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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보광 스님 "정토종.분황사.법륜 스님, 원효 스님이 맺어주신 인연...통일염원 한국대장경 간행할 것"

기사승인 2019.03.10  20: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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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 시간은 동국대학교 전 총장 보광 스님과 함께합니다.

경주고 재학 시절 출가한 보광스님은 동국대 불교학.석사를 지낸 뒤 일본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불학자로, 정토사 회주를 맡고 있는 정토학의 권위자이기도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머리 스타일은 개성의 상징"이라며 청소년 두발자율화를 이끌어내 화제를 모았습니다. 

동국대 대외협력처장과 불교대학장, 불교대학원장 등을 거쳐 2015년 동국대학교 18대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후 4년동안 각종 대학평가에서 동국대를 역대 최고 순위에 올리며 동국대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 출연 : 보광 스님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보광 큰 스님 자리에 모셨습니다. 스님, 안녕하셨습니까?

▲보광 스님 : 반갑습니다.

△강동훈 : 교단은 계속 계시는 것이고 총장 보임만 내려놓은 것이죠?

▲보광 스님 : 예, 학교 교수도 명예교수로 강의도 다 끝나게 됐습니다.

△강동훈 : 조금 홀가분하다는 느낌을 받을 텐데, 어떻습니까? 내려놓으시니까?

▲보광 스님 : 처음으로 제 자유시간을 갖는 것 같습니다.

△강동훈 : 그래서 사실 BBS 뉴스와 사람들 이 자리에 제가 한 번 모시려고 몇 번 했었는데, 그때는 너무 일정이 빠듯해서 못 모셨고, 오늘에서야 모셨습니다. 전국에 있는 애청자, 그리고 지금 유투브를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광 스님 : 이렇게 BBS를 통해서 불자님들과 또 애청자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많은 불자님들과 교단, 또 동문들의 지원에 의해서 4년 동안 총장직을 행복하게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동훈 : 제가 최근 동국대학교, 저의 모교이기도 합니다만, 총장 이취임식을 다녀왔는데 아마 정말 오랜만에 전임 총장과 후임 총장이 한 자리에서 총장이 이사장을 통해서 신임 총장한테 교기를 전달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뭉클했습니다. 최근에 새로운 총장이 오셨는데, 그때 동국대학교에서 보지 못한 광경을 보면서 총장님이 새로운 하나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런 생각이 들던데. 어떠셨습니까?

▲보광 스님 : 총장을 해보면 어떤 보직도 마찬가지지만 끝날 때쯤 되면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연임을 많이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연임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후임 총장하고 상당히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총장이 처음 될 때부터 총장은 완주를 하는 마라톤 선수가 아니고 자기 구간을 뛰는 릴레이 선수다, 릴레이 선수는 자기 구간을 뛰고 힘이 좀 남더라도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이 가장 성공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총장을 연임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총장 선출이 이사장 스님의 주도 하에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총장 선출이 이루어졌고, 가장 민주적이고 그리고 총장이 제 밑에서 대학원장을 했고, 제 밑에서 보직을 하시던 분들이 하시기 때문에 이것이 연속적으로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것이었죠. 그래서 그것이 거의 수십 년 만에 처음이 아닌가. 그래서 전임 총장이 교기를 이사장님께 드리고, 이사장님이 후임 총장님께 드리는. 그날 행사가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습니다만 모든 분들이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강동훈 : 저희 BBS 텔레비전을 통해서 총장 이취임식을 한 번 방송을 할 텐데. 아마 이런 총장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해가 더 쉬울 듯합니다. 사실 동국대학교가 종립대학이고 우리나라의 스님들이 많이 재학하고 있는 그러한 유서 깊은 대학인데, 총장님이 스님이라는 것은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른바 신문에 났던 총장의 미소에 나왔던 지관 큰 스님 이후 두 번째인 것 같아요.

▲보광 스님 : 그렇습니다. 조계종으로 동국대학이 관리하고는 지관 스님께서 총장을 하시고 24년 만에 제가 비구승으로서 총장을 두 번째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학의 총장이 한 사람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사람을 길러야 됩니다. 또 보직 경험도 해야 되고. 그래서 지관 스님 이후에, 지관 스님께서 저를 교수로 뽑아 주었는데, 그래서 지관 스님 이후에 24년 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이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스님들이 할 경우에는 상당히 내 살림이다, 정말 사찰 살림 살듯이. 그런데 그렇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총장은 하나의 보직으로, 소임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보직으로 생각해서 끝나면 이 총장의 경력을 가지고 다른 발판을 삼으려는 이런 일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이 좀 아쉬운데, 앞으로도 그런 총장감을 많이 길러야죠.

