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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참선 잘하그래이” -성철 큰 스님 입적 25주기에 부쳐-

기사승인 2018.11.05  16: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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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62년 여름, 종단은 몰락했다. 조계종 수장의 은처자 의혹으로 촉발된 갈등은 종단을 산산조각 냈다. 종권을 가진 세력은 사분오열로 쪼개지면서도 하나라도 더 지키려고 몸부림쳤다. 종권을 가지지 못한 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보검(寶劍)인 ‘적폐청산의 광기’에 올라타 배고팠던 세월을 하나라도 더 보상받고 싶어 했다. 저 마다 절집에서 생산할 수 있는 온갖 명분과 수사(修辭)를 남발하며 ‘부처님 장사’에 열을 올렸지만, 사부대중은 냉담했다. “또 중들이 싸우는 구나...” “또 밥그릇 싸움 하는구나...”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방송포교의 말석에서 소리공양으로 불자 흉내라도 내며 사는 식구로서 부끄럽고 참담했다. 어느 쪽에도 밑 보이면 안 된다는 철저한 자기검열을 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눈치만 봐야하는 무기력함은 말 그대로 죄책감으로 옥죄어 왔다. 완전한 것을 찾고 싶었다. 우리 절집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파계와 분열로 얼룩진 하찮고 염치없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책상 한 귀퉁이에서 먼지 옷을 입고 있던 김택근 선생의 <<성철 평전>>이었다.

성철 큰 스님을 소재로 한 책들이 손쉽게 도모하고 있는 우상화 작업, 이를테면, 살아생전 이미 전설로 회자된 ‘장자불와(長坐不臥)’와 ‘동구불출(洞口不出)’ 같은 초인적인 수행에 초점을 맞춰 성철 큰 스님을 도인과 기인의 영역으로 끄집어 내 한량없이 칭송한다든지, 큰 스님의 탁월한 자기 견성과 공덕 회향, 이타행 실천을 쉼 없이 주입하며 맹목적으로 다그치는 용비어천가가 아니었다. 이 책이 기존의 관련 책들과 가장 뚜렷하게 다른 점은 성철 큰 스님을 무엇보다 ‘사람’으로 조명했고, ‘한 인간으로 왜 위대한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는 것이다.

지극히 객관적이고 차가울 정도로 담담하게 위대한 수행자의 위대한 가르침을 주유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불교를 통해 한 번쯤 강요당하고 위축됐을 “부처님을 믿어라, 무조건 믿어라. 네가 아직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오롯이 네가 무지해서 그런 것이다”는 열등감에서 벗어나 진실로 이해하면서 알게 되는 환희심을 만끽할 수 있다. 불교와 성철 큰 스님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다. 또 하나는 성철 큰 스님에게 던져졌던 당대의 불교현실과 사회상이 병풍처럼 자연스럽게 깔려있어 이것을 음미하는 것도 차곡차곡 정리되는 맛이 있고 쏠쏠하다. 특히, 큰 스님이 그 벽을 넘어서고 극복해나가는 부침과 도정을 생생하게 목도하도라면, 외경심은 극에 달한다.

허욕(虛慾)에 들떠 재가 불자쯤은 ‘돈 대주는 종’으로 여기고 그야말로 먼지만 피우는 스님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중은 세상과 거꾸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은 내가 중심이 돼 돌아가지만 불교는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승려는 부처와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중생을 부처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는 말씀은 유독 한참을 곱씹게 한다. 책을 덮고 나면, 주옥같은 경책(警策)의 수풀 속에서도 몇 개의 키워드가 잔영으로 맺혀 끝까지 떠오른다. ‘봉암사 결사’ ‘오매일여(悟昧一如)’ ‘중도사상’ ‘참선’ ‘삼천배’... 고승의 생(生)을 문자를 동원해 옮긴, 이름이 ‘성철’인 부처의 생(生)을 옮긴, 김택근은 7백 페이지에 가까운 책 곳곳에서 쉼 없이 일갈한다.

