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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연구, 유적·유물에만 치우쳐선 안돼"

기사승인 2019.04.25  16: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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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장, 25일 목요인터뷰..."'구전', '기록', '유적·유물' 3가지가 맞아야"

● 출연 :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장
● 진행 : 김상진 방송부장

앵커 : '부산경남라디오 830' 오늘 목요인터뷰는 2천년전 가야의 역사를 연구하는 대표적 향토사학자를 만나보겠습니다. 김해향토문화연구소 김종간 소장인데요. 제4대 김해시장을 역임하기도 한 김종간 소장님은 가야 관련 저서를 16권이나 출간하며,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종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장.

질문) 김해시장도 역임하시고, 김해신문 발행인도 하셨는데요, 제가 '향토사학자'라고 소개해 드렸습니다. 만족하십니까.

답변) 저는 내 고장을 연구하는 향토사학자, 너무 과분하지만 그것이 좋습니다.

질문) 우선, 언제, 어떤 계기로 가야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지금부터 40년전, 80년대 초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제가 모시던 분에게 언론사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왔어요. 가야에 대해서 좀 써달라, 그래서 제가 모시는 분이니까, 제가 글을 써야했는데, 사실상 미안하지만, 가락국의 후손입니다, 그런데도 가야에 대해서, 가락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월이 가서, 1984년도 귀향을 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누군지, 가야가 무엇인지, 이것을 공부해야 되겠다는 그런 심정으로,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질문) 최근에는 '가야사 복원·연구'가 현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가야사 연구에 대한 관심이 없다시피 한 것 같은데요. 격세지감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답변) 격세지감은 분명히 느끼지만,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당연하고 당연한, 우리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첫번째 길이, 어제를 바르게 하는 것이, 오늘이고 미래이기 때문에, 감사히 생각하면서, 크게 기대를 하면서, 빨리 진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 가야사 연구에만 그친 것이라, 책도 많이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책들이 있습니까.

답변) 책이라기 보다는, 가야에 대해서, 가야는 김해의 어제니까, 가야, 김해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제가 함부로 글을 쓰고 말을 해서 좀 비판도 받고 매를 맞아야, 가야를 올바르게 찾고, 우리 김해의 어제를 바르게 찾아낼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냈는데, 10여권 이상을 쓴 것 같습니다.

질문) 혹시,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소개도 좀 해주십시요.

답변) 아무래도 첫 저서가 되겠습니다. '가야의 얼을 찾아서'라는 것인데, 1987년도에 아마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저에게 그 당시에 나온 책이 한권도 없습니다. 두번째로 뽑는다면, 제가 1989년도에 격월간 '가야지'를 발행을 했습니다. 물론 김해의 어제, 가야, 가야국에 대한 모든 것을 찾고 싶다, 바르게 정립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했는데, 그것이 돈이 많이 들어가데요, 3권 내고, 말았습니다.

질문) 제가 가장 최근에 출간한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라는 제목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책 제목 중에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에서 미친(美親)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변) 사실 한문으로 쓰면, 아름다울 미자, 친할 친자, 아름다운 소리를 전한다는 뜻인데, 말그대로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미친소리 맞습니다. 제가 1985년도에 가야문화운동을 제창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얘기를 하고, 가야에 대해서 발표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친 놈, 미친 소리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한번 되새겨보고, 요즘엔 너무 전문가가 많찮아요, 그래서 고맙기도 합니다만, 이 미친 소리가 정말, 옛날에 나를 못되게 생각하던 그런 미친 놈으로 보지 말고, 정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역사의 한 축인 가야를 찾는데, 나의 이 한마디 한마디가 아름답게 우리 시민과 국민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그런 바램을 가지고 했습니다.

질문) 그 당시에는 가야에 대해서 연구하면 그런 평을 들었을까요.

답변) 저도 너무 화가 나고,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이 이럴수 있느냐 싶었습니다. 가야가 신라, 고구려, 백제하고는, 신라가 BC 57년에 건국을 하지요, 가야는 서기 42년입니다. 가야 중에서는 가락국 김해는 42년인데, 100여년 늦게 출발을 했지만, 분명히 아셔야할 것은 그 당시에는 고구려가 최고라고 했지만, 나당연합국이든, 어쨌든 신라가 3국 통일을 했는데, 제가 공부한 바에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그 힘은 신라인들의 뛰어난 지혜와 어떤 힘이겠지만, 신라인의 힘과 지혜 못지 않는 가락국의 어떤 후손들이 신라인이 됨으로 해서, 그 힘이 보태졌기 때문에, 가야의 역사는 찾아져야 되는데, 그것을 오히려 승자 중심의 어떤 책을 써다보니까, 가야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마, 택도 아닌 친구가 들고 나오니까, 미쳤다고 본 것 같습니다.