△강동훈 : 동국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는 국내 최초로 된 거죠?

▲보광 스님 : 우리 학교가 종합대학으로는 최초로 1948년에 종합대학으로 인가를 받은,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최초의 대학입니다.

△강동훈 : 저희가 요즘 3.1 운동 특집을 기획하고 있는데 거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신 분이 만해 큰 스님이잖아요? 그 분도 동국대학교 전신,

▲보광 스님 : 제 1기 졸업생이고, 또 제 1기 동창회 회장을 하셨습니다.

△강동훈 : 저희 동창회가 한 제가 듣기로는 30만 명가량. 그 동창들이 전국 아니면 세계 굴지의 곳곳에서 많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데.

▲보광 스님 : 그렇습니다. 동창들이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나가서 각 지역마다 동창회를 가지고 있고. 미국만 하더라도 LA지역하고 뉴욕, 워싱턴 지역하고 몇 군데가 동창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총장배 골프대회고 하고, 또 그런 친화를, 서로 돕고 그러죠. 국내에서도 부산 지역이라든지 어디든지 거의가 총장배 골프대회가 다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강동훈 : 우리가 많은 분들이 동국대학교 이름은 많이 알고 역사가 깊은 곳이고, 또 불교계가 세운 종립 대학이다, 이렇게는 알고 있지만 사실 스포츠라든지 정치계라든지 특히 문화계 분들 중에 많은 동문들이 활약을 펼치고 있어요. 주로 우리가 아까 만해 스님 이야기도 했지만 야구 같은 경우에는 김성한 감독이라든지 한대화 코치라든지. 여러분들이 있는데. 혹시 스님이 그동안에 대외업무, 보직 하면서 이런 동문들이 우리 학교 발전에 도움을 줬다, 라는 분들이 있다면 여러 각계에 있을 텐데?

▲보광 스님 : 동문들은 가장 많은 곳은 종교계고요. 불교계. 사실 큰 스님들이 동국대학교 출신이 많으셨고. 특히 종단의 정화 이후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도제 양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종비생을 늘 길렀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고. 또 정치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지금 현직에 계시는 정치인들 가운데도 또 출신들이 여러분 계시죠. 그리고 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었고.

△강동훈 : 옛날 최형우 의원이라든지 이런 분들.

▲보광 스님 :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제 동국대 출신의 대통령이 아직 못 나왔다는 겁니다. 아마 저는 앞으로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강동훈 : 그만큼 역사와 전통,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본 바탕으로 양성이 된 분들이기 때문에.

▲보광 스님 : 또 문학은 말할 것도 없죠. 양주동 박사, 교수로 계실 때부터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정주 선생님도 계셨고. 저희들은 서정주 선생님에게 직접 강의도 듣고 했거든요. 그런데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정주 선생 강의를 들었다는 그 하나만 가지고도 굉장히 자부심이 있습니다.

△강동훈 : 연극영화과도 상당히 유명하잖아요? 거기에 동문들이 이덕화, 채시라, 또 이해랑 선생님의 극단도 있고요.

▲보광 스님 : 동국대학이 불교계 대학이면서도 굉장히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학과 신설에서는 굉장히 진보적으로 앞서 나갔습니다. 그때 연극영화과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그 직업을 별로 상류로 보지 않고 천시를 했던, 광대 이런 인식이 박혀있을 때거든요? 그런데 과감하게 우리가 연극영화과를 만들어서 앞장을 섰고. 또 시골에 있는 스님들이 시골의 순사들한테 하도 시달리니까 경찰행정과를 만들었습니다. 경찰행정과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됐죠. 그 외에도,

△강동훈 : 그 동문들이 경찰 요직들을 다 거쳤더라고요?

