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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의 화쟁토론48] "정의는 독점될 수 있나" 황경식-박정순, "자신의 무오류성 확신할 때 과정과 결과 모두 참담해져"

기사승인 2018.11.02  11: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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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2018년 11월 2일(금) 오전8시 라디오
      (TV는 다음주 화 밤10시40분, 수 오후3시40분, 토 오전7시40분, 밤10시40분)
주제: 정의는 독점될 수 있는가
진행: 이각범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패널: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박정순 연세대 철학과 교수

이각범:
-‘금수저는 정의가 아니고 흙수저는 정의’라는 사고방식은 문제 아닌가?
-수저론 및 헬조선 외치는 것은 함께 마시는 우물에 침 뱉는 격 아닌가?
-고용세습 및 채용비리를 정의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말할 때의 정의와 행동할 때의 정의 간에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의 및 평화 같은 보편적 가치가 한 정파에 의해 독점될 수 있나? 독점하면 과정과 결과 모두 참담해지지 않나?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려 할 때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방안은?

황경식:
-수저론은 출생의 불평등, 상황 개선되지 않고 운명의 굴레가 되는 우리 사회의 편향성 보여줘
-고용세습 및 채용비리 등 절차적 정의 파괴하는 적폐를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집권세력에 큰 부담
-정의를 찾아가는데 누구도 독점할 수 없고 대화와 토론 통해 정의의 길 찾아가야
-역지사지 안되는 것은 다원민주사회임에도 대화적 이성보다 절대이성 신뢰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비롯.
-목욕통 속의 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우 범하지 않았으면, 적폐정산에서 버릴 것과 계승할 것 취사선택 필요.
-아는 만큼 실천할 수 있게 체험적으로 정의의 덕목을 습득할 수 있게 해줘야.

박정순:
-젊은이들 스스로도 노력하고 사회도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줄 때 헬조선 불식할 수 있을 것.
-‘‘노블리스 말라아드’ 아닌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으로 적재적소 인사가 될 때 채용비리나 고용세습 없어질 것.
-자신의 무오류성 확신해선 안돼, 이의제기자가 늘 있음을 알고 대화하는 것이 정권의 성숙성 보여줘.
-절대적 헤게모니 가졌다 생각하는 것은 자만, 상보적 관계 자각 속에서 협치 나서야.
-지난 것을 모두 적폐로 규정하지 말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잘못도 보듬는 ‘회복적 정의’ 보여줘야.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잘 지킬 때 정의사회로 가는 큰 발걸음 가능.

 

이각범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이하 이각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미국 정치를 한 극단으로 몰고 가서 편향과 대립의 정치를 하는 지도자들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매도의 정치, 원한으로 마음이 비뚤어진 정치를 배격한다고 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디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민주주의에 큰 해를 입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화가 없이 주장만 있는 사이버 언론의 폐해로 사회가 분열과 반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편이 정의를 독점하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궤멸하는 것입니다. 이에 이각범의 화쟁토론 이번 주에는 정의는 독점될 수 있는가를 주제로 논의를 해보겠습니다.

이각범:
오늘 이 자리에는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 나오셨습니다.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이하 황경식):
네 안녕하십니까?

이각범:
그리고 박정순 연세대 철학과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박정순 연세대 철학과 교수(이하 박정순)
네 안녕하십니까?

이각범:
정말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론 또는 흙수저론 이런 것과 정의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 말이죠, 마치 금수저는 정의가 아니고 흙수저는 정의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습니까?

