 되겠구나 라고 하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제일 먼저. 전통적인 그런 과학기술을 일단 버려두고 새로운 과학기술을 이제 도입해서 대응하려고 하지만 새로운 과학기술을 또 운용하는 사회체제가 전통적인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제 사회체제를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그때 나온 여러 이론들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논리로서. 그러면 그런 사회체제라는 것은 더 근본적으로 올라가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신념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차츰차츰 수용이 나중에는 종교와 철학까지도 서구의 것을 받아들이자는 논의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또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일부의 사람들은 근본적 신념체계만은 끝까지 지키려는 논의가 벌어집니다. 근본적인 신념체계만은 버릴 수 없다. 그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구상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구조에서 문명이라는 것이 그런 세 겹으로 이렇게 구성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윤평중:
저는 이한구 교수님의 문명의 3중구조론을 굉장히 흥미 있게 읽었는데요. 아마 가장 강력한 주장, 그 다음에 설득력 있는 호소력 있는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는 구조라고 보고요. 지금 예를, 굉장히 흥미 있는 예를 드셨는데 또 다른 어떤 예를 제가 들어본다면 가령 이제 이슬람 문명, 이슬람 문명이 아까 헌팅턴 이야기도 나왔습니다만 보편 문명으로 이렇게 자처했던 서구 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지리상의 어떤 근접성도 그렇거니와 가장 적대적인 중세 천년을 일관해서 그런 존재였었죠. 그래서 21세기인 오늘날에 봐서도 이한구 교수님의 아까 문명 3중 구조론이 그걸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게 핵심구조의 이슬람 신화, 그러니까 근본주의적인 신앙이라는 것을 온존하고 있죠, 이슬람 문명 특히 근본적인 이슬람 쪽에서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경제적인 구조는 21세기가 현대이므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라고 하는 것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물론 이제 정치 체제는 서구적인 것 하고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상당한 정도의 공통성, 공통점이 신앙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것에 우리가 발견을 할 수 있는 거죠. 세 번째 둘러싸고 있는 것은 보편성이나 어떤 서구화의 접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들이 훨씬 강하죠. 그래서 대표적으로 가령 이란같은 경우에 이슬람 신정공화국 아닙니까? 일종의 신정국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아시는 것처럼 원자폭탄을, 핵무기를 개발을 시도하고 있고 그것은 결국 현대 자연과학이나 공학기술의 어떤 보편적인 어떤 법체계나 문법을 이를테면 그것을, 그것에 입각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한구 교수님의 문명 3중 구조론이 그런 것들을 아주 명쾌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제가 어떤 작은 중요한 어떤 문제를 제기해본다면 이슬람 문명 제가 아까 이란 예를 들었습니다만 이슬람 문명이 아직도 완강하게도 그러니까 전 지구적인 문명이 통섭이나 융합의 방향으로 크게 보면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저항하고 있는 그야말로 결연하고 저항하고 있는 그야말로 대표적인 문명권이라고 그렇게 생각이 되기 때문에 이한구 교수님 입장에서는 이를 테면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문명의 미래 향배에 대해서 어떠한 추론을 하실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이각범:  
그러면 우리가 사실은 서구적인 문명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에서 우리만큼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같이 있었던 나라도 드문 것 같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라는 당시 1960년대인가요? 아주 장안의 베스트셀러였죠.

이한구:
정말 감동을 많이 주었죠.