질문) 책 제목에서 '가야', '가락', '금관', 모두 비슷한 명칭인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변) 제가 볼때는 서기 42년부터, 가야는 크게 두가지 역사를 봅니다. 서기 42년에 건국이 됐다는 것은 가락국인데, 가락국기를 보면은 532년에, 제가 말하는 김해쪽, 가야 최고의 형님, 가락국이 532년에 신라에 병합이 됩니다. 그런데 또 가락국기를 보면, 삼국사기에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562년에 고령쪽 대가야지요, 대가야가 신라에 합병이 되는데, 그 가야, 6가야라고 그러죠, 6가야를 할때는 가야라고 하고, 가락하면 우리 김해지방만을, 서기 42년에 창국을 해서, 532년에 신라에 병합되는 김해지방의 나라가 가락국, 가락가야다 라는 겁니다. 금관이라는 것은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본기가 있고, 잡지의 지리지에 보면, 신라본기에는 금관국지 김수로왕, 금관가야 왕 김구의 이런 식으로 표현이 돼 있고, 삼국사기 잡지의 지리지를 보면, 가락국 또는 가야 또는 금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거기에다, 신라본기에는 가야도 나오고, 가라도 나오고, 가락도 나오고, 금관도 나오고 그렇는데, 제가 볼때는 금관이라는 것은, 가락국이 신라에 병합되고 나서, 신라가 우리 가락국에 가락군으로 이름을 내립니다. 신라의 부속 지방도시로 보는데, 옛날에 왕국이었다고, 너희들끼리 먹고 살아라, 자치주의 하나의 개념으로 금관군이라고 이름을 내려줬다고 삼국사기에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관을 그렇게 보는데, 요즘 와서 갑자기 모든 학자들이 우후죽순 들고 일어나, 금관가야라고 그렇게 쓰네요. 물론 금관가야라고 한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저는 금관가야보다는 가락가야가 맞다고 봅니다.

질문) 가야사 연구가 가지는 시대적 의미에 대해서도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텐데요. 먼저, 김해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답변) 김해시민들도 사실상은, 어찌보면 잘 모르고 있었죠. 왜냐하면, 정부가 이것을 밝히지 않고 찾지 않았기 때문에, 제 자랑은 아니고, 가야문화운동을 제창하기 전까지 우리 김해인들은, 그 때 당시에는 김해군이었습니다. 김해군은 가락문화제라는 것을 1960년대부터 쭉 해왔습니다. 자긍심을 가지고, 여기가 가락 김해 김씨들의 본향 아닙니까. 수로왕의 본향이다 보니까, 김해군민들이 아주 먼 옛날부터 자긍심이 대단했죠. 그렇지만, 나라가 외면하고 있으니까, 못느꼈는데요, 지금은 엄청난 자긍심을 가지고, 가야문화축제가 얼마전에 끝이 났지만, 아마 시민 모두가 두 손을 모으고 가야가 빨리 정립이 되서 우리 김해가, 대한민국의 중심이 된다 이런 뜻은 아니겠지만, 우리 김해를 중심으로 한 가야국의 역사가 조명돼서 세계인들에게 손짓을 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질문) 가야사 연구가 우리 고대역사를 재정립하는 계기 뿐만 아니라, 영호남 화합의 의미도 있다고 하던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영호남 화합하고, 가야사를 찾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영호남 화합, 이것은 안썼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정치인들이나, 특정인들이 영호남 화합을 자꾸 그러니까. 영호남 화합이 더 안되는 것 같아요. 가만히 놔 두면, 우리 김해도 호남지방으로 장가가고 시집간 사람이 많고요, 그것이 우리 가야사를 밝히는 것과 무슨 관계 있습니까. 그것은 좀 안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영호남 화합을 저해하는 소리인데, 그 원인을 보면 요즘 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가야사 재정립을 100대 국정과제에 넣고 보니까,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겠죠. 그래서 옛날에는 꿈쩍도 안하던 자치단체장이나 학자들, 온갖 사람들이 불춤을 추고, 불춤을, 무슨 가야를 잘아는 전문가들이 그렇게도 많고, 저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참 고맙게도, 남원에서도 가야고분군, 가야유물이 나왔다, 순천에서도 나왔다, 이렇게 하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 싶으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지켜보는데, 학자들이 잘 밝혀주시겠지만은, 저는 이렇게 봅니다. 남원이, 순천이, 여수가, 아니면 호남쪽에 그곳이 가야땅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은, 유물은 충분히 나올 수가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역사 정립은 3가지가 맞아야 된다고 보는데, 구전도 맞고, 유물도 나와야 되고, 기록도 있고 이래야 되는데, 아마 호남쪽에서, 지금 제생각으로는, 발굴되는 유적은 가야고분군은 맞지만, 많은 가야유민들이 그쪽으로 가서 살다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냐, 아니면 가야의 지방에서 만든 토기류나 생활용품들이 우수했기 때문에 그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요즘 우리 현대인들은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엄마, 아버지가 끼고 있던 금반지, 다이아몬드반지 다 빼버리지만, 옛날에 우리 어버이들은 엄마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가 사용하던 모든 물건을 다 같이 매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적에서 엄청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죠. 그렇게 봐야 되죠. 유물 좀 나았다고 해서, 갑자기 안하던 소리를 하면, 백제땅인데, 백제 임금들이나 백성들이 하늘에서 화내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질문) 그리고, 지금 정부나 김해시에서 '가야사 연구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방향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답변) 일반시민으로서,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빨리 찾아서 정립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역사 정립을 빨리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겠지만은, 우리 가야사는 너무 늦었거든요. 우리 김해시만 해도 국제학술대회를 한 지가 수십년입니다. 제가 88년도에 김해서 일본, 중국, 한국 학자들을 김해시에 모시고, 가야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이래, 오늘날까지 매년하고 있으니까요, 얼마나 오래됐습니까. 그런데 저도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만 학술보고서만 엄청나게 나오고, 뭘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제 정부의 국정과제에 들어가서, 지방자치단체나 학자들까지도 나서서 난리법석을 치고 있는데, 이 난리법석이 그야말로 좋은 법석이 돼서 빨리 정리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입니다.

