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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획] 문경 김룡사 4.13 만세운동

기사승인 2019.02.23  07: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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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절을 앞두고 일제시대 불교계 독립 운동의 얼과 자취가 서려있는 현장을 집중 탐방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10번째 순서로 비록 실패에 그쳤지만 젋은 학인 스님과 학생들의 의기가 어린 ‘문경 김룡사 4.13 독립 만세운동’을 조명합니다.

대구BBS 정한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금의 문경 김룡사 설선당 터는 1919년 문경 김룡사 4.13 독립 만세시위를 주도한 젊은 학인스님과 학생들이 수학하던 경흥강당이 있던 곳입니다.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된이래 문경 김룡사는 의병항쟁의 구심지였습니다.

인서트/황용건/향토사학자/ 김용사는 문경의 독립운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919년 3월, 3.1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10여전 전, 일본군 14연대 토벌대에 맞서 의병항쟁에 나섰던 운강 이강백 의병부대의 주둔지이자 격전지였습니다.

1919년 4월 13일 일요일 오후

학림 스님과 학생 수십여명이 일제 헌병주재소가 있는 대하리를 향해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진은 학생들의 피해를 우려한 김룡사 주지스님의 저지로 중도에 멈추고 맙니다.

이튿날, 일제의 치밀한 감시에 의해 만세시위를 도모한 사실이 헌병대에 알려지며, 27명이 모진 고초를 겪고, 송인수, 성도환, 김훈영 스님 등 3명은 재판까지 넘겨져 형을 받게 됩니다.

의거 도모의 도화선은 서울로 유학간 전장헌 스님이 구두밑창에 숨겨 가져온 독립선언문 한 장이었습니다.

비록 만세운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4.13 만세시위는 갈평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인서트/문경 김룡사 상오스님/ 그 사건이 성공은 못했어도 문경지역 독립운동의 태동이 된 그런 ... 며칠 뒤 갈평이라는 곳에서 만세운동이 실질적으로 일어났고, 문경 김용사가 그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것이죠.

4.13 만세시위를 계기로 조선불교청년회 김룡지회가 설치되고, 야학과 강연회가 시작되는 등 민족의식이 주민들에게 전파되게 됩니다.

인서트/상오스님/문경 김룡사 주지/ 19년도 4월달에 그런 행사를 준비하고, 게획하고, 실천에 옮겼다는 것은 진짜 후손들로서는 존경해야되고, 그부분에 대해 감사해야하는 그런 내용들이고..

암울햇던 시기. 젊은 스님과 청년불자로 구성된 지방학림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불씨로 타올랐습니다.

비비에스 뉴스 정한현입니다.

정한현 기자 akant@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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