▲보광 스님 : 그렇습니다. 역대 경찰청장들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시골의 어느 사찰이라도 동국대에 관련 있는 지역의 경찰서에 관련 있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은 다 있어요. 그리고 또 임업과, 산림학과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바이오환경과학과가 됐습니다만, 전국 사찰에 사찰림이 많다 보니까 그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관리하느냐, 해서 임업과도 만들고. 또 제가 만든 것이 장례문화학과, 장례문화학과를 불교대학원이 만들었는데, 이것도 전국에 최초입니다.

△강동훈 : 그리고 최근에 보니까 외교부의 강 장관하고 총장님 재임 시절에 MOU를 체결한 것을 보니까 그것도 새로운 영사 관련한? 그것이 어떤 학과입니까?

▲보광 스님 : 영사 관련학과를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에 영사들이 많이 나가 있는데 그 영사들이 처음 나갈 때 7급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국제 활동에서 실질적인 활동하시는 분들은 그 분들이거든요? 교민들을 보살피고. 또 우리나라 국민들이 해외에 관광객이 엄청나게 나갑니다. 이것을 케어하는 것은 영사들입니다. 그런데 영사들에 대해서 시험만 봐서 들어갔지 특별한 교육 과정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법학과에, 법대에 외교부하고 해서 영사  법무반을 만들어서, 영사법무전공을 지금 해서 이번 학기부터 강의합니다.

△강동훈 : 새로운 과가 생긴 거죠?

▲보광 스님 : 예. 과는 생기지 않고 전공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오셔가지고 석좌교수로도 모시고 초빙교수로도 모시고. 그래서 영사법무법을 강의하게, 3과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외교부에서 강 장관님하고 최초로 우리가 MOU를 맺었죠. 그뿐만 아니고 제가 블록체인학과를 만들었습니다. 

△강동훈 : 스님께서는 아까도 말씀하신 것 보니까 새로운 용어를 많이 말씀하시고 그런 과도 많이 만들었는데, 저희가 볼 때는 스님이 그런 것에 관심 있을까, 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보광 스님 : 앞으로 금융은 전부 핀테크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은 아직 안 되었지만도. 그래서 대학원에 블록체인 핀테크학과를 만들었더니, 농협의 행장님이 직접 오셔가지고 MOU를 맺자, 우리 농협 직원들을 아예 정기적으로 매 학기마다 보내겠다, 해서 MOU를 맺어서 농협에서 장학금을 줘서 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총장을 하면서 모금을 하니까 아주 힘이 들어요. 앞으로 블록체인 채굴을 우리 학교에서 해서 아예 채굴해서 돈을 만들어 쓰려고 합니다.

△강동훈 : 제가 캠퍼스에 가니까 그런 블록체인을 연구하고 금융 관련 학생들을 연구하는 동아리도 이번에 하나 생겼더라고요?

▲보광 스님 : 동아리도 있고 연구소도 있습니다. 유명한 교수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됐고, 또 법학과에는 탐정법무대학원에,

△강동훈 : 일반 사설탐정의 탐적법무요?

▲보광 스님 : 탐정학과를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탐정법이 아직 통과가 안됐습니다. 그런데 사설탐정기관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것을 지금 불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그 분들이 경찰 출신이나 국정원 출신이나 이런 분들이 많이 하는데. 잘못하면 범법행위를 많이 할 수가 있어요. 이것을 법을 제대로 알고 하자고 해서 만들었더니 그 관련된 분들도 오실 뿐더러 탐정 소설을 쓰는 분들이 오세요.

△강동훈 : 소위 말하는 탐정 소설을, 굉장히 베스트셀러들이 많잖아요?

▲보광 스님 : 탐정 소설 쓰시는 분들이 이것을 공부하러 오셨어요. 그래서 법무대학원이 그 전에 학생 7명을 못 모았는데 지금은 50명 모으고 있습니다.

△강동훈 : 그러니까 대학의 학과를 전통과 위계 이런 것은 중요시하되 변화를.

▲보광 스님 : 변화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근래에 내가 나오면서 바로 만든 것이 대학원에 기술창업학과를 만들었습니다.

△강동훈 : 기술창업학과. 거기는 어느 대학원 소속이죠?

