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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이엠택시'에서 얻는 '찻잔 속의 태풍' KB국민은행 파업 교훈

기사승인 2019.01.11  17: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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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의 지난 8일 총파업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사진=픽사베이]

1969년 1월 1일, 서울시내에 '아이엠산업'이라는 택시회사가 등장했습니다. 전 해인 1968년, 서울시내 전차가 없어지면서, 전차 운전사들의 생계가 막막해지자, 서울시가 이들을 전직시키기 위해 특별히 허가한 회사입니다. '아이엠산업'이라는 회사 자체도 원래 전차 광고 대행업체였다고 해요.

문제는 이 '아이엠택시'를 모는 운전기사들이 엄청난 초보였다는 겁니다. 갓 면허증을 취득한 운전자가 도로를 차로 몰고 나왔다고 생각해 보십쇼. 그렇다고 요즘처럼 자동변속기가 있길 하나요, 파워 핸들이 있나요, 그렇다고 네비게이션이 있나요? 이런 사람들이 택시를 몰았으니, 참 가관이었습니다. 1969년 1월 22일자 경향신문 기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 택시는 서울에서 첫선을 보이자마자 '굼벵이택시' 별명을 얻었다. 운전자들이 아직 서툰데다 종로, 을지로 등 전차가 다니던 큰길 외에는 지리가 어두운 탓. 이럴 때면 '정신이 멍할 때가 많다'고 운전사 전모 씨는 말한다"

시간이 지난 뒤라도 '아이엠택시' 기사들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운수업 경영 노하우가 없었던 아이엠산업은 결국 1971년 6월 파산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하더라도 명의상 소유자만 운수회사일 뿐, 실제 차주는 운전사인 이른바 '지입제'로 운영되는 업체가 많았습니다. 아이엠택시도 그런 형태였죠. 결국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많이 내고, 경험부족으로 수입은 커녕 차량 할부금조차 내지 못한 운전기사들은 파산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50년 전 탄생했다가 48년 전 사라져버린 옛날 택시회사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이번 국민은행 파업을 보니 문득 이 '아이엠택시'가 생각나서 한 번 소개드렸습니다.

신문지면에 소개된 '아이엠택시'의 모습 (1969년 1월 22일자 경향신문 지면 캡쳐)

지난 8일, 단 하루 진행됐던 국민은행 총파업은 결과적으로 사실상 실패로 끝났습니다. 저는 애초부터 '노조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객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파업을 해 보니 고객이 입는 피해가 딱히 없더군요.

왜 실패했을까? 금융당국의 고위 간부, 경제 관련 연구원의 대표자, 금융 관련 시민단체의 대표 등 여러 인사의 의견을 물으니, 답변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은행의 산업 구조가 바뀌었다"는 겁니다.

우선 명분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당신들이 은행 업무를 멈춰가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또는 막아야 할 게 도대체 뭔가?"라는 고객들의 질문에, 노조는 충분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고객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하다. 월급이 밀리는 것도, 적은 것도 아닐텐데. 그렇다고 딱히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이 사람들 뭐야? 월급도 많이 받으면서 왜 그래?" 노조원들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지만, 어떡하나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노조는 딱히 반박하지도 못하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산업 구조가 바뀌었다는 겁니다. 인력 위주로 돌아가던 은행산업은 이제 IT기술로 많이 대체됐습니다. 어지간한 거래는 비대면으로 가능합니다. 심지어 상품 가입도 스마트폰으로 하는 시대니까요. 금융당국의 한 고위 간부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글쎄요. IT담당 부서 사람들이 일손을 놓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고객들이 큰 불편을 못 느낄 걸요. 하지만 IT 담당 인력이 파업을 하면 불법이라서요. 쉽지 않을 거에요"

결국 이번 파업은 '인력을 줄여도 은행은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 보여준 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번 파업은 국민은행 노조 뿐만 아니라 사측에도, 더 나아가 은행업계 전체에 교훈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싸울 때가 아닙니다. 이제 남은 인력을 어떻게 활용해 '다음 세대의 먹을거리'를 준비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가 은행권을 상대로 일자리 창출에 앞장설 것을 계속 요구하는 상황에서, 인력들을 내보내거나 신규 채용을 줄이기는 사실상 쉽지 않습니다. 인력의 새로운 활용 방안을 생각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도 망하고 근로자도 망해버린, 50년 전 '아이엠택시'의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유상석 기자 listen_well@bbsi.co.kr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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