이각범:  
거기에 쓴 한 대목이 있는데 새로 생긴 신장로에 뽀얀 먼지를 일으키면서 자동차가 옵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 저 멀리 앞에 시골에 노부부가 두루마기와 치마 저고리를 입고 걸어가는데 요새 같으면 차가 뒤에서 오면 길 옆으로 비켜서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분들은 새로운 차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인식이 덜했기 때문에 아주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가는 겁니다. 차는 오고 있는데. 그게 이어령 선생이 이야기했던 서구 문명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경외감과 두려움과 그리고 거기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필사의 탈출을 해야겠다는 아주 절박한 몸부림, 이걸로 상징적으로 하셨죠. 이어령 선생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우리한테는 문제가 되는 게 뭐냐하면 우리가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것은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었던 1860년대에 비해서 꼭 100년 뒤에 우리가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루거든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적어도 문명사적인 입장에서 보면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굉장히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나라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우리한테는 DNA로 아까 생물학적인 DNA와 문명적 DNA가 공존한다는 그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한구: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이렇게 충돌하던 시기도 있었고. 그러니까 특히 구한말 대원군 시절로 올라가면 그거는 완전 충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60년대 이후에 진행된 우리의 근대화 과정이라는 것은 넓게 보면 결국 서구 문명의 수용사가 아닌가. 물론 그 속에도 우리 전통은 이렇게 맥맥히 흐르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명의 융합과정으로 볼 때만 제대로 해석되지 않겠느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윤평중:
저도 이 교수님 말씀에 거의 전적으로 공감하는데요. 물론 이제 사회자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한말에 특히 근대로의 변환 과정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아쉽게도 탈락함으로써 우리가 지난 100년간 참 모진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를테면 해방 이후 좀 더 짧게 이야기하면 1960년대 이후에 근대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에는 아마 세계사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그런 이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문명 융합의 어떤 대표적인 살아있는 모델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고요.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의 기적적인 산업화나 그 다음에 민주화의 성취가 비로소 가능했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

이각범:  
네, 그래서 문화를 또는 문명을 충돌적인 입장으로도 보고 또 하나의 공존하는 틀로서의 문명 다원주의 이렇게도 볼 수 있는데 문명 다원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이한구:
문명 다원주의는 예컨대 지금 현존하는 문명, 우리가 5대 문명이다, 8대 문명이다 이렇게 나누지 않습니까. 대개 이제 종교를 기반으로 해서 서구 기독교 문명, 동양의 동아시아의 유교 문명, 힌두 문명, 불교 문명 이런 식으로 나눈다고 할 때 문명 다원주의는 그런 문명들이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고 서로 상호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것은 어렵다 이렇게 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제 예컨대 그들은 모든 문명에는 그 나름의 고유한 혼을 가지고 있어가지고 그 혼들이 서로 교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술적 용어로는 패러다임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통역 불가능하다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오늘날 세계화되면서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명이라는 것은 성립되기 힘들다고 봅니다. 그리고 너무 독자적인 독특성만을 주장함으로써 보편적으로 흐르는 문명사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윤평중:
문명 다원주의는, 서구 문명 보편주의가 갖는 장점이 있고요, 그 다음에 이제 명백한 문제점이 아까 모두에 이야기에 나온 것처럼 서구 문명 중심주의 또는 절대주의에 가까운 그런 퇴행을 모습을 보이죠. 거기에 대한 이제 반작용으로 제기된 게 말씀하신 것처럼 문명 다원주의이고 다원주의에 대한 상상력이나 포용 어떤 지평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드셨습니다만 문명 다원주의의 어떤 극단적 모델을 저는 이슬람 문명을 제가 한번 또 예시로 해보고 싶은데요. 특정한 나라는 거명하지 않겠습니다. 이슬람을 이를테면 국교로 채택하고 있는 어떤 지역에서는 지금도 해외 토픽에 가끔 나옵니다. 명예살인이라고 하는 관행이,

이각범:  
글쎄 말이죠.

