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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 "리선권 '냉면 발언', 안 가본 한국당만 엉뚱한 소리...통일ㆍ평화 노력에 여야 없어야"

기사승인 2018.11.11  18: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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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S 뉴스와 사람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시간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합니다. 
이화여대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을 지낸 서영교 의원은  서울 중랑구에서 10년간 무료 도서 대여실과 주부대학을 운영한 시민 운동가 출신입니다. 
참여정부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내며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에 직접 가 언론분야 남측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이후 19대 총선에서 서울 중랑구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고, 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전국 여성위원장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불자의원들의 모임인 정각회 회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 출연 :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 원내수석부대표 (재선, 서울 중랑구갑)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자리 함께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영교 : 안녕하세요? 더불어민주당의 원내수석부대표, 불교방송 본부장님과 오래 전부터 같이 정치 활동을 했던, 그러면서 기자와 정치인으로 만났던 서영교, 모태 불자인 서영교입니다.

▶강동훈 : 정말 서영교 의원님께서는 제가 국회로 출입할 때 보면 보이지 않게 불교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고 지금까지 국회 정각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걸로 보니까 변함없는 국회의원이다, 또 변함없는 불자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도선사 잘 다니시죠?

▷서영교 : 예, 저희 시아버님 위패가 도선사에 모셔져 있고요. 친정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친정어머님의 위패도 도선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강동훈 : 이번에 평양 다녀오셨죠? 거기서 리선권 위원장을 만났고 돌아와서 막말 논란이 있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필 10.4 선언 기념식 만찬장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이유로 언론을 통해서 직접 해명도 하는 그런 모습도 봤습니다. 당시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볼까요?

▷서영교 :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갔다 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가서 대접받지도 못한 사람들이 저희가 10.4 남북 정상회담 기념식을 평양에서 하기로 하고 평양 쪽에서도 그렇고 노무현재단에서 정치인을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각 정당에서도 몇 명씩 같이 가기로 했는데, 당연히 자유한국당에게도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했죠. 가자고 이야기할 때는 가지 않고 가서 직접 보고 만나고 냉면도 먹어보고 그러지 그것은 안하고서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던데 식으로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남북 정상회담, 남북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듯이 가는 것 아닙니까? 작년 딱 이맘때 북쪽에서 미국을 향해서 핵탄두를 건 ICBM을 날린다고 하고 우리는 사드를 배치하고 중국이 무역을 전부다 차단하고 난리가 났던 것이 바로 얼마 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싹 잊어버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되시고 나서 얼마나 다행스럽게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살살 풀리면서 이제는 교류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시점에 달을 보라고 하니까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물어뜯는 형국 아니냐, 이렇게 말씀을 제가 했었는데요. 그쪽은 저희를 초대하고 대접하기 위해서 예의를 다했고요. 그리고 어색할까봐, 혹시나 긴장될까봐 사실은 최대한 긴장을 푸는 작업들을 했었습니다.

▶강동훈 : 이른바 평양의 냉면 발언인데 그것이 논란이 있었고 거기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 리선권 조평통위원장 교체를 야당이 요구를 하고 있는데. 이런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영교 :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 내려왔을 때 그때 냉면을, 옥류관 냉면을 북쪽에서 공수해와서 같이 먹었잖아요? 그것을 보고 나서 야당 쪽에서 그런 이야기 했거든요? 나도 그 냉면 먹고 싶은데 그 냉면 국물이라도 갖다 주지. 그래서 우리가 정말 재미있게 이해하려고 야당이 그랬다고 생각하고 사실 같이 가자고 할 때는 또 안 간다는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2차 정상회담을 하면서 같이 가자고 이야기했을 때 또 안 가고, 10.4 기념식을 10월 4일에 한다고 해서 가자고 노무현재단에서 부탁했을 때도 안 갔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 약 10년 하는 동안 남북 관계는 정말 긴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고. 지도자가 긴장하고 위기까지 가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국민입니다. 천안함 사태, 연평도 해전 이야기합니다. 누가 거기서 희생을 당했습니까? 바로 우리 장병들이고 일반인들입니다. 국민, 일반인, 장병 모두 다 평화를 원하고 있고 남북이 어쨌든 긴장에서 평화로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당이 하는 그런 발언들은 정말 정치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도도한 평화의 흐름, 한반도 통일의 흐름에 어쨌든 도움을 주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치인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번만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번만 하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길게 정치인들은, 야당도 마찬가지로 지금 계속 야당만 할 수는 없잖아요? 또 만약에 정권을 잡더라도 길게, 특별히 바뀌지 않아야 되는 것은 한반도 평화, 남북의 평화, 남북의 교류, 그리고 통일은 여도 야도 다 만들어 나가야 되는 것이 우리 정치인의 의무이고 야당 정치인의 의무이다. 그래서 도도한 흐름에 엉뚱한 소리, 듣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 이야기, 그렇다더라고 하는 이야기로 괜히 혼란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확실하게 부탁도 드리고 경고도 하고 싶습니다.