▲보광 스님 : 일반대학원. 일반대학원에 아예 독립학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창업을, 스타트업을 학부생 중심으로 했는데 학부생도 중요하지만 연속적으로 하려면 더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술창업학과를 만들어서 벌써 학생이 한 30명 정도 찼어요. 그리고 제가 나오면서 명상심리상담학과. 그것은 학부에만. 불교대학에 명상심리상담학과를 만들었습니다. 서울 경기에.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많은 교수님들이 반대를 하고 또 학생 TO를 타과에서 가져와야 되기 때문에. 정원을 내놔야 되니까. 5년 동안 평가를 해서 그것을 가지고 했습니다만. 왜 불교대학에 명상심리상담학과를 두느냐, 사과대에 두지 않고. 이런 보직자들까지 총장님, 오해 받습니다, 그래요. 불교 대학에 명상심리상담학과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 왜, 명상이라는 것은 간화선에 대한 명상이다, 심리학을 하는 것은 유식학에 대한 심리학이다, 이 이론을 채워야 되기 때문에 우리 학교가 해야 된다고 해서 만들었습니다.

△강동훈 : 지금 총장님 말씀을 쭉 듣다 보니까, 아까 처음에 말씀하셨지만 이렇게 동국대학교의 새로운 특성화된 과를 앞장서서 하셨는데, 그것을 어느 정도, 소위 말하는 입재를 하면 회향을 해야 되잖아요? 그 회항하는 마음 속에 이것을 완성을 더 해야 할 텐데, 라는 솔직히 말하면 인간이라면 연임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이 정도 했는데.

▲보광 스님 : 그런데 나는 틀만 만들어주고 거기에 실제로 하는 것은 교수들이 합니다. 대학의 변화는 제일 중요한 것이 커리큘럼의 변화입니다. 커리큘럼이 변화되지 않으면 안돼요. 그래서 저는 총장을 할 때 각 학과 단위의 교수회의를 총장실에서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 학과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 20년 전의 노트를 가지고 지금 써먹을 수 없다, 학과 이름을 바꾸든지 커리큘럼을 바꾸든지 바꿔라. 그래서 100%는 못했습니다만 한 65%정도 했어요.

△강동훈 : 교수님들 저항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보광 스님 : 일어일문과 같은 경우를 내가 일본학과로 만들었거든요? 일어일문과가 40년 됐는데 그러면 40년 동안 일어일문과에서 일문학을 해서 일본 문예춘추에 몇 명 당선됐느냐, 한 사람도 없어요. 학생 취업은 45%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대로 하면 안 된다, 일어일문과의 목표는 일본에 취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자. 그래서 일본학과라 해서 일본 경제, 문화 각 분야의 교수를 초빙하자. 일본 경제를 한 교수를 초빙했더니 학생들이 모여들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중점연구소까지 되어가지고 정부 지원을 받는 겁니다. 그 전에 빠져나가던 학생들이 모여들고, 대학원생들이 오고. 그래서 제일 큰 변화가 일어일문과가 일본학과로 바뀌어서 엄청난 변화를 했습니다.

△강동훈 : 동국대학교가 사실은 초기의 출발이야 불교정신이고 도제 양성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보면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발돋움 했는데. 그러면서 재임 기간에 동국대학이 상당한 평가기관에서 과거에는 하향세였는데 지금 많이 올랐어요?

▲보광 스님 : 옛날 선배들은 늘 옛날 3대 사립으로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실 대학이 발전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도 다른 대학은 날아다니니까. 그리고 우리는 의사구조가 이사들이 다양하게 들어오다 보니까, 일반 사립은 경희대라든지 한양대는 이사장이 딱 마음먹으면 바로바로 오너가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늦었습니다만 어쨌든 QS평가라고 해서 세계적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일보하고 하는데, 2012년에 우리가 첫 평가를 거기다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700위 밖이었습니다. 제가 해서 432위까지 끌어올렸는데, 약 300위를 끌어올렸죠. 어떤 해에는 거의 92위까지도 점프할 정도로.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학들이, 동국대학이 사실 알려진 것이 저평가되고 있어요. 

△강동훈 : 기본적인 내용이나 어떤 전반을 보면 상당한 것이 있는데. 홍보 미약인가요?