윤평중:
들어보셨죠. 그래서 이를 테면 한 집안의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이 이를테면 집안이나 가문에 대해서 이를테면 명예를 훼손을 했다는 이유로 사실 바깥 세계에서 보면 전혀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유죠, 그런 이유를 들어서 이를 테면 자기 여동생이나 딸을 살해를 하는데 이게 법적으로는 실정법적으로는 그 해당 국가에서 명백히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라고 하는 뉴스를 우리가 듣게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그 문화에서는 특정한 자신들의 공동체의 어떤 신앙, 관행, 이런 것을 이게 이제 수 천 년 수 백 년 지속되어 내려온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볼 때 법적인 어떤 판단을 떠나서 인륜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지극히 비도덕적이고 반인간적인 그런 야만적인 풍습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문명 다원주의의 어떤 극단적인 형태, 행태는 이런 실제 엄존하는 딜레마적인 사례에 대해서 이것을 설명을 할 수 있어야 될 겁니다. 그런데 아마 상당히 입장이 좀 궁색하지 않을까 이한구 교수님 예시한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각범:  
우리가 인식론으로 따질 때 굉장히 중요한 것이 팩트, 사실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거고, 또 하나는 이것이 전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인터프리테이션, 해석의 두 차원이 충돌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저도 유럽에서 공부를 할 때 사회주의적 경향의 서적을 많이 탐독했습니다만 그쪽에서 이야기할 때 저희가 생각하는 팩트 중심의 이론은 그건 부르조아적 해석이라고 그러거든요, 일반적으로. 그런데 이 문명에 있어서도 그런 게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로 보면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으니까 가해자인 남성을 처벌해야할 것 같은데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오히려 가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그래서 돌로 참형을 받는 그런 아주 인권적으로 보면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그런 처벌을 받는단 말이죠. 그래서 이제 이것을 우리가 그거 잘못됐다라고 하면 그 사람들은 바로 너희는 서구문명 보편주의에 들어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한구:
맞습니다. 정말 그러니까 문명 다원주의가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은 아까 윤평중 교수가 말씀하셨듯이 서구 문명이 인류 문명의 유일한 패러다임이다 라는 것에 대한 반기를 든 게 있잖아요. 그래서 그것이 유일한 문명이 아니라 여러 문명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 확인시킨 점에서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문명이란 이름하에 온갖 야만과 그런 부정의한 일들이 그대로 묵과된다는 점에서는 정말 문명 다원주의가 안고 있는 큰 문제점이다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이각범:  
앞에서 말씀드렸던 문화 유전자, 문명 유전자 이것을 확대해서 문명을 문화 유전자의 결합체로 본다면 그 근거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한구:
예, 통상 이제 물질문명과 정신문화 이렇게 구분하는 방식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문명이라는 것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다 이렇게 우선 규정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문화는 문화에 대한 또 규정은 문화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또 생활 방식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수 있거든요. 그런 문화는 최소 단위가 문화 유전자로서 이렇게 구성이 되어있다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해왔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결국 문명이라는 것은 같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이니까 결국 문명이라는 것은 문화유전자의 결합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 제 논리는 그겁니다.

이각범:  
네. 여기에 대해서 우리 윤평중 교수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평중:
그러니까 이 교수님 말씀에 대해서 원론적으로, 원칙적으로는 동의를 하면서 또 간단한 이의를 제기해볼 수 있겠습니다. 며칠 전에 참 불행한 일이지만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부분적으로 불타지 않았습니까. 전 세계적인, 뭐 프랑스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런데 굉장히 인상적인 게 이를테면 우리가 이제 알고 있는 사실은 특히 유럽 대륙에서 가톨릭 교세, 신도들이 숫자가 이제 굉장히 하향세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당이 그렇게 전소하는 모습을 보고 비신자들까지도 정말 자발적인 비탄에 두루 잠기는 그런 모습, 거기에 더해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 전 세계에서 이를테면 복구비용이 답지한 게 천문학적으로 답지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들을 보면 노트르담 성당이 어떤 상징하는 가톨릭 신앙, 그 다음에 그것이 대표하는 프랑스의 국가적인 정체성 이런 것들이 이제 이 교수님이 명명하신 그대로 문화 유전자라고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들이 피부 색깔이나 국적이나 가치관, 개개인의 가치관까지 뛰어넘는 어떤 보편적인 호소력으로 사실은 인류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부분에 사람들의 심금을 이렇게 울리고 있는 융합적이고 통합적인 생생한 사례인 것이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는 굉장히 설득력 있는 진단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러면 또 한편으로는 아까 이제 제가 그 질문을 던졌는데 너무 난삽한 질문이어서 문화 유전자 이렇게 하면 이른바 사회생물학의 결정론적인 그런 어떤 영향력을 어떻게 하면 문화 유전적 개념으로 돌파를 하실 수 있는지 그게 이제 저는 개인적으로 궁금하더라고요.