▶강동훈 : 지금 서영교 의원께서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때 춘추관장 겸 보도지원 비서관 하셨잖아요? 그때 평양 갔다 오셨죠?

▷서영교 : 그때 평양 다녀왔습니다. 2007년이었죠.

▶강동훈 : 2007년에 그때 가셨을 때 뵀던 분들이 이번에 가니까 또 있던가요?

▷서영교 : 그때 가서 만났던 분들이 이제 협상 파트너였죠. 협상 파트너들께서 지금은 출세를 했더라고요.

▶강동훈 : 한 10여 년 지났으니까.

▷서영교 : 딱 11년 만입니다. 11년 만에 갔는데 리선권 그 분이 조평통위원장이잖아요? 바로 밑에 있는 조평통부위원장으로 출세를 해서 만났는데, 사실은 한 분은 제가 못알아봤어요. 그런데 그 분이 저 한테 그러더라고요. 다른 북쪽 사람들이 와서 서영교 선생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서영교 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이름으로 남자인줄 알았습니다, 이렇게도 이야기하고요. 그래서 저를 기다리는 분이 누구였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나중에 소개를 해주는데 그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서운했습니다, 눈앞에 저를 놓고도 못 알아보십니까, 그 분이 정종수 조평통부위원장인데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가 있잖아요? 거기 우리 쪽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남쪽 연락사무소 소장이고요. 그 전종수라고 하는 북쪽 조평통부위원장이 북쪽 연락사무소 소장입니다. 나이가 많고 연배가 높으세요. 그런데 저에게 서운합니다, 저를 앞에 놓고도 못 알아보시다니요, 2007년에 왔을 때 비서관님이 저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저희들이 열심히 잘 했었는데. 그런데 사실은 그때 마지막에 보도를 지원해주면서 그쪽이 지원해주는데 저희 오늘이 노무현 대통령이 남쪽에서 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평양으로 들어올 때 그때 저희가 북에서 기다리면서 기자단하고 생중계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기자단이 그날 아침에 없어진 거예요. 생중계 팀도 없어지고 다 없어져서 제가 그 쪽 담당자에게 그때 그 분이 그 분이셨던 것 같아요. 이게 뭐하는 짓이냐, 우리 대통령께서 북으로 올라오시는데 우리가 생중계도 하고 다 하기로 했는데 우리 기자들을 어디다 어떻게 했느냐, 난리를 쳤죠. 제가 당신들 책임 물을 거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막 이랬는데. 사실 젊은 제가 나이 많은 어른한테 하기도 쉽지 않지만 책임자니까 그렇게 했는데 저에게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김정일 위원장이 나오기로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 올라오시는 것만 생중계하기로 했는데.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비서관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네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니 묘하게 제가 머리를 굴렸죠. 무슨 이야기지 저게?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도 그때 제가 13박 14일을 평양에 머물면서 그 자리를 준비했는데 그것이 다 무산되는가, 우리 기자들은 다 어디 갔나, 했는데 그 사람들이 저를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고 데리고 갔는데 그 현장을 갔더니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강동훈 : 그 팀이 다 그쪽으로 갔군요?