황경식:
저는 평생 정의를 공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만 정의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일반인들한테 잘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우리 사회자께서 말씀하셨듯이 수저론,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 수저론을 가지고 정의를 설명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수저론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 수저를 하나씩 물고 나온다, 입에.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금수저, 어떤 사람은 은수저, 어떤 사람은 동수저, 많은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흙수저를 물고 나오는 거로 그렇게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수저론을 가지고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해보면 정의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가실 거로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 수저론이 이야기하고 있는 정의와 관련된 것 중 하나는 첫째는 우리가 태어날 때 물고 나오는 수저, 다시 말하면 출생의 불평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출생이라는 것은 우연적이고 상당히 운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하게 이 세상에 우리가 태어나게 되는데 이 불평등한 우리의 운명은 정의.부정의 문제 이전에 자연적인 하나의 사실, 팩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문제점은 이와 같은 불평등은 어떤 사회든지 마찬가진데, 또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진데, 이와 같은 불평등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제도, 우리의 시스템에 의해서 뭔가 좀 살아가면서 개선이 되거나 또 시정이 되거나 이렇게 해야 우리 사회가 살만한 정의로운 사회가 될텐데 이게 개선이나 시정이 되지 않고 한 번 물고 나온 수저가 평생 지속되는 일종의 운명의 굴레가 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이 굉장히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흙수저들, 많은 제대로 운을 타고나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실망감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불행하다, 이런 생각을 해봐서 우리 사회가 복불복의 사회, 굉장히 편향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이각범: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회이동이 아주 많은 나라입니다. 사회이동에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세대 내의 이동이 있고 세대 간의 이동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자식의 사회적 지위가 다른 경우가 많이 있는데, 물론 부모가 다 평등한 입장에 있을 수는 없겠죠. 그러나 부모가 평등한 입장에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태어난 이후에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돈이 더 있는 경우, 그런 경우가 우리나라는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태어날 때의 처지 그대로 평생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사회는 거의 힘든 사회구요, 태어나서 다른 쪽으로 가는 것, 이런 거를 우리가 메리토크라시, 결국은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서 한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이렇게 정당하게 경쟁하는 제도 자체를 무시하는, 경쟁 자체를 죄악시하는 그런 것이 오히려 태어날 때의 지위가 계속해서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에 상당히 실망하는 사람들이 수저론을 내세우고 있고, 또 여기에 실망하는 사람이 어떤 극단적으로 최근에는 헬조선이라고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말하자면 우리 대한민국 전체가 지옥이다 이런 이야기죠. 젊은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지옥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이렇게 아주 자기 자신은 정당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귀,축생과 같은 존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 자체가 말하자면 옛날 우리말에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는 그런 경우가 되지 않습니까. 그걸 정의론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됩니까?

박정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과거 시험이 있었던 이조시대에도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그런 신분 상승 또는 상향 이동 욕구가 가능한 그러한 출구가 있었다면 현대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 기본적인 직장마저도 갖지 못하고 또 많은 학생들이 알바를 하는 학생으로 전락하는 걸 봐가지고 일단 젊은 학생들이 우리나라 전체를 헬조선이라고 보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과 정당성에도 상당히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젊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그 운 자체 우리는 그것으로 끝이다 하는 것은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운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까지 주어질 수 있고 운은 우리가 다 그것을 극복할 수 없지만 운에도 두 가지 운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극복할 수 없고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선택할 수 없는 어떤 운이 있겠죠. 어떤 장애가 있다든지. 그 다음에 두 번째 운은 자기에게 자기가 지금 취직을 못했지만 시간은 많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파도타기가 나의 주특기다 해서 매일 가서 파도를 타고 있다. 한 사람은 그에게 주어진 신분상승을 위한 교육과 노력의 기회를 스스로 박찬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운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상을 해주고 거기에 대해서 그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일단 국가가 보상해야 하지만 두 번째 운의 경우에 있어서는 모든 젊은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면 운7기3이라고 말도 합니다만 운은 일곱이고 기술은 3인데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운 속에 있지만 우리는 각자가 더 노력을 해서 그 다음에 신분 상승 이동을 하고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봅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 학생들에게 비록 우리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나와서 취직하기 어렵지만 미래에 그런 가능성을 믿고 자기 인생의 경력은 자기의 재능과 노력에 의해 달려 있다는, 아까 사회자님이 말씀하신 메리토크라시, 업적주의, 그 가능성을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그런 문제는 불식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젊은이들이 생각할 때 운의 문제는 기성세대가 너무나 오랫동안 직장 속에 있고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 같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기존에 있는 60, 65세 이상 오래 하고 있지 않은데 기성 세대가 젊은이들을 위해 기회를 박차지 않고 오랫동안 직장에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생각하고 더 나아가 헬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도 노력하고 젊은이들이 자기 미래를 위해 분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좀 더 많은 직장의 기회를 준다면 헬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의 정체성과 자부심에 있어서 빨리 불식되어야 할 그런 용어라 생각합니다.

