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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4·3 군법회의 불법 진행 인정한 첫 사례”

기사승인 2019.01.23  10: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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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 이슈 따라잡기

● 출 연 : 조수진 뉴시스 기자

● 진 행 : 이선화 앵커

● 2019년 01월 23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이슈 따라잡기

[이선화] 제주도의 핫 이슈를 보다 깊고 폭 넓게 알아보는 시간이죠, ‘조수진 기자의 이슈 따라잡기’.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궁금한데요. 뉴시스 제주본부 조수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수진] 안녕하세요.

[이선화] 오늘은 어떤 이야기 나눠볼까요?

[조수진] 네. 지난 한 주 제주 도민 모두를 기쁘게 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70년 만에 억울함을 풀게 된 분들 이야기인데요.

[이선화] 아. 제주 4·3 생존 수형인분들이 무죄 선고를 받은 걸 말씀하시는군요. 저도 그 뉴스 보면서 굉장히 울컥했습니다.

[조수진] 네. 지난주 목요일이었던 17일 제주지방법원은 4·3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군사재판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선 공소란 검사가 형사 사건에 대해 법원의 재판을 청구하는 신청을 말합니다. 공소 기각이란 법원이 소송 조건이 미흡하거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바로 종결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이번에 공소 기각 선고를 받은 수형인 18명은 4·3 당시 소송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진행된 군법회의에 부쳐져 내란죄나 간첩죄 혐의를 받고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은 분들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1948년 25일동안 군법회의는 12차례가 열렸으며 민간인 871명이 재판을 받았습니다. 다음 해인 1949년엔 15일동안 군법회의가 10차례 열려 민간인 1659명이 재판을 받았고요. 총 2530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에 대한 재판이 단 22차례 만에 이뤄진거죠. 평균적으로 한 차례당 115명이 한꺼번에 재판을 받은 셈입니다.

앞서 검찰 역시 지난달에 있었던 재심사건 결심 공판에서 “공소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으니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며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버텨낸 이 분들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당시 군사재판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일관되게 재판 받은 이유를 모른다고 진술하는 점, 단기간에 그 많은 사람들을 군법회의에 넘겨 예심조사나 기소장 전달 등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추정하기 어렵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선화] 공소 기각이긴 하지만 ‘사실상 무죄’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군요. 그분들이 억울함을 푸는 데 70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정말 다행입니다. 4.3 당시 수형인들이 공소 기각 선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요?

[조수진] 네. 그렇습니다. 이번 공소 기각 판결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점도 그 때문입니다. 법원이 4·3 당시 진행된 군법회의가 불법으로 진행됐다는 것을 인정한 첫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4·3 생존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 개시가 결정된 것은 작년 9월이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구금돼 군법회의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청구인들이 구속 기간인 40일을 초과해 구금된 사실과 폭행 및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던 일들을 인정할 수 있다”고 재심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재심을 청구한 수형인분들은 지난 1948년 하반기에서 다음해인 1949년 7월 사이 당시 임시로 사용하던 수용소인 주정공장이나 제주경찰서 등 수용시설에 강제로 구금됐습니다.

이후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수감 생활을 하게 됐구요.

아까 군사재판에 회부돼 수감생활을 한 민간인이 총 2530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공소 기각 판결로 나머지 분들에 대한 재심에 대한 기대도 더 커지게 됐습니다.

[이선화] 누명을 쓴 것도 억울한데 징역까지 사시고. 다들 왜 끌려가는지도 몰랐다고 하시던데. 안타까운 사연이 많겠습니다.

[조수진] 네. 이분들이 당시 끌려간 경험을 들어보면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구한 사연들 뿐이었습니다.

89세인 오회춘 할머니는 육지에서 물질을 할 해녀를 모집한다는 말에 서류에 도장을 찍었는데 이게 문제가 돼 전주형무소로 끌려가 10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박동수 할아버지는 열여덟살에 아버지가 군인들에게 잡혀 밭에서 총살당하고 군인들이 옷도 갈아입지 못한 자신의 몰골을 보고 폭도라고 의심해 잡아가 인천 형무소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88세인 박내은 할머니는 서귀포 표선면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토벌대가 마을에 불을 놓자 산으로 도망가 산 속에서 숨어 생활을 하다가 붙잡혀 남로당 폭도로 내몰렸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이 분들이 감옥을 나와서도 죄인이라는 오명과 함께 지난 70년을 살아오신 부분입니다. 이날 선고 직후 어르신들은 “우린 이제 죄가 없는 사람”이라며 연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선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분들의 한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네요. 재심이 있기까지 70년이 넘게 걸렸는데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수진] 4·3 수형인들의 증언은 있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당시 군사재판과 관련한 기록은 수형인 명부가 유일했습니다. 수형인명부는 수형인의 이름이나 형무소, 형량 등을 기록한 문서로 검찰이나 군사법원에서 관리합니다.

이 문서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국회의원이 지난 1999년 지금의 국가기록보전소인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사 보관창고에서 발견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당시 추미애 의원은 명부를 보고 폭도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학생이나 농부, 여성 같은 양민들이 구체적인 죄명이나 사유 없이 형량과 형무소만 기록돼 있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공개했다고 합니다.

이후 지난 2013년부터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이 명부를 바탕으로 수형인을 직접 찾아다니며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생존 수형인을 모아 이번 재심까지 이끌게 됐습니다. 또 청구인 측 변호인단의 노력으로 4·3 당시 한 연대장이 형무소장에게 형 집행을 요청한 군 집행지휘서 등 추가적인 자료도 얻게 됐습니다.

[이선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이번 재심 배경에 있었군요. 하지만 또 안타까운 것이 수감 생활 중에 옥고로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분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생존 수형인분들이 많지 않을텐데요.

[조수진] 네. 이번에 공소 기각 선고를 받으신 분들 연령대가 80대에서 90대입니다. 나머지 수형인 중 지금까지 살아계신 분들이 10명이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변호사들은 생존 수형인 외에도 돌아가신 분들의 재심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진술 기록이 없고 법정에 나와서 증언도 할 수 없어 재심 개시 결정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수형인에 대한 재심이 큰 의미가 있겠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법원이 4·3 당시 군사재판이 무효라고 인정한 만큼 살아남은 수형인들의 억울함만 해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불법적으로 진행된 군부회의의 판결을 그대로 놔두게 되는 것이죠. 돌아가신 수형인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수감 생활을 한 것 똑같은 건데요.

[이선화] 네. 저도 거기엔 동의합니다. 하지만 2500명이 넘는 수형인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려면 얼마나 또 오랜 시간이 걸릴지 걱정이네요. 한꺼번에 진행하거나 빨리 진행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조수진] 검찰이 나머지 수형인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재심을 청구하거나 나머지 재판에 대한 진상조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선 4·3특별법의 전면 개정이 절실합니다.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의 양동윤 대표는 어제 열린 제주도의회 4·3 특별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4·3은 개개인이 겪은 희생사인데 그에 비해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양 대표는 “지난 2003년 정부가 4·3 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한 뒤 진상조사가 멈춰섰다”라며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특별법 개정안에 추가 진상조사를 위한 조항이 보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책임 있는 기관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선화] 네. 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죠.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미래 세대에게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번 18명의 4·3 수형인에 대한 공소 기각 판결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단초가 되길 바랍니다.

조수진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도 기대하겠습니다.

[조수진] 네, 감사합니다.

 

이병철 기자 taiwan08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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