이각범:  
사회생물학에 대해서는 바로 답변하셔야 되겠습니다.

이한구:
이게 유전자와 문화 유전자의 공통점이라는 것은 다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정보를 담지하고 있는 존재 그것이 유전자다 이거죠. 그러면 이제 우리 생태 유전자도 우리 몸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라는 메시지가 그게 다 담겨져 있는 것 아닙니까, DNA 속에는. 문화 유전자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어떤 식으로 하라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을 제가 문화 유전자라고 규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 차이점은 생체 유전자는 생물학적인 자손을 통해서 전수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문화 유전자는 꼭 생물학적인 자손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다른 존재들에게 전파되지 않습니까. 동시에 문화 유전자는 지금 생물학적인 유전자는 우리가 타고 난 자연 상태이지만 문화 유전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점에서는 일단 구별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생체 유전자도 가공을 해서 무언가 다른 여러 생물 종을 만들어낸다 하는 점에서는 또 어떤 창조적인 자유의지가 개입된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하여튼 간에 문화 유전자는 우리의 산물이고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생체 유전자는 자연의 산물이다, 이렇게 구별되는 측면에서는 그거는 구별되지만 진화의 메커니즘이 같다는 측면에서 같은 유전자다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아요.

윤평중:
그러니까 이 교수님의 문명 융합론 테제의 그 문화 유전자 그 부분이 좀 난삽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짚고 넘어야 될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그 이전에 어떤 문명 담론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문명론을 이야기하시는 선각자들이 있으셨고요. 그런데 이제 이한구 교수님의 문명 융합론과 그 이전의 문명 담론을 차별화시키는 결정적인 지점이 뭐냐하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인문학적인 또는 종교적인 어떤 영성에 기반한 어떤 거대한 비전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문명이 융합되어야 되고 앞으로 열린 문명으로 진행되어야 된다고 하는 것을 거대 담론의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디테일한 그 다음에 현대 자연과학의 어떤 진보와 직결된 그 다음에 현대 사회의 어떤 변화하고 맞물리는 중간에 콘텐츠를 그것도 어떤 과학적 성격, 체계적의 성격을 강렬하게 담아내면서 이것을 이제 결합시키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굉장히 설득력이 강한 저는 그런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각범:  
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에 쓰신 문명 융합론을 보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라고 하는 커다란 변화와 또 아울러서 정보화라고 하는 굉장히 큰 변화를 아우르고 계신데 정보 사회가 문화 유전자의 융합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계신데 정보 사회의 어떤 특징을 보고 정보 사회의 그 기능이 문화 유전자 융합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나요?

이한구:
저는 현대 정보사회를 세 가지 특성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하나는 이제 세상이 아주 좁아지고 있다. 그것은 이제 전 지구적인 연결망 사회로 지금 가고 있다. 그걸 제가 하나 특성으로 제시했고요. 빠르게 지금 이동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지금 인터넷이라든지 이런 전파의 빠른 정보가 거의 광속에 가까울 정도로 지금 이게 빠르게 이동하는 세상이 되고. 그 다음에 이제 빅데이터의 세상이 되었다. 저는 그 세 가지를 우선 들었습니다. 그 빅데이터라는 것은 온갖 데이터들을 전체 종합해서 새로운 어떤 패턴, 질서를 이제 추출해내는 그런 빅데이터의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보고 있고요. 그런데 이제 빅데이터 속에는 문화 유전자도 거기에 들어있다, 이렇게 저는 해석하고. 그러면 세상은 거의 지구가, 지구촌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한 동네가 되면서 빠르게 모든 정보가 교환되면서 그런 가운데서 문화 유전자의 뒤섞임 속도도 엄청나게 빨리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 바탕 위에서 문화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저는 그런 논리를 폈습니다.