▷서영교 : 그 팀을 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강동훈 : 기자들은 완전 김정일 위원장이 나온다는 소리에 우르르 가기도 하고?

▷서영교 : 그 기자 분들도 김정일 위원장이 나오는 것을 전혀 몰랐죠. 왜냐하면 당시는 김정일 위원장이 어디에 있다고 하면 타겟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저희 생중계하는 곳에 있으면 언제 타겟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올 수 없다는 그들의 입장이었다고 저희는 생각했는데. 정작 가니까 나와 있고 기자 분들도 갔더니 김정일 위원장이, 기자 분들은 먼저 가서 세팅이 되어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오니까 들뜬 거죠. 우리 기자들은. 저랑 이야기도 없이 아침에 배치되어 놓고 갔더니 그러면 저한테 항의를 해야 되는데 항의가 아니라 들떠있는 거예요. 생각도 못한 김정일 위원장이 나와 있으니까. 그래서 그때 사실은 그들이 많은 대우를 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한 10분 정도, 15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오시기까지를. 기다리고 서 있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고 김정일 위원장이랑 인사하고 그랬는데요. 이번도 똑같습니다. 북쪽은 이것이 얼마 만에 이루어지는 교류이고 또 북미회담 속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로 나온 거잖아요? 거기서 우리에게 최대한 대접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은 음식도 잘 차려놨고요. 보여주는 것도 잘 보여주고요. 그쪽에 저희를 대접하는 민화협 관계자 분들이 있는데요. 저를 대접하던 분은 서른 한 살이신데, 제가 물어봤죠. 당신은 어느 대학 나왔냐. 똑똑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김일성종합대학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김일성종합대학은 어ᄄᅠᇂ게 들어갔느냐, 그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일을 했대요. 그 회사에서 추천을 하고 자기도 공부를 더 해서 김일성종합대학을 갔고 거기서 또한 인정받아서 저희가 오는데 민화협 관계자로 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예의를 다 해서 대접하려고 하고 또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그 리선권 위원장이 보자마자 찾아와서 반갑다, 말씀 많이 들었다, 일 잘한다고 들었다, 온갖 칭찬을 다 하다가 두 분이 풍채가 비슷해요. 그래서 덕담처럼 재밌게 한 말인데 그것을 가지고 와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그날 그 자리에는 저희만 간 것이 아니고요. 기자들도 다 같이 갔어요. 그 만찬장에 기자들도 다 있었고 대접 다 받았고요. 그리고 무소속 의원도 가고 민주평화당도 가고 정의당도 갔기 때문에 안 가본 자유한국당이 엉뚱한 소리하고, 가본 사람들은 그런 소리 안하고 있는 거죠.

▶강동훈 : 그런 분위기가 논란이 계속 있었지만 어찌됐든 이번에 여야정 협의체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같이 만났는데. 그것이 열림으로서 그 동안에 경제 문제도 그렇고 밀렸던 입법도 통과시키는 부분도 있고 남북 문제도 조금 협의가 될 것 같은데. 그렇지만 여야정이 여러 가지, 12개 합의문도 이끌어냈는데 그때 딱 그날 하필이면 장제원 의원, 박완주 의원 간의 몸싸움도, 약간 볼썽사나운 모습이.

▷서영교 : 몸싸움은 아니고 좀 센 말싸움이었죠.

▶강동훈 : 약간 국민들이 볼 때는 볼썽사나웠는데. 의원님은 그것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서영교 : 우선 여야정 협의체 뒷이야기를 좀 하면, 대통령께서 지난 번에 5당 대표를 초청했다가 우리가 여야정 협의를 합시다, 상설합시다, 라고 해서 3개월 만에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하기 위해서 청와대 정무수석, 한병도 정무수석이 정말 열심히 다녔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다니고 겸손하게 다니고 그래도 청와대 정무수석이면 큰 권력이잖아요? 그리고 대통령께서 찾으십니다, 같이 하자고 이야기를 하니까 아무리 여야가 다르다 하더라도 또 좋은 말, 예우하고 만나고 전하고 대통령이 말씀하시는 걸 전하니까 야당도 마음이 풀리고 그러면서 열리고 그래서 같이, 여당도 그렇고, 만들게 되고. 또 합의문이 12개나 나왔잖아요? 그 합의문을 만들기까지 또 한병도 정무수석이 청와대하고도 조율하고 하면서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그만큼 합의를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하고.