▲보광 스님 : 홍보보다도 불교 종립대학이다, 뭐다, 해서 저평가를 하고 또 인문사회 쪽만 평가를 하니 이공계를 별로 평가를 안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경제신문에서 발표한 것을 보면 우리가 이공계의 정량평가에서는 서울대, 고대를 앞서 있습니다. 연대가 7위이고 우리가 8위이고, 그 다음이 서울대이고, 고대입니다. 이런 정도로 이공계가 상당히 강세로 나와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 이야기가 동국대학을 처음에는 우습게 봤는데 막상 입학원서를 넣으려고 보니까 굉장히 벽이 높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강동훈 : 사실은 우리가 종립대학이 동국대학교 있고 위덕대학교 있고, 금강대학교가 있는데, 사실은 기독교계, 가톨릭계를 보면 연세대학교, 이화여대, 그리고 가톨릭의 서강대학교가 있는데. 거기에 비해서 우리가 항상 보면 조금 밀린다는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왜 밀릴까요?

▲보광 스님 : 거기에 우리가 연대라든지 이화여대라든지 서강대 같은 경우는 QS에서 상당합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100년 넘은 기독교 대학이 많이 있거든요? 숭실대도 있고. 그런데 비해서는 우리가 굉장히 높이 했죠. 그런데 연세대 같은 데는 아예 학교 건립 자금이 선교사들이 해서 외국에서 돈이 왔습니다. 이화여대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순수한 국내 자산으로 된 대학입니다. 외국에서 돈이 와서 선교자금으로 학교 건립이나 세브란스 병원이나 이것을 전부 거기서 다 투자를 해서 했고, 우리는 순수한 스님들이 바랑끈을 풀어가지고 했기 때문에 자본 면에서 차이가 많죠. 그리고 또 거기는 세브란스 병원을 많이 키워가지고 연세대학에 1년에 2,300억을 넣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동창회관이나 이런 것을 서울역 앞에 해서 거기서도 엄청나게 들어오죠. 그런 면에서 우리가 좀 달린다고 봐야죠. 우리는 재산은 많습니다만 다 산이고, 부동산이고, 그것도 국립공원으로 다 묶여있고, 그린벨트로 다 묶여있고 이런 산들이 많아서 활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강동훈 :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연세대나 이화여대나 서강대를 보면 불교 동아리 모임 활동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동국대는 비교적 다른 타종교 활동이 상당히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 불교계 일각에서는 그런 것은 좋지만 종립대학교의 창학정신을 훼손하는 소위 말하는 적극적인 이교도들의 일탈행위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이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총장 하시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보광 스님 : 과거에는 그런 점이 많이 있었는데, 근래에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학생들 가운데 그런 학생들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그렇다 해서 그분들처럼 채플을 강제적으로 하는 것은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에 명상과목을 만들어서 전교생이 명상을 합니다. 저는 우리 종립대학의 건학이념의 교육의 성공은 법당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주저하지 않고 법당을 자기 방 들어가듯이, 설사 다른 종교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이것만 해주면 충분히 건학이념의 구현이다, 생각을 해서 명상 과목을 법당이나 대각전이나 명상실에서 하거든요?

△강동훈 : 동국대학교 교내 캠퍼스 내에 정각원이 그 역할을 하는 건가요?

▲보광 스님 : 정각원이라는 법당도 있고 대각전이라는 법당도 있고. 또 명상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제가 총장이 됐을 때까지 교내의 강의실이나 사무실에 불상 하나도 없었어요. 총장실조차도 부처님 몇 개 하나 없었습니다. 제가 600개를 만들어서 전 강의실, 전 사무실 다 부처님, 석굴암 부처님을 다 모셨습니다. 그래서 그것만 봐도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강동훈 : BBS 뉴스와 사람들, 전 동국대 총장이시죠. 보광 큰 스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스님, 개인적인 출가 인연을 좀 나누겠습니다. 스님의 은사 스님이 제가 알기로는 도 자, 문 자, 도문 스님이라고 들었는데. 그 분이 항상 저를 만나면 옛날 대각사 주지 할 때 용성 스님 말씀을 참 많이 하셨어요. 또 이번 3.1 운동 100주년 기념에 용성 스님을 빼놓고 진행할 수가 없는 것 같은데. 용성 스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보광 스님 : 용성 스님이야말로, 만약에 용성 스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이 있을 수 있느냐. 왜냐하면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를 만들었듯이 용성 스님이 전통불교를 우리는 되찾아야 한다, 해서 건백서라는 것을 1925년에 총독부에 냈습니다. 2차에 걸쳐서. 그것이 실현은 안됐지만 그것이 바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정화 정신입니다. 