이각범:  
이제 우리가 격차 문제로 들어가겠습니다. 정보 격차라고 흔히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계적인 통계를 보면 다른 많은 나라에서 정보격차는 경제적인 이유로 일어납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삼성 갤럭시 S10의 경우에 실제로 가격이 200만원에 육박하는 아주 고가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신기하게도 새로운 그 기술이 포함된 이런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아주 불티나게 팔리고 이미 미국에서도 이틀 만에 매진이 될 정도로 아주 빠른 속도로 이제 나가는데 그러나 우리나라나 미국하고는 달리 이런 새로운 제품에 대해서 못 사는 나라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보격차는 주로 경제적인 소득 격차에 의해서 정보 격차가 생긴다 라는 것이 다른 나라의 정설인데 우리나라는 그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차이에 의해서 정보 격차가 생깁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보통신 기기를 잘 활용하는 손놀림이 아주 민첩한 젊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5~60대 사이에 있어서의 세대 격차가 정보 격차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러면 결국은 이런 새로운 정보 통신 문명이 하는 격차가 세대의 격차로 연결되지 않는가, 그때 생기는 그 세대 격차는 도대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한번 살펴보고 싶은데요.

윤평중:
저는 이사장님 진단하고 제 생각이 약간 다른데요. 논의의 두 수준을 구별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앞부분 즉 정보격차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 정보격차라고 하는 것이 경제적 어떤 격차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바로 이한구 교수님이 문명 융합론을 미래 지향적인, 인류 보편의 문명 패러다임으로 전개를 하실 때 반드시 감안해야 되는, 왜냐하면 나라별로 또는 지역별로 명백한 경제 사회적 격차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보 혁명의 수혜 정도가 문명별로 또 나라별로 굉장히 다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문명융합론이 담아낼 수 있어야 되고요. 두 번째 논의는 뭐냐하면 우리의 경우에는 세대 간에 어떤 차이라고 하는 것이 이를테면 젊은 세대의 경우에는 디지털 기기 또는 정보 혁명의 수혜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고, 반면에 경제력은 있지만 나이 잡수신 분들은 50대 이상 분들은 아무래도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 생소하기 때문에 소외되고 있지 않느냐,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그것은 저는 부분적으로는 사실인 것으로도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러니까 정보 격차라고 하는 것이 경제적 격차와 맞물려있다고 하는 것은 그 논의의 차원이 훨씬 위에 있는 포괄적인 것이고요. 그 다음에 세대 격차라고 하는 것은 그와는 논의의 심급이 약간 다른 아래의 사실은 작은 어떤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측면도 있고요. 또 이게 이제 일반화시켜서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은 요새 6070세대도 얼마 전에 그런 뉴스도 나왔습니다만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개선되어가지고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은 그런 것들은 일반론적으로 일도양단하기에는 약간 조심스러운 어떤 가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각범:  
말씀하신 문명 융합론은 이게 당위론입니까 아니면 이 자체가 자인(sein)에 대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입니까?

이한구:
제가 말씀드린 문명의 융합은 1차적으로는 자인(Sein),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진단의 서술입니다. 그러나 이제 또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가 모든 이론을 당위적 차원에서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향후 미래에 대한 당위론으로 이것을 전환해서 말씀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논의는 자인(Sein)에 대한 서술이다.

이각범:  
윤 교수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셨어요?