“성철 큰 스님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는 하루를 살아도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아무리 작더라도 청정한 법과 계율이 있는 공간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부패한 조선불교를 쳐부수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부숴야 했다. 지닌 무기라고는 오로지 부처님 말씀 하나였다. 부처님의 길, 그것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길이었다. 변함없는 진리의 길이었다. 모두 부처님이 남긴 마지막 말을 새겨야 했다. '내가 죽은 후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설한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으라'. 청정한 법의 구름이 도량을 덮고 있었다. 봉암사 결사는 현대불교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부처님 법대로’ 살아봤기에 현 조계종의 기틀이 잡힌 것이다. 지금도 그 치열함을 후학들이 기리고 따르니 불멸의 족적임이 분명하다. 이로써 한국불교는 봉암사 결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던 스님들 가운데 4종정(청담, 성철, 혜암, 법전)과 7총무원장(청담, 월산, 자운, 성수, 의현, 법전, 지관)이 나왔다”

“공부하다 보면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고 선객들은 이를 견성(見性) 성불(成佛)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잠이 꽉 들어서도 공부가 되는지를 살펴야한다. 성철 큰 스님이 설파한 화두 공부의 기준은 ‘잠이 꽉 들어서도 공부가 되느냐’였다. 숱한 법거량이나 견성 인가에서도 큰 스님은 오매일여(悟昧一如) 확인을 빠뜨리지 않았다. 아무리 깨친 것 같고 지견이 분명하더라도 오매에 일여한지 반드시 점검해야한다. 또한 무심의 경계를 체득했다 하더라도 그곳에 머물면 마구니 경계가 됨을 알아 확연히 깨쳐 내외명철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잠이 꽉 든 숙면상태에서도 일여하신가? ‘예’라고 대답하는 선승에게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 내외가 명철하신가?”

“성철 큰 스님은 불교의 근본은 불생불멸이고 그것이 곧 중도(中道)라고 말했다. 또 불생불멸은 관념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것이고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 강조했다. 흔히 ‘중도’라 하면 ‘중도는 중간이다’라고 답하는데, 그것은 불교를 꿈에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중도는 중간이 아니고 모순 대립된 양변인 생멸(滅)을 초월해 생명이 서로 융화하니 생이 즉 멸이고, 멸이 즉 생이 돼버리는 것을 말한다. 큰 스님은 불교보다 나은 진리가 있다면 언제든 불교를 버릴 용의가 있고 당신께서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하지 않았다고 설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진리가 바로 중도사상이다. 중도란 곧 마음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중도를 깨쳤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자리 근본자성을 바로 보았음을 뜻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견성이다”

“성철 큰 스님은 중생들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능력이 있음에도 늘 중생에 머물고 있는 것은 분별망상에 가려서 깨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마음에 먼지가 잔뜩 끼여 있어 마음의 먼지를 없애야 지혜덕상(智慧德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닦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참선(參禪)’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일렀다. ‘성불’은 마음의 눈을 떠서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것이고 이를 견성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불교를 마음에서 시작해 마음에서 끝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뜨는 방법, 즉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큰 스님은 ‘참선’이라고 항상 강조했다”

“부처님을 뵙고 절을 하면 결국 자신이 보이고 종국에는 다른 사람이 보였다. 미천하고 연약한 자신이 여기 이렇게 존재함이 고마웠다. 그 고마움은 고스란히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바쳐졌다. 성철 큰 스님은 절을 하면서 일체중생을 위해 참회하라고 가르쳤다. 절을 통해 신심을 키우는 큰 스님의 ‘절 수행’은 그렇게 독특했다. 누구나 삼천배를 하고 나면 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절은 묘했다. 발원은 참회와 감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참회야말로 발원에 앞서는 수행이다. 그리고 그 참회는 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큰 스님은 누구에게든 절하라 일렀다. '절하다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남을 위해 절하시오. 처음에는 억지로 남을 위해서 절하는 것이 잘 안 돼도 나중에는 남을 위해 절하는 사람이 되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며,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색은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아직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 우리 불교는 아무 색깔도 띠지 않는다. 수많은 사부대중이 걱정하고 지적하듯이 작금의 불교 혼란은 승가 내부의 문제이지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 외도의 음해와 공격으로 정법이 흔들리거나 삿된 견해가 횡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화된 문중에서 비롯된 병폐, 절 싸움과 목탁장사에 취해 빚어진 세속화 등 안에서 곪아터진 것이다.

“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이고,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 말에 속지 마시오. 나는 그저 종정이라는 고깔모자를 썼을 뿐이오. 나를 보지 말고 당신의 본래면목을 보시오” 성철 큰 스님이 평생 동안 애닳아 토해내신 사자후를 우리는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왜 큰 스님이 안으로만 죽비를 들었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절집에 우는 날이 많아도 주장자를 치켜들고 매질하실 큰 스님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좌복을 털고 분연히 일어나 절집의 울음을 멈춰줄 눈 푸른 납자는 정녕 어디메쯤 있는가. [보도제작부장] [2018년 11월 5일]

양창욱 wook1410@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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