황경식:
사회자님 헬조선 그러니까 저는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한국을 지옥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하나는 입시 지옥이고 하나는 교통 지옥입니다. 지옥이라는 상징어는 아주 고통스러운 것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헬조선 이야기하는 것은 특히 젊은이들의 취업, 젊은이들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아까 말씀하신 90%의 흙수저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 부정의하고 불공정한 사회에 대해서 피눈물을 흘리는 그런 고통을 헬조선이라고 표현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요. 방금 박교수님이 운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박교수님도 공부하셨고 저도 공부했던 롤스라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정의론자에 의하면 우리가 정의를 말할 때는 운을 좀 공유하는 의식을 가져야 정의에 대한 담론도 가능하고 정의론을 논할 자격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운을 우리가 공유한다면 지금 이 헬조선은, 복불복의 사회는 여러 가지 시정하고 개혁해야 할 그런 현실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각범:
정날 주어진 조건에서 아무런 개선이 일어날 수 없이 신분이 그대로 유지되는 사회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다행히 과거제라는 것이 있어가지고 앞에서 박정순 교수님도 이야기하셨지만 정당하게 자기의 실력으로 견줘가지고 관직을 갈 수 있고 양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영의정의 아들이라도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아무런 관직을 갖지 못하는 조선의 제도를 보고 서양에서는 참 놀라운 업적주의 사회다 이렇게 칭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경쟁 자체를 부도덕 한 것으로 하고 경쟁을 아주 없어서는 없어지면 좋겠다 이렇게 하면서 경쟁이 없는 곳에서 우리 사회의 메리토크라시의 근간이 없어진 거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쉬운 수능입니다. 쉬운 수능하고서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강남 8학군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서울대 입시에서 성공하는 율이 현격하게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것이 흙수저.금수저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고, 저희 세대는 적어도 출신 위치와 후에 나이 60 이후가 되었을 때 경제적 위치 사이에는 거의 상관이 없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만 그 이후에 점점 정당한 경쟁이 무시되고 이렇게 됨으로써 우리에게 흙수저라고 울부짖는 그런 목소리가 더 많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정의론적 입장에서 볼 때 최근의 고용 세습, 채용 비리, 이거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황경식:
아까 말씀하셨듯이 조선조에서 지금까지 전 정권 치하에서 대한민국 사회는 복불복의 사회,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당히 부정의가 많이 횡행하던 그런 사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현정권은 어떤 의미에서 출발에서부터 상당히 정의를 지향하는 그런 정부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선 최저임금을 상향시키는 그런 노력도 많이 했던 거 같고, 일자리 정부라는 것을 스스로 자임하고 있고 그런 뜻에서 저희들 상당히 기대를 특히 흙수저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이미 선거할 때부터 또 대통령이 되신 이후에도 이런 말을 했던 것을 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작이 평등하고 과정이 만일 공정하다면 결과는 정의롭습니다. 이것을 현정권의 국정 철학처럼 자주 말씀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철학 하에서 최저 임금을 가능하면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사회적 약자, 또 사회적 최소 수혜자의 생활환경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니까 특히 또 일자리 정부는 많은 흙수저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으니까 이런 관점에서 현정권은 상당히 정의로움, 정의를 지향하는 정부라 생각하는데, 그러나 최근의 채용비리나 고용세습 이것은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흙수저에게 배드(bad) 뉴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에 채용비리나 고용세습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과정이나 절차의 어떤 공정성, 절차적 정의를 파괴하는 그런 가장 적폐로서 청산되어야 할 과거 정부의 것이라면 모르지만 현정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빨리 우리가 청산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상당한 훼손이 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각범:
지금 황경식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지난 촛불 혁명이라 그러죠.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헌법적 절차에 의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가 되었고 또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어디까지나 우리는 헌법적 절차에 의해서 했지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이 일어나서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안일하고 아주 독선적인 고집스러운 정부가 정당한 헌법적 절차에 의해서 물러났다 하는 것에 대해서 국민들은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정부가 물러났다, 그 세력이 물러났다고 환호를 했는데, 그런데 새로 나온 그 정부의 형태는 우선 정부를 구성한 사람들의 재산을 보더라도 수십억 또는 백억 이상의 아주 정말 흙수저라고 자임하던 서민들이 우리를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경제적인 지위에서 차이가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오늘도 어떤 신문에서 논평으로 나왔습니다만 위장 전입을 여덟 번이나 한 사람이 어떻게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전임 정권에서 하던 잘못된 행태를 그대로 하던 사람들이 속 시원하게 전임 정권을 공격하는 것은 정말 좋았으나 그 분들이 정의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은 너무 다르더라 하는 거기에서 국민들이 현재 좌절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인 거 같습니다. 정의론적 입장에서 보면 말로 할 때의 정의와 실제 행동할 때의 정의에 차이가 있는데 이거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