▶강동훈 : 아주 좋더라고요.

▷서영교 : 김성태 원내대표께서는 가서 한참 동안을 대통령께 말하고 당신도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또 대통령이 열심히 들어 주시니까 좀 서로 뿌듯했던 것 같고 대통령께서도 사실 온갖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대요. 서로 참고 다 들으면서 서로가 좋은 모습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의미가 있고요. 그런 것이기 때문에 논리 싸움은 할 수 있는데 그날 밤 장제원 의원과 일이 있었는데, 좀 야당도 거칠게 막말하면서 하는 것은 안 되는 것 같고요. 논리적으로 짚어나가는 것이 좋죠. 

▶강동훈 : 서영교 의원 하면 지금 상임위는 운영위하고 교육위를 맡고 있지만 그 전에는 법사위 활동하셨죠?

▷서영교 : 법사위하고 국방위도 했습니다.

▶강동훈 : 그러니까 소위 말해서 우리가 흔히 법사위는 남녀 생각을 안 하지만 국방위는 보통 여성 의원들이 가기 좀 꺼려하는 곳인데, 그 국방위에서도 활동을 잘 하셨는데. 특히 법사위에서 제가 기억나는 것이 이른바 ‘태완이법’인가요? 살인범은 공소시효가 없다, 그것은 어떻게 법안을 발의하시게 되셨는지?

▷서영교 : 제가 집에 가면 제가 제일 일찍 들어갑니다. 제가 10시 넘어서 들어가도 다 바쁘니까. 그런데 그때 TV를 봤는데 골목을 지나가던 6살짜리 태완이, 태완이를 어떤 어른이 목을 젖히고 입 속에다 황산을 부었습니다. 그것이 그때 TV를 볼 때가 2014년인가 그랬는데요. 그로부터 15년 전에 있었던 일이죠. 그 아이를 가슴 속에 묻고 보내지 못한 엄마 아빠는 15년 째 그 살인범을 찾아달라고 울부짖는데 찾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도와주기 위해서 그 노력을 계속 했는데 어느덧 15년이 다가오더라고요. 당시 사건은 15년이 되면 그 살인범은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도와주다 안 돼서 법을 만들자, 살인범은, 그렇게 나쁜 짓을 한 살인범은 공소시효가 없다, 라고 하고 그 법을 만들고 그 아이의 이름을 따서. 그것은 형법개정안입니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알아야 되기에 태완이법이라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듣지 않았어요. 기자 분들도 안 듣고 별로 관심도 없고. 그 엄마 아빠의 외침을 잘 안보듯이. 그런데 끊임없이 하면서 기자도 관심을 갖고 국회의원들도 관심을 갖고. 태완이를 하늘의 별이 되게 해서 우리를 비추어주게 해야 된다, 더 이상 제 2의, 제 3의 태완이가 나오지 않게 해야 된다고 해서 대한민국에 살인범 공소시효를 없애야 된다. 저보고 법률가들은 그랬죠. 서영교 의원, 포퓰리즘이야, 서영교 의원이 법조인이 아니라 그러는데 이것은 그렇게 하면 안 돼, 살인범에게도 공소시효가 있어서 이제 해방될 날만 기다리는데 갑자기 살인범 공소시효 폐지하면 돼?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이럴 때 언론인이 많이 도와주고 그래서 태완이법은 만들어지게 됐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태완이에게 적용이 안 되었습니다. 태완이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는데. 그것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거기 진범을 잡을 수 있게 했고요. 그 다음에 쪽지문 살인사건, 용인 교수부부 살인사건, 이것이 전부 다 살인범 공소시효가 없어짐으로서 다 해결했는데 약 32건 정도의 미제사건들을 해결했다고 보고를 받았고요.

