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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파노라마] 이성운 교수 “한가위 불교의례는 무주고혼 위로…고려 때는 무차대회”

기사승인 2020.09.30  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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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배재수 사회부장
*출연: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프로그램: BBS뉴스파노라마 [특집] - 한가위, 불교적 의미


[배재수 앵커]
추석, 한자 풀이로 하면 가을 저녁, 그러니까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인데요. 유난히 달이 밝은 명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용어입니다. 순우리말로는 한가위라고 하는데, 한국세시풍속사전을 보면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말로 두 단어가 합쳐져서 8월의 한 가운데, 또는 가을의 가운데 가장 큰 날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추석 한가위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 말고 불교적 의미와 풍습 같은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불교의례 전문가시죠, 조계종 화합과혁신위원회 기획위원도 지내셨는데요.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이성운 교수님 전화 연결해서 관련된 이야기 자세히 나눠보겠습니다. 이성운 교수님, 안녕하세요?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나모붓다야, 이성운입니다.

[배재수 앵커]
네, 안녕하세요. 우리가 추석 한가위 하면 학교 다닐 때 신라시대 길쌈놀이, 그러니까 베 짜기인 가배에서 비롯됐다고 배운 기억이 있는데요. 한가위의 불교적 의미와 불교적 유래 같은 것이 있을까요?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가 길쌈놀이니 가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죠. 그런데 불교가 사실은 출세간을 지향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세간적인 놀이와 결합된 것들, 아니면 민속적인 것들이 결합된 것이 사실은 오랜 역사에 비해서는 불교에 많다고는 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사실 가배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만 이 말이 불교의 전통 속에서 17세기, 1660년 경의 문헌입니다만 불교의 4대 명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교의 4대 명절 하면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되신 날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4대 명절은 정조, 그러니까 음력 설날이고요. 단오, 지난 달 백중, 또 이번에 가오라고 합니다. 가배라는 말에서 아마 나왔을 것 같은데 한자어가 더할 가 자에 단오 할 때 오 자, 정오할 때 오 자입니다. 이 가오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아마 가배라는 말이랑 의미가 같을 텐데, 도대체 뭐 하는 날일까, 라고 굉장히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불교의 전통자료들이 의외로 많이 있지 않습니다. 그동안 가배, 가오, 한가위에 대해서 알려져있는 것이 사명일, 한가위 같은 사명일에 하는 시식이라고 있습니다. 일체 혼령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의례인데, 이 시식의 일종의 가형이라고 할까요? 그런 말이 있는데 그 말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중추 보름날 무슨 제사를 올리는가, 오나라 충신 오자서를 위함일세. 곳곳마다 이 때에 선열의 맛을 닦아 선열의 미를 준비하여 혼령들을 음식 먹게 하고 주린 배를 면하게 하네.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유명한 불교의례서 오종 범음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조금은 황당할 정도로 갑자기 오나라 충신 오자서가 왜 나올까,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보면 오나라 충신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들은 추석에 불교가 행하는 행위의 목표 또는 목적, 양태가 드러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있다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만 우리가 흔히 제사를 지낼 때 조상 제사를 지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상 제사라고 하지만 실제로 불가에서는 일체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고, 국가의 한 종교로서의 불교는 국가의 왕실 혼령이라든지 스님들의 전대 부모님들, 조상님들 혼령이라든지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주고혼의 혼령들 일체를 청해서 제사를 지내는 가운데 종실, 또는 요즘으로 말하면 호국영령들 이런 분들에게까지도 제사를 지내는 날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재수 앵커]