윤평중:
저는 문명 융합론의 어떤 강점, 또는 호소력 가운데 큰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현대 철학 또는 현대 인문학 특히 영미 철학적 전통에서는 잘 아시는 것처럼 당위와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강력한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설령 그런 작업이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사실 인간이라고 하는 현실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의미 부여나 어떤 당위 설정 없이 우리의 현실적 역사적인 삶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명 융합론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사의 변환 과정을 사실적 변화를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내서 정보 혁명이라고 하는 그 증거를 제시하면서 담아내면서 동시에 이게 당위적인 졸렌(Sollen)적인 지향을 동시에 갖는 게 이게 열린 문명이 되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계시거든요. 그거는 저는 굉장히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는 그러면서 현실과 당위 또는 규범을 적절하게 매개시키는 조화시키는 저는 상당히 흥미 있는 그런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각범:  
그렇다면 문화 유전자의 융합이 초래할 새로운 문명은 지금까지 지금까지의 문명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한구:
네 지금까지의 문명은 크고 작은 칸막이가 있는 문명들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칸막이들은 많았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지금 새로이 전개되는 문명은 어떤 행태의 칸막이도 없는 문명이다. 그런 정보 사회의 그런 총체적 헤쳐모여라는 그런 말씀을 드릴 때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말하자면 지구 문명이라는 말 자체가 이 지구 위에 칸막이가 하나도 없는 하나의 인류 보편적인 문명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과거의 문명과 지금 시작되고 있는 문명은 다르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각범:  
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평중:
지금 앞부분은 동의하면서 약간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 교수님 주장을 쭉 통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대단히 미래지향적이고, 전향적이고, 그 다음에 현실과 당위를 이렇게 연결시키는 유의미한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실 이를 테면 당신의 입장은 뭐냐라고 어떤 분이 저한테 묻는다면 저는 문명 융합론보다는 문명 다원론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제 자신의 입장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하면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서구 문명 보편주의의 어떤 장점도 있습니다만 약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그 다음에 문명 다원주의는 아까 말씀하신 것, 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 그 다음에 이슬람의 사례들을 내서 그 극단적인 어떤 부작용을 우리가 확인했거든요. 아까 명예살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갖는 생각은 오늘날 그런 정도로 독단화 된 굉장히 닫혀진, 폐쇄적인 그런 자폐적인 이런 문명 다원주의의 패러다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어떤 학자나 지식인들이 과연 있을까. 이런 저는 의문을 갖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 질문은 이런 겁니다. 열린 문명 다원론을 우리가 이를테면 정초하는 게 가능하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되면 그런 열린 또는 합리적인 문명 다원주의는 이 교수님께서 주장하시는 문명 융합론하고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겠다, 않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저는 해봤습니다.

이각범: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비판적 정치 경제학을 주 전공으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좌파적인 학생 운동 세력하고 많이 이제 교류를 하면서 연구를 했는데 이란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학생들이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나니까 저보고 뭐라 그러냐면 예전에 팔레비가 지배할 때는 이란이 말하자면 중동의 최고의 왕자였죠. 이란을 대적할만한 다른 어떤 아랍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호메이니가 등장해가지고 이란의 국격이 급격히 추락함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운동을 할 때는 팔레비에 대해서 자본주의 세력이다 그래가지고 공격할 건수가 있었는데 회교라는 것을 들고서 나오니까 민중들에게 전혀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말하자면 저는 그걸 보고서 아 이게 말하자면 사무엘 헌팅턴이 이야기하던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아니라 문명의 충돌에 있어서 일어나는 이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길이 없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우리가 이런 면에서 보면 문명의 융합이라는 관점이 개별적인 문명이 갖고 있는 어떤 이념적인 경직성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한구:
앞으로 우리가 인류가 추구할 문명은 열린 문명이 되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금방 윤평중 교수께서도 열린 다원적 문명을 말씀하셨는데 여하튼 열렸다는 것은 닫힌 문명하고는 대립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닫힌 문명의 특성이라고 하는 것은 저는 배타주의 또 독단주의, 광신주의, 이런 것들을 특성으로 하는 문명이다, 이렇게 보고 있고요. 그러면 열린 문명은 이와 반대로 인간의 보편적 자유와 인권 또 보편적인 이성이 지배하는 문명이다 이런 식으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우리가 추구하는 문명이라는 것이 그런 닫힌 문명이 갖고 있는 배타와 독단, 광신들을 다 제거한 그런 문명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평중:
이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 긴박한 중요한 주제인 것이요, 아까 이슬람 문명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사실은 저는 북한 사회를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유일지배 체제인데 거기에도 국가 철학이 있지 않습니까, 잘 아시는 것처럼. 그래서 주체사상이라고 불리는 북한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국가 종교의 성격이 강하거든요. 그래서 남북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평화,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공존을 해야 할 텐데 문명 융합론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우리 현대 사회에 던지는 이런 도전을, 도전에 어떻게 응전을 하실 수 있겠는지 이런, 이런 대답도 좀 듣고 싶었습니다, 이 교수님한테.