▶강동훈 : 법사위 활동을 정말 많이 하셨네요? 그 부분에서 본다면 그 법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미제사건으로 다 끝났을 것인데.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방송은 사건25시 아닙니다. 서영교 의원님께서 그 동안에 노무현 대통령과도 함께 하셨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기자들과 함께하는 대변인 시절에도 실무를 많이 맡으셨어요. 한국의 정치부 기자들, 어떻게 보십니까?

▷서영교 : 한국의 정치부 기자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치 현장에서 정치부 기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정치부 기자 너무 멋지잖아요? 너무 멋지고 세상을 책임져나가는 그런 모습. 그런데 정말 국회 구석에 앉아가지고 노트북을 가지고 쳐야 하고. 지금은 노트북이라 괜찮죠. 본부장님 처음 뵐 때 2000년 초반에 수첩에다 적고, 그때는 녹음도 거의 안 하고 그렇게 해가면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주역들이었고요. 그래서 이 정치부 기자들이 끊임없이 대한민국 예산, 정책,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청와대, 국회, 정부 곳곳에서 정치부 기자들이 포진해 있으면서 좀 더 나은 정치, 좀 더 국민을 위한 예산,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게 끊임없이 견인해주고 있습니다. 그 정치부 기자들이 견인해주는 힘으로 저희 정치인들도 조금씩 더 한걸음 나아가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제가 그 질문을 왜 드리냐면 저도 하나에 포함되는 이야기지만, 우리 정치부 기자들이 정책, 입법 이런 의정활동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 여야 정치인들이 싸우는 모습에 많은 매력을 느껴서 기사를 쓰는데. 그런 부분을 항상 느끼면서도 실제 데스크나 또는 여러 여야 대변인실도 그런 부분, 개인이 의정활동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은 어떻게 보세요?

▷서영교 : 저는 이번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한반도거든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분단이 어느덧 익숙해져 있었는데 그것이 작년 이맘때 정말 일촉즉발의 위기, 세계 첫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런 위기까지 갔다가 이제 정말 살얼음판을 걷듯이 이제 조금 나아지고 있는 이 시점, 이 시점에 저는 그 전체를 흔들어대는 기사는 안 된다. 그런 것 말고 제발 당부드리는 것은 다른 것은, 권력을 누가 이길 것인가 말 것인가, 까지는 저는 그 정도는 괜찮을 수 있겠지만 정말 전쟁만큼은,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만큼은 통일만큼은 우리가 극복해내야 되기 때문에 이 부분만큼은 정치부 기자들도 하나로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고 말씀처럼 정치부 기자가 정책에 관심을 갖는 그 순간 정책은 변화합니다. 태완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그 순간 태완이 사건은 해결이 됩니다. 이번에 강서PC방 살인사건의 문제처럼 심신미약, 나 우울증 약 먹어, 라고 해서 그 자가 살인을 험악하게 저지르고 감경을 받는 일, 이것을 못 받게 하는 것 또한 정치부 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강동훈 : 그 법의 개정안을 또 발의하셨다면서요?

▷서영교 : 맞습니다. 제가 19대 법사위원 때 했는데요. 조두순방지법입니다. 어린 나영이를 험하게 성폭행하고 그러고서 자기는 술을 먹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던 그 무서운 사람 조두순, 벌써 조두순이 내년이면 출소입니다. 술 먹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는 이유로 판사가 형량을 깎아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두순 사건이고 제가 그때 그래서 조두순방지법을 냈는데 그것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고 이번 20대에도 또 냈죠. 그랬더니 음주나 마약 등으로 인해서 심신미약을 이야기할 때는 감경해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제 법안이었는데요. 이번에는 강서PC방 사건 같은 경우까지 생겼죠. 100만이 넘는 청원인이 생겼고 이번만큼은 국회가, 법사위의 율사들이 정신 바짝차리고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경고까지 하고 싶습니다.