박정순:
일단 제가 보기에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게 된 거는 어쨌든 국민의 투표에 의해서 헌법적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이 되면 정확히는 어느 정도의 자리가 바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는 몇만 자리가 바뀐다고 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임면권에 있게 되는데 문제는 인사는 만사라고 적재 적소에 적당한 사람을 써야 하는데, 우리가 공직자로서 지금까지 건실하게 살아오고 직장에서 거기서 상향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정권이 바뀌게 되면 전정권에서 아마 핍박을 받을 수도 있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여기서 국가나 기업에 일단은 취업을 시키는 게 아마 새로운 정권이 바뀌면 그것은 어느 정권이든지 하지 않지는 않겠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지만, 문제는 이제 과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일상생활의 조그마한 부정의들, 이런 것들이 쌓이면 큰 부정의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위장 전입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철학에서는 미끄러운 언덕의 논쟁이라는게 있거든요. 그래서 한 번 발이 빠지게 되면 미끄럽게 해서 점점 더 그런 데로 빠지게 되는 건데, 특수활동비다 뭐다 이런 것도 조금씩 쓰다 보면 또 가서 아는 사람에게 뇌물을 받게 되고, 그래서 좀 우리 사회에서 정말 모범이 되는 그런 상층부의 하는 사람이라면 평소부터 좀더 그러한 조그마한 부정의 사례로 척결하고 뭔까 깨끗한, 물론 옛날 이조 시대의 청렴 관리를 생각하는 건 너무 지나친 것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 자기 자신을 도덕적 관점에서 관리를 하고 정의로운 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 적당한 적소에 일단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고 인사는 만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인사가 있을텐데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또 국회 청문회에서 많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좀 결단을 내려서 국민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인사 문제가 많이 개선이 되고, 또 아까 여기서 말한 채용비리와 고용세습의 경우도 국가 공직도 있을 수 있고 대기업도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노조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한국의 여러 단계 각 부문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저는 일단 정부나 삼권분립에서 삼권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뭐 황제 노조도 나오고 기업들에서도 나오면 옛날 우리가 비판했던 네포티즘이라고 얘기하는데 네포티즘은 하나의 연고주의, 세습주의 그러한 것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삼권,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가 있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 대기업들의 직장 문제, 또 밑으로 내려가서 중상층까지에 있어서 노조들도 계속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까 어느 한 분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묶여 있는 그런 상황, 입시 지옥일 때도 마찬가지고 면접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고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이것은 국가 전체가 같이 나서서 손을 잡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것은 위에 상층부에 있는 사람이 모범을 보이는, 그러니까 우리가 옛날에 귀족제도를 비난했지만 귀족은 뭐가 있었냐 하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로서 귀족들의 고귀한 사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제 노블리스 말라아드라고 말하는 병든 귀족들, 귀족도 아니지만 병든 귀족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어쨌든 국가에서 삼권 분립하고 그 다음에 대기업들, 노조들, 이런 문제들 다 생각을 해서. 이 문제는 뭐냐하면 롤스의 정의론도 있지만 맨 처음에 자유의 원칙이 나오고 두 번째는 정의의 원칙이 나오는데, 그 하나는 형식적인 정의의 원칙입니다, 법 앞의 평등인데. 두 번째 원칙은 동일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동일한 인생의 성공 전망을 가져야 한다는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채용비리와 고용세습은 상향 이동의 가장 중요한 기회 균등의 원칙, 그 기회를 말살시키는 거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불만이 나오고 이것은 적재적소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들어가는 모든 불만이 거기서부터 발생하는 상황이니까 이것을 깨뜨려야만 우리 국가 헬조선도 없어지고 흙수저도 없어지고 채용비리도 고용세습도 없어지는 아주 중차대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이각범:
박정순 교수님 말씀대로 저는 우리 사회의 정의를 해치는 아주 가장 나쁜 병은 연고주의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정의라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경쟁이 나쁜 것이 아니라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면 나쁜 것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막는 것이 연고주의거든요. 그래서 연고주의가 우리가 극복해야 될 세상인데, 최근에 캠코더 인사, 캠프에 속했거나 생각하는 코드가 같거나 또는 ‘더’라고 하는 정당에 속해 있거나 그런 사람들이 특별히 채용되고 공정한 경쟁을 벗어나서 주요한 자리로 간다 거기서 빗댄 말인데 이것이 말하자면 바로 연고주의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런데 지금 현재 상황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반추해보면 1960년에 4.19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4월 혁명이라 하는데 4월 혁명 때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가지로 청렴하신 분이었고 애국적인 분이었으나 그 분이 연로해서 거의 국정을 못 하실 때고 자유당 정권이 부패하고 엄청난 연고주의를 가지고 자기네들끼리의 권력을 독점한 것에 대해서 온 국민들이 저항해서 일어난 것이 4월 혁명이었죠. 그 때 같은 해에 60년 7.29 총선에서 반대당이었던 민주당이 전체 득표의 90%를 득표를 했습니다. 온 국민이 야당에 그 당시까지 야당에 표를 다 몰아서 90%의 득표를 했는데,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자유당의 부패, 아집, 횡포 이런 것들이 사라질 줄 알았더니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 더 부패하고 더 무능하고 이거는 국민들을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들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복지를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권력을 나눠먹는 것이다, 이런 비판 때문에 민주당 정권은 그 다음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군사 쿠데타고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겁니다. 어떻게 힘으로만 하겠습니까. 우리가 터키의 경우에서 보듯이 비록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잠시 권력을 잡아도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못하는데 국민들이 당시 5.16 군사 정권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던 것은 1년 동안의 민주당 정권에 굉장히 실망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옛날의 연고주의를 새로운 연고주의가 대체했기 때문에 그런데, 정의, 평화 이런 개념들은 사실은 한 정파가 독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정의는 독점될 수 있는가를 주제로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과연 정의.평화 이런 보편적 가치가 한 정파에 의해 독점할 수 있는 것입니까.