추석 한가위 지내는 차례, 제례상에 차를 올리던 풍습이 불교에서 유래됐다고 하지 않습니까? 불교식 차례법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차례하면 흔히 말해서 다례라고 설명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사회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고 그 주장이 어느 정도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차례는 정조, 음력 설날 지내는 차례로서 선대 조상의 순서대로 예를 올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타제, 또는 우리 말 차례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그것은 개인적인 견해인데 그 견해를 지지하는 분도 적지는 않습니다만. 불교식 차례법이라고 햐면 다례법이어야 하는데 그 다례법이라고 하기에는 현재는 다례를 올리는 경우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전통 불교 다례를 소개하기에는 좀 그렇고 명절 때 불교식 제사, 이런 표현을 씁니다. 제사라는 말이 사실 불교에서 행해왔다고 보기가 조금은 거리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씁니다만 일반적으로 제사라고 하면 불교의 공양과 약간은 대칭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때 제사 또는 차례 또는 다례를 어떻게 올리느냐의 문제가 전통의례를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에서 2011년에 아마 불교식 상제례 안내 이런 문헌을 냈는데 저도 거기에 일정 부분 기여를 했습니다만 여섯 단계 내지 일곱 단계를 제시해요. 영가를 모신다든지 제수를 권한다든지 불법을 전한다든지 축원을 올린다든지 편지 올린다든지 영가를 보낸다든지 제수를 나눈다든지 하는 일곱 가지 단계를 이야기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무렵부터 제일 중요한 것이 불교에서는 정명단을 모신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정명단은 불교 말로 하면 거불입니다.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이라고 해서 의례, 제례, 아니면 조상님을 모시고 제수를 올리고 부처님 말씀을 나누는 자리를 정명해달라는 삼보를 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통. 그 다음에 영가 청하기, 우리 불가에서 일정하게 이런 말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만 저는 일반적으로 청신이라고 합니다. 조상신을 모시는 자리여야 한다, 영가라는 개념도 틀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좀 다르다고 보여지고요. 혼령들을 모시고. 그 다음에 혼령을 모셨으니까 이 분들에게 공양물을 올려야 되지 않습니까? 전통적으로 불교 공양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육법공양, 향, 등, 화, 다, 과, 미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불교 제사가 대부분의 사찰에서 관음시식 이런 이름으로 지내지고 있습니다만 불교 제사에는 영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혼령에게 밥을 올린다는 뜻이죠. 종사영반이 있고 상용영반이 있는데 이 영반에는 보통 다섯 가지가 올라갑니다. 향, 등, 화, 다, 과, 미에서 꽃이 빠져요. 향, 등, 다, 과, 식이라고 해서 향과 등불과 차와 과일과 음식이니까 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것들을 올리는데 이걸 올릴 때 불교식 제사에서는 이 공양물이 내가 정성을 다했습니다만 이 공양물이 더욱더 훌륭한 공양으로 선열의 선의 기쁨이, 참선을 해서 얻은 지혜를 나누는 기쁨이 들어있는 음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음식으로 올린다는 개념에서 변식진언을 합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에서 만든 상제례 의례에서는 전통의례에서 쓰여지고 있는 변식진언, 일종의 스님들이 주로 하시는 거지만 그거 하나만 추가되고. 그 다음에 법공야이라는 것을 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법공양이라고 하면 잘 아시겠습니다만 음식과 같은 제공양에 비해서 진리의 말씀을 바쳐올린다는 개념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혼령 조상님들께 진리의 말씀을 나눠주는 그러한 개념인데 그것도 조금은 달리 이해되어야 할 것이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조상신의 자리에 올라가신 분에게 제사를 올릴 때는 무주고혼처럼 아직 육도를 헤매고 있는 분에게 올린다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에 영반에서는 그런 의례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시식이라는 무주고혼에게 올리는 그런 것이 좀 보이고요. 그 다음에 축원을 하는데 축원을 한다는 것은 조상신의 개념이 들어갑니다. 우리가 부처님이나 신이 아닌 분에게 우리 이렇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오늘날 유행되고 있는 것이 편지 올리기 이런 것들을 하는데, 살아있던 그 분과의 추모 개념과 추념 개념이 어우러져서 가족 중에 한 분이 그 분을 그리워하면서 편지를 올리고 읽고, 써서 읽고 하는 문화는 굉장히 권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 다음에 이 분들을 모셨으니까, 소천했으니까 봉송을 해드리게 되는데 사실 오늘날은 대부분의 집에서 산소가 납골당 이런 형태로 있습니다만 산소나 사당이 따로 없어요. 없기 때문에 이 분이 계신 곳이 불가에서는 극락이라고 상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극락으로 보내드리고. 마지막으로 회향으로서 음복을 하고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됩니다,