▶강동훈 : 서영교 의원은 국방위 활동을 하시면서 저도 가끔 상임위 활동을 봤는데, 저도 출입을 해봤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관함식에 가서 영원한 평화는 튼튼한 국방력에 의해서 유지가 된다, 이 말씀을 하셨고 또 사실 이번에 예산도 보니까 국방비가 상당히 많이 증액이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방에 대한 생각,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서영교 : 특전사 출신이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이? 저는 깜짝 놀란 것은 보수라고 하는 분들은 국방력을 튼튼히 해야 됩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국방비 증가율이 제일 적었습니다.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국방개혁을 하면서 국방비 증가율을 확실하게 높여놨습니다. 그런데 그만큼도 못 돌아가고 국방비가 뚝뚝 떨어졌고요. 제가 깜짝 놀란 것은 북에서 미사일을 계속 쐈잖아요? 그러니까 남쪽에서도 미사일을 쏴서 너희 그렇게 하면 우리가 대응할거야, 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미사일 실험 발사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때 맨날 입으로만 하고요. 그랬는데 그 미사일이 날아가다가 엉뚱한 데 떨어진 거예요. 제가 국방위원 하면서 왜 미사일이 이렇죠? 라고 물어봤더니 조사 중이라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하는 말이 의원님, 그 미사일이 녹이 슬었습니다, 라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라서 어쨌든 저희가 이제 내놓을 것은 내놓고, 그래서 저희가 국방위 때 문재인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미사일예산을 왕창 올려줬습니다. 평화는 평화대로 가지만 국방은 국방대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해놓지 않고, 제대로 보지 않고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방산비리라고 해서 전부 다 잡아간 거예요. 그때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이런 사람들 나중에 잡혀갔다가 무죄나지 않았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에 국방비 예산을 왕창 올렸고요. 지금 남북 평화 흐름 속에서도 더 튼튼히 하기 위해서 국방비 예산을 이번에 사상 최초로 8%대 정도인가 많이 올렸습니다. 많이 올려놓고 튼튼한 국방이 평화를 가져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강동훈 : 사실 그것이 뒷받침이 되어야, 어쨌든 남북 간 또는 그 주변에 일본이라든지 중국에 대한 견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합니다. 앞서 설명해드렸지만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하셨고 보면 운동하고는 거리가 좀 먼 것 같아요. 어떻게 총학생회장에 출마를 하게 됐습니까?

▷서영교 : 저는 어머님이 면목동이라고 하는 전통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셨습니다. 시장의 딸이죠. 그렇게 해서 이화여대까지 보냈는데, 당연히 제가 간 곳은 정치외교학과이고 외교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본부장님처럼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화여대를 다니면서 화장실, 아니면 학관 이런 곳에 프린트가 붙어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광주의 이야기가 있었죠. 5.18. 전두환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는지, 학생운동을 어떻게 진압했는지,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여학생의 젖가슴이 어떻게 총칼로 잘려 나갔는지 이런 것을 보면서 사실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심상 내가 기자가 되어 전두환 대통령의 입이 될 수는 없다, 외교관이 되어 전두환 당시 군부독재의 입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광주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대학생이 알릴 때 그것이 전달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학생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총학생회장은 그렇게 험하고 무서운 세상에 많은 친구들이 사실 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그럼 하지 말고 나 한 명만 하자, 그리고 그때는 조금만 움직이면 잡혀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대에는 사복 경찰이 있었고요.

▶강동훈 : 소위 말하는 전경들?

▷서영교 : 짭새. 전경이 아니었습니다. 짭새, 사복경찰들. 속칭 짭새들이 있었고. 그래서 밤에는 학교에 다니면 그들에게 폭행당한다고 해서 학교에서도 빨리 가고 그랬던 때인데요. 내가 그것을 어머님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딸을 기대하는 어머님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내가 목숨이라도 걸고 그것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나의 임무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총학생회장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사실은 치안본부의 수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저희 어머님이 감사하게도 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총학생회장 하는 동안 보약을 지어다 갖다 주시면서, 제가 심장이 안 좋거든요? 