이각범:  
제가 질문을 드린 이유를 우리 윤평중 교수님이 정확하게 짚어주셨는데요 만약에 저하고 같이 독일에서 공부하던 그런 막스레닌주의자가 북한에 존재한다면 그 사람들이 겪게될 좌절은 바로 그걸 겁니다. 북한이 자본주의 사회라면 펄펄 날면서 마음대로 비판하고 할 텐데  종교가 지배하는 김일성 유일사상이라고 하는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이니까 새로운 어떤 사회주의 이론으로서는 그 사회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하거든요.

윤평중:
북한에서는 막시즘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한구:
그러니까 얼마나 닫힌 사회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요.

이각범:
그러면 이한구 교수님께서 단순히 문명 융합이라고 하는 어떤 그 당위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아까도 자인으로서의 문명 융합 현상이 앞으로 계속 전개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셨는데 거기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배타, 독선, 닫힌 문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문명의 전개와 관련해서 이것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열린 문명이라는 말씀을 하셨죠. 그 열린 문명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이한구:
그 문제는 결국 우리 동아시아에서 인류의 미래 문명에 대해서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이어야 되겠느냐, 또 우리의 동아시아 유교 문명의 역할은 무엇이냐 이렇게 좀 거대 담론으로 말씀을 드려본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선두주자 아니었습니까, 근대 사회에서. 그렇지만 그 후에 또 한국과 중국이 이렇게 근대화에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세계무대에서 동아시아의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는 실정이 아닙니까. 최근에는 또 미국과 더불어 중국은 G2다 이렇게 해서 워낙 덩치 때문에 이런 해석도 하고 있고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그런 표면적인 현상만 보고 야 이제 동아시아 문명이 결국은 세계의, 세계 역사의 주인으로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표면만 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 되려면 문명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자문명 중심주의를 벗어나야 된다고 봅니다. 자기 문명만이 최고이고 다른 여러 문명들은 야만이거나 아니면 낮은 단계라는 오만과 독선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된다. 그래서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벗어던지지 못한다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덩치가 커진고 해도 여전히 골목 대장 정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 그래서 우리가 인류가 추구하는 그런 미래 역사에서의 주인공이 되려면 모든 문명들을 포용하는 보편적인 문명의 기준을 제시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평중:
이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래서 한중일 삼국관계를 제가 한번 생각을 해봤는데요. 굉장히 흥미로운 열린 문명 또는 문명 융합론에 1백년 이상을 앞서간 선구자로 저는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은 했지만 그 분이 단순한 행동가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열린 문명론자, 철학자, 사상가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안 의사가 옥중에서 동양 평화론이라고 하는 미완의 텍스트를 쓰면서 일본 문명 중심주의에 대해서 비판하고요, 또 중화 중심주의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안 의사가 제안한 게 한중일 삼국이 이를 테면 공통된 가치, 미래 지향성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는 그런 방안에 대해서 제안을 하거든요. 이를 테면 삼국 공동 화폐를 쓰자, 또 삼국 공동 은행을 운영을 하자, 또 교육과 문화를 통해서 서로 간에 왕래하고 교류하자, 그 다음에 삼국 공동 군대까지도 생각을 해보자, 이런 제안을 백년이 넘는 그 시절에 그 엄혹한 시절에 제시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그야말로 한국적 열린 문명론의 어떤 선구자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한구:
아주 공감이 갑니다.

이각범:  
이각범의 화쟁토론 제 74회 오늘은 문명 융합에 대해서 이한구 경희대학교 석좌교수님 그리고 윤평중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님 두 분 모시고 논의를 하였습니다. 특히 이한구 교수님은 최근 문명의 융합이라는 대작을 저술하셔서 이 책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시대의 문명에 대해서 같이 논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우리는 배타와 독선의 자문명 중심주의를 벗어나서 세계가 대해로 만나는 융합의 바다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문명이 새로운 융합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 아래에서 문명이 발전하고 인류가 화합하는 그러한 미래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또한 화쟁토론을 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끝)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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