△강동훈 : 소위 말하는 비구의?

▲보광 스님 : 그래서 용성 스님은 독립운동도 하셨지만 전통불교를 그대로 되살리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셨고, 계율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고 하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의 뿌리는 용성 스님으로부터 근래에 이루어졌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강동훈 : 그것을 학문적으로 자료를 잘 취합해서 용성 평전이라는 책도 내셨던데. 

▲보광 스님 : 그렇습니다. 제가 저희 은사 스님인 도 자 문 자 스님께서 자료를, 직계제자인 도문 스님으로부터 그 자료를 받아가지고 전서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그것을 제가 대각회에서 지원해줘서 전부 새로 20권짜리로 현대말로 알기 쉽게 번역하고 자료를 전부 전산화까지 하고. 모바일로, 핸드폰으로도 용성 스님 자료를 다 찾아볼 수 있도록 모바일까지 다 했습니다.

△강동훈 : 스님 순수 개인으로 하신 겁니까?

▲보광 스님 : 아닙니다. 대각회에서 지원을 해줘서, 그래서 했고. 이번에 김택근 작가에 의해서 용성 평전을 알기 쉽게 아주 잘 냈습니다. 금년에 행사들이 여러 가지 많이 있습니다만 6월 9일, 10일 경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용성 음악회를 합니다. 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이 해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서 서울시에서 주관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 했던 그 장소에서 음악회를. 33인 가운데는 최초일 거예요. 그것을 하고, 글짓기나 사생대회도 하고 금년에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6월 9일에 저희 BBS에서도 중계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의 두발을 자유화 하셨다고 아까 소개를 드렸는데. 스님은 머리 깎잖아요? 그런데 머리 기르는 것이 좋았던 겁니까? 아니면 당시 학생들은, 저도 학교 다닐 때 머리를 소위 말해서 밀고 다녔는데. 어떻게 두발 자유를?

▲보광 스님 : 제가 국가인권위원회 6년간 인권위원으로 있었습니다만, 그때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를 조성하자는 그 단장을 내가 맡았어요. 1년 동안 하면서 사람이 가장 인위적으로 자기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뿐입니다. 다른 것은 다 그대로 있잖아요? 그런데 제일 예민할 때에 머리를 조금 기르고 싶고 또 변형하고 싶고. 그런데 머리 깎는 것도 두발 자유화에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머리가 길면 학생들이 공부에 소홀하고 한다고. 그러면 머리가 백발이 된 선생님이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것하고 검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것하고 차이가 무엇이 있습니까? 노랗게 물들이는 것도 흰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것도 선생님이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노랗게 물들이고 싶다. 이것을 왜 막느냐, 해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 제가 52가지 법안을 변경을 시켰습니다. 권고를 해서. 그래서 두발 자유화를 해야 된다. 

△강동훈 : 어떻게 보면 일제의 잔재 중에 하나였잖아요?

▲보광 스님 : 그렇죠. 그래서 자기의 몸을 가지고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싶을 때 그것을 아름답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으냐. 누르지 말고. 그런 이야기를 해서 그것을 통과시킨 일이 있습니다.

△강동훈 : 지금 이 방송을 시청하는, 특히 유투브로 시청하는 분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 많은데, 참 아이러니하게 머리 깎은 스님께서 여러분들의 두발을 자유화시켰다, 이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을 나누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다됐습니다. 끝으로 아쉬움, 여러 가지도 있고 있는데, 사실 도문 스님 상좌 가운데 법륜 스님도 계시고, 같은 경주 출신이죠? 그 분과도 인연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보광 스님 : 스님께서 분황사 주지를 할 때 불교학생회를, 영남불교학생회라고. 경주 고등학교가 바로 분황사 밑인데, 불교 학생회가 한 400명 나갔어요. 그래서 법륜 스님은 제 한 해 후배이고, 또 그 밑에 월암 스님도 있고. 또 밑에 학담 스님, 학담 스님은 서울법대 다니다가.

△강동훈 : 원래는 법명이 학담 스님 전에 무슨 스님을 쓰셨죠? 법명을? 서울대 출신이고.