▶강동훈 : 심장도 약하고 여성으로서 소위 말하는 그 당시에 전두환 정권 군부독재에 앞서서 맞서서 항거를 했다는.

▷서영교 : 최루탄 맞고 막 그러는데. 심장이 약해가지고 사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병원에서 죽는다고 그랬는데 제 옆방에 있던 동갑내기는 세상을 떠났어요. 어머님이 정성껏 해주셔서 운이 좋게 살았습니다. 심장 판막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니까 저는 사실은 크면서 어머님이 계속 페니실린 주사를 고3때까지 맞고 살았거든요? 대학교 들어오니까 조금 문제가 생겼는데. 어머님은 또 내 딸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인데 하필 학생운동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님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안 하시고 보양을 지어다 주시면서 다른 장기가 튼튼하면 심장을 뒷받침해줄 거다, 네 삶을 내가 지원하는데 어쨌든 건강은 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원해주셨죠.

▶강동훈 : 현재 정치인 서영교를 만든 것은 어머니다?

▷서영교 : 예, 그렇습니다.

▶강동훈 : 그리고 그것을 또 정치인 활동을 하면서 보살핌을 같이 하는 분들이 현재 가족이죠? 장 변호사님. 

▷서영교 : 장 변호사님은 누굽니까.

▶강동훈 : 개인적으로 좀 아는데. 어쨌든 저희가 서영교 의원께서 올라온 것을 보면 정치인 집안도 아니고 면목동의 딸이. 추미애 의원도 이른바 세탁소집 셋째 딸이라고 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서영교 : 저는 면목시장 옷집 아줌마의 고명딸입니다.

▶강동훈 : 아마 면목시장에 우리 애청자들이 굉장히 많을 겁니다. 아마 서영교 의원이 그런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그런 서 의원께서 국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서영교 : 제가 사실은 학생운동을 하고 감옥에도 가 있었고 그런데 서대문 구치소에 있었죠. 서대문 구치소에 하루도 안 빼놓고 면회를 오셨어요. 옷가게를 하셨잖아요? 옷가게를 하는데 서대문 구치소를 왔다 가면 하루의 3분의 2는 버리게 됩니다. 옷가게는 당연히 장사가 안 되겠죠. 그런데 하루라도 햇볕을 쪼이게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저를 면회 오셨던 대단한 여인이시고요. 저희 어머님. 그리고 제가 감옥에서 나오고 난 다음에 제가 지역운동을 했습니다. 광주의 이야기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지역에서도 알려야 되겠다고 해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무료도서대여실, 주부대학을 하는데 어머님이 매달 용돈을 5만원씩 주셨습니다. 매달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강동훈 : 그러면 꽤 큰 돈인데?

▷서영교 : 그렇습니다. 이 5만원씩 매주 주시면서 내 딸이 멀리서 안 보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앞에 있다니 고맙다. 그리고 이 정도의 돈을 줄 테니까 좋은 일 많이 해라. 그러고 나서 저는 연애도 잘 하고요. 장 변호사 이야기 하셨듯이 연애도 잘 하고 아기도 잘 낳아서 딸 아들 낳았는데 그 딸 아들 어머님이 다 키워주시고요. 그러고 나서 10년, 20년이 지나고 청와대 춘추관장할 때까지도 다 키워주시고 어머님이 2011년 8월입니다. 파킨슨병으로 온 몸이 굳어가기 시작하셨어요. 어머님은 독실한 불자시고요.

▶강동훈 : 뱃속에서 불심을 갖고 태어나셨다고 서 의원님께서.

▷서영교 : 어머님이 저를 가지셨을 때 뒤에 계신 암자의 스님께서 오셔서 저를 크게 잘 키워라, 임신하셨을 때 그러고 저를 낳고 나서 금줄을 쳤을 때 들어오셔서 제 이름까지 지어주고 가시면서 크게 될 아이니까 공부 많이 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불리우게 해라.

▶강동훈 : 그때 스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지금 이름입니까?

▷서영교 : 그때 지어주신 이름은 서영희입니다.