질문) 가야사 복원 사업이 너무 유물, 유적의 발굴과 정비에 치중하다보니, 건국 신화라든지, 남아 있는 기록들을 가지고 역사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제가 앞서 잠깐 얘기를 했는데, 역사를 바르게 정립한다는 것은 참 좋은 소린데, 저는 3가지가 맞아야 된다고 봅니다. '구전', 우리 엄마가 앞산 저기는 고니산이다, 무슨 소린지 잘몰랐는데, 알아보니까, 앞 들에 고니가 많았다. 뒤에는 뱀산이다, 다른 산보다 그 곳은 뱀이 많았다. 그런 것을 보면 무시해서는 안되죠. 그리고 또 '기록'입니다. 기록인데, 우리 기록은 그 당시, 우리 세종대왕이 우리글을 만들기 전에는 중국의 글을 사용하다 보니까, 우리 역사서가 삼국사기,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가 있고, 그 뒤에 고려사부터 짝 있습니다. 중국의 삼국지나 후한서나,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요. 기록도 중요하지요. 그렇다보니까, 유적에 유물인데, 유적, 유물이 당연코 기록과 한줄의 기록보다도, 열줄의 기록보다도 더 우선시 되어버린단 말이죠. 구전, 이것은 전설, 아주 나쁜 어떤 그런 관계로 치부를 해버니 참 안타까운데,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 이어오고, 엄마로부터 엄마로 이어와서, 나에게 전해진 그 구전을 무시해서는 안되고, 기록 또한 무시해서는 안되는데, 너무 고고학 중심에, 유적 중심으로 가는 것은, 너무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 제가 친한 분들이 주로 고고학자들인데, 그분들하고 저는 자주 싸웁니다. 저는 양심으로 가락국기를 가지고, 아니면 김해 살다보니, 김해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많이 싸우고, 그 대신에 그 분들은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을 가지고 자기들이 우위라고 하지만, 그 유적을 가리켜 준 사람이 저 일수도 있거든요, 여기 좋은 것이 있으니 한번 와 보시요, 그렇게 해서 학자들이,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서 왠만한 기계 가지고 유적을 다 찾고 그러죠, 유적분포지도까지 다 만들어지고 하지만, 역사 정립은 너무 유적, 유물로 해서는 안된다, 일본을 보십시요, 나쁜 것도 많지만, 그런데 우리나라를 따라 오려고, 엉터리로 유물을 심어서 발굴하고 하는 사태도 일어나고 하는데, 저는 3박자를 골고루 비교하면서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소장님, 가야사와 관련해서 계속 연구하실 거죠.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답변) 저는 연구라기 보다는, 참 공부는 정말 답이 없어요. 끝이 안보입니다, 항상 돌아보면 부족하고, 가야사는, 저는 김해의 역사고, 또 크게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를 쓰고 나서도, 돌아보면서 후회를 하고, 이것이 좀 잘못됐구나 싶고, 이제는 더 많이 책을 보고 더 많이 발로 뛰면서, 나름대로 제가 생각한 부분, 잘못된 부분을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지만, 책을 한번 써봐야 되겠다는 생각인데, 건강이 허락한다면, 죽을때까지 이겠지요.

질문) 오늘 가야사에 대해서 폭넓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끝으로 정리의 말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가야는 우리 경남의 어제고, 또 경남의 미래입니다. 크게는 대한민국이 어제고, 대한민국의 미래고, 세계의 역삽니다. 우리 도민들이 오랫만에 2천년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께서 공약을 하셨고, 정부에서 추진하는 가야사 복원 사업인 만큼, 다른 어떤 욕심보다도 내가 누구며, 그것을 바로 알때, 우리의 내일이 자신있게 열릴 것이기 때문에, 우리 경남도민 모두가 가야사를 찾는데, 정립하는데, 작은 어떤 소리를 내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끝)

박영록 기자 pyl1997@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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