황경식:
지금까지 저희가 연고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사회자님께서 역사적으로 죽 고찰을 해주셨는데 연고주의라든지 지방색이라든지 이런 것은 결국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지사지 능력을 측정하는 판도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국민에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도 남의 눈의 가시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만 최근 우리 사회 많이 회자되고 있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그것을 아주 코믹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 능력이 부족한 것을 꼬집어 희화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면 정의롭고 남이 하면 부정의고 우리 당이 하면 합헌이고 남의 당이 하면 위헌이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역시 역지사지 능력이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해보고요. 그것은 정의.부정의 뿐만 아니라 정의를 판단하고 정책을 판정하는 데에 있어서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치 정의에 대한 판단이나 판정이 자기만 독점할 수 있다, 정의를 독점할 수 있다, 평화를 독점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는 정의, 남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정의가 아니고 평화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생각들이 횡행하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의나 평화라는 것은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가치이지 어떤 일당이나 어떤 지역이나 어떤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만 기독교에서도 정의라는 말과 더불어 병용해서 쓰는 게 사랑이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서 뭔가 인간사랑을 가지고 있을 때 너와 내가 서로 대화할 수 있고 나의 정의와 너의 정의가 교환이 가능하고 이런 것으로 생각해서 기독교에서는 결코 정의를 독점하거나 독선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어떤 균형점을 찾는 것이 그렇게 중요시 되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되고요. 우리가 흔히 가까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공산주의자들이 마치 자기들이 내세우는 그런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고 절대적인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사회를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무력혁명도 불사하는 그런 공산주의의 역설을 우리한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가장 합당한 정의를 우리가 찾아가는 데 있어서도 누구도 독점할 수 없고 넓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정의의 길을, 그 어려운 정의의 길을 찾아가야 하고 모색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각범:
역지사지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우리가 자유 세계, 그리고 시장에 기초한 세계를 생각하는 거 자체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동감에 기초해서 분업을 하고 그 분업의 결과로서 시장에서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교환을 해서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도 어떻게 보면 시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라 할 수 있고요. 제가 앞에서 박근혜 정부, 정권의 퇴진은 촛불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을 헌법적 절차에 따라서 가결시켰고, 또 헌법