▶강동훈 : 여성스러웠는데 지금은 서영교 하면 아까 북한의 조 전 부위원장이 한 말처럼 남자인 줄 알았다.

▷서영교 : 저희 집이 교 돌림이거든요? 5남 1녀인데요. 그래서 호적에는 서영교로 하고 집에서는 영희라고 불렀죠.

▶강동훈 : 시간을 더 갖고 더 많은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

▷서영교 :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자면 그렇게 해서 어머님께서 2011년 8월에 파킨슨병으로 온 몸이 굳어 가시면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까지도 저희가 어머님 집에 얹혀살았습니다.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데.

▶강동훈 : 중랑에서요?

▷서영교 : 네, 중랑구의 한 집에 아버님, 어머님이 애들을 태어날 때부터 키워주시고 거기서 장 변호사가 사시합격도 하고 거기서 애들 다 키우고. 둘째인 아들이 중3때인데요, 이제 분가해라, 너희 아이에게도 방을 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정치를 하라고 했다, 네가 정치하기를 40년 기다렸다, 너는 아직도 머뭇거리냐, 너 혹시 내가 죽고 나면 정치 안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분가를 시키시는데. 몸이 파킨슨병으로 굳어가니까 사실은 이제는 네가 나를 돌봐, 이래야 될 시점인데 당신이 그렇게 하시고 몸이 굳어가고 그렇게 해서 사실은 제가 출마를 하게 됩니다. 어머님이 그 이야기를 하시죠. 제가 후보 등록을 안 하니까 오빠에게 네가 가서 후보 등록을 해줘라. 사실은 오빠가 후보 등록을 다 해주셨고요. 저는 여성이라 사실은 지역구 출마에 두려움이 있었고요. 그리고 동생에게는, 동생이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두고 누나 운전을 해줘라. 그리고 누나 운전을 해주고 누나가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뒷받침을 해줘라, 그렇게 해서 하게 되고. 그런 다음에 어머님이 제가 당선되는 것을 보시고 다음 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지역을 다니거나 면목시장 지역의 어른들은 다 이야기하십니다. 어머님 때문에 됐어, 서영교. 서영교 당신은 어머님이 공덕을 쌓아서 됐어. 어머님 보고 싶은데 어머님 잘 계시지? 그 어른들이 어머님 떠나신 것을 알면 충격을 받으시니까 예, 잘 계시지요, 라고 하는 제가 훌륭한 어머님의 그늘 하에 성장했고.

▶강동훈 : 저도 가슴이 얽매입니다. 저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지금의 서영교 의원이 계시군요. 저는 겉으로 활달하시고 해서 그런 것을 몰랐는데. 

▷서영교 : 저희 어머님께서, 그래서 그 어머님을 도선사에 위패를 모시고요. 저희 시아버님도 너무 훌륭하고 서영교, 여자인데 정치하라고. 시어머님도 마찬가지시고요. 시어머님도 독실한 불자이십니다.

▶강동훈 : 서영교 의원님 제가 엊그제 지역구 천태종 사찰 행사하는 것을 보고 모셨는데. 아무튼 불자 의원들이 좀 더 활동할 수 있도록 같이 해주시고, 또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 아닙니까? 좀 더 국민을 위한 또 경제가 어려운데 이런 부분도 활동적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끝으로 애청자 분들께 다시 한 번 인사말씀 해주십시오.

▷서영교 : 불교방송 애청자 여러분, 정말 오랜만에 보도본부장님을 봬었습니다. 저희들 덕으로 정치하는 세상 만들어내겠습니다. 어머님처럼 당신을 다 희생하시고 당신은 아무 것도 갖지 않으면서도 나의 아들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주시는 어머님, 그런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은 저희 정치인들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 권한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믿어주고 계십니다. 저희들, 그런 국민들께 꼭 보답하는 정치인 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이 내신 세금은 이자까지 붙여서 국민께 돌려드리고 국민을 위한 정책, 국민을 위한 정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이 계셔서 저희들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국민 여러분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강동훈 :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서영교 의원 모시고 말씀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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