▲보광 스님 : 학담 스님이 법성 스님이라고 했죠. 서울대 1학년 때 오셔가지고 출가를 해서 승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어요. 보교 스님이라고 서울대 사대에, 환속을 했습니다만, 요가의 전문가이시고. 이 분도 승복을 입고 대학을 다녔고. 그래서 그런 분들이 한 20명 넘어요. 또 룸비니, 네팔 룸비니에 대성 석가사를 짓고 있는 법신 스님, 그 분은 평생을 거기에서 하시고. 그래서 저는 그 중에서 꼴찌 정도 됩니다만, 다 법륜 스님이나 학담 스님, 월암 스님, 또 그 외에도 지금 훌륭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강동훈 : 제가 기억하기로는 법륜 스님의 속명의 최석호 법사이셨고, 경주 불교학생회 다닐 때 에밀레종을 왜 방치를 해놓느냐, 울리게 해달라는 그런 운동도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징적인 것이 무엇이냐면 법륜 스님도 정토회를 하고 스님이 지금 회주로 계신 곳도 정토사이고. 정토와의 인연 고리가 있나요?

▲보광 스님 : 분황사가 원효 스님이 17년 살았던 데거든요? 거기 사시면서 원효 스님이 하신 것이 정토회향이죠. 불교를 귀족불교를 서민불교화하면서 모든 대중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도록 하는 이런 운동을 하신 영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평생을 원효 스님 사셨던 분황사에서 출가를 했고 또 지금 현재 분황사 법당의 현판이 보광전입니다. 그래서 보광이라는 이름이 됐고. 또 제가 박사논문이 원효 스님의 정토회향이에요. 그래서 원효 스님의 인연으로, 평생을 원효 스님하고 용성 스님의 인연이 평생을 제 학문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강동훈 : 총장 스님, 많은 소임을 내려놓으시고 조금 한가하시겠지만 출가자는 한가하면 안 되잖아요? 무언가 하나 더 해야겠다는 것이 있을 텐데.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보광 스님 : 제가 역경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동국대 역경원장을. 다른 보직은 다 내려놔지만 그것은 지금 하고 있는데. 고려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해서 전산화를 다 했어요. 그것이 350권입니다. 700페이지 책으로. 그런데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은 인도 불교하고 중국 불교가 중심이지 한국 불교는 없습니다. 안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신라시대부터 최근 갑오경장까지 일어났던 한국 불교의 모든 문서들을 지금 불교학술원에서 아카이브 사업을 합니다. 한국 불교를 전산화하는 책을 냈어요. 이것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번역이 다 끝나면 한 350권 됩니다. 한국 부분만.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합쳐서 현 대한민국 시대의 한국대장경이라는 책을 내야 된다,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강동훈 : 고려대장경에 이어서 한국대장경.

▲보광 스님 : 이 두 가지를 합쳐서. 그러면 700페이지 책이 총 700권이 됩니다. 이것을 내고 전산화를 해야 된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고려시대 때도 몽골한테 국난을 당해서 고려대장경으로 인해서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안정시켰듯이 앞으로 남북통일과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한국대장경이 나와야,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만이 아니고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된다. 그래서 저는 한국대장경을 발행하고, 지금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1년에 70권씩 해서 10년 내면 됩니다. 이미 경전도 번역이 되어 있기 때문에 큰돈도 안 듭니다. 그래서 정말 통일의 성업주를, 그런 인연 있는 분을 만나면 반드시 이것을 국가사업으로 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강동훈 : 우리 뉴스와 사람들의 주 청취자들이 정치인들이 많은데, 관련 분야에 문광위라든지 교육위 이런 분들이 보광 스님의 원력, 결국은 남북통일을 이루는 데는 단순히 정치적, 사회적 영향뿐만 아니라 정신적 문화의 중심점도 될 텐데, 그것이 바로 한국대장경의 완성이다.

▲보광 스님 : 이것이 됐을 경우 한글로서는 최대의 분량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100년, 200년 지나면 한글이 엄청나게 변합니다. 이것은 한글연구에도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되고 또 이것으로 인해서 부처님의 가피로 우리나라에 통일과 평화가 깃들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동훈 : 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뉴스와 사람들에서는 불교 종립대학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보광 큰 스님과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 스님께서 출가자이지만 동국대학교를 혁신하고 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의 비전을 던지는 그러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큰 일을 하실 것이라 믿고, 오늘 스님 나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보광 스님 : 감사합니다.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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