[배재수 앵커]
현재 추석 한가위 풍습, 조선시대의 유교적 방식이 전해진 것 아니겠습니까? 불교가 국교이던 고려시대에는 불교적 한가위 풍습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두 시대가 많이 달랐죠?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아무래도 고려시대, 조선 이전에는 우리의 불교 문화 자료가 굉장히 소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조선 이후에 불교가 대성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풍습, 양태, 환경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 때는 사실 제사나 차례 이런 것들이 현재 조선 이후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주자가례가 들어오면서 제사 개념이 많이 등장했고 그 이전에는 시식 또는 무차대회라고 했답니다. 예를 들어서 명절날, 추석 같은 것이 신라 이래로 우리나라에 많이 전해져 있었기 때문에 절에 오면 왕후장상들, 아주 힘 있는 부자들이 절에 와서 많은 공양을 올리면 그 공양물을 다른 대중들이 나눠먹게 되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거기는 놀이가 형성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고려시대 때 그러한 놀이를 유발하고 있던 문화가 수륙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무차대회라고 하는데, 이 무차대회를 많이 열었다고 보여집니다. 무차대회에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일반 재가자들, 요즘으로 하면 속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분들에게도 음식을 나눠주는 잔치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추석날을 그러한 무차대회가 종종 열렸고, 한편으로는 현재 우리 풍습의 일부가 일제 말기 후에 성행했다고 보여지는 성불도 놀이 같은 것들이 아마 고려 때도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큰 사찰이어도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선원이나 강원이 아니고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포교당이나 단위 사찰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대찰이라는 개념이 적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근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찰은 많은 분들이 절에 머물고 계셨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오늘날 본사급 사찰에서는 몇 백 명, 사오백 명 이상이 아마 거주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당연히 그 분들은 명절을 맞이하면 당신들의 조상에 대한 추모의 개념들을 가지고 있었고 무차대회가 아니더라도 그럴 때 아마 스님들 사이에 정월 보름이나 설날에도 있었다고 보여지는 윷놀이와 같은 것들, 성불도 놀이가 아마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마 그게 서산대사의 기록이라든지 아미타경 연유(정확한 명칭: 현행서방경)이라는 자료에 보면 성불도 놀이가, 고려 때 자료인데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배재수 앵커]
올해 추석 한가위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분들이 사찰에 위패를 모시고 차례를 지내는 일이 참 많을 거라고 하던데요. 사찰에서 지내는 차례의 의미, 뭘까요?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찰에서 지내는, 사찰은 우리가 평등이라는, 무차평등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스님들의 경우가 사찰의 주인이지 않습니까? 일차적으로? 이 분들도 차례를 지내는데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일차적으로 국가의 종실 영혼, 혼령들을 부르고 그 다음에 스님들의 부모님이나 스님들의 은사 스님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제사를 지내게 되고 또 일반 무주고혼도 부르고. 이와 같은 스님들의 제사가 있는데 이게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출가자 아니십니까? 출가자들은 원천적으로 부모님과의 인연을 끊고 출가하신 것 아니겠어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만약에 스님 자식 밖에 없다면 갑자기 자식이 없는 독거노인이 되는 셈이잖아요?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자식은 또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스님들의 부모, 조상님들을 모실 때 우리 스님들은 옛날에 고혼이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우리가 무주고혼이라는 말은 많이 쓰고 유주고혼이라는 말은 쓰는데 고혼이라는 말을 알면서도 잘 안 쓰는데 고혼이라는 말을 쓴다는 이야기는 출가하신 분들의 사회적 위치나 육신의 천륜의 관계를 놓고 볼 때 부모님을 떠나왔지만, 자식의 자리에 있지 않지만 또 자식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까 유주고혼도 아니고 스님들의 부모님들은 무주고혼도 아닌, 고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또 승혼,  스님들의 혼령들한테 제사를 지내는데. 이런 개념들이 불교의 가장 자비사상과 무차사상, 가리지 않는, 오는 사람 막지 않는 문중의 자비가 제일 많이 녹아있는 날이 아마 추석 명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요. 이때 핵심이 우리 불교는 제사가 조금 전에 법공양을 한다고 했습니다만 법공양이라는 개념이 지금은 불교의 법화경이나 금강경에, 아니면 열반경의 하나의 구절을 간단하게 일러주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이니,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이니 이런 예서 한 구절을 합니다만 철저하게 추석이나 명절 때 여러 혼령들을 불러서 제사를 베풀고 시식을 베풀 때 첫 번째 많이 쓰였던 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십이인연의 순관과 역관입니다. 무명으로 인해서 행이 생기고 행으로 인해서 식이 생기고 이런 십이인연의 순관과 역관을 들려줌으로써 불교가 본래 추구하는 일체의 존재가 자신의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결국은 진리를 설파해서 깨달음으로 이르게 하는 그런 정신이 불교의 추석 문화에도 면면이 녹아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배재수 앵커]
시간이 많이 흘러서요. 마지막 질문 드려야겠는데요. 추석의 불교적 의미와 관련해서 청취자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한 말씀 해주시죠.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불교가 늘 이야기하는 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가 핵심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추석을 통해서 떠나간 조상을 알고 그 조상의 자리가 결국 나의 자리라는 것을 인식해야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추석을 통해서 우리는 일체의 나를 깨닫고 우리 자손을 깨닫고 조상을 느끼고 하는 그런 자리로서 평등한 마음 속에서 서로의 원망심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없애버리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추석이라는 명절 속에서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추수의 기쁨을 나눴듯이. 그리고 조상들의 은혜와 공덕을 생각하고 또 후손들을 사랑하는 그러한 날들이 되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배재수 앵커]
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감사합니다. 나모붓다야.

[배재수 앵커]
지금까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이성운 교수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배재수 기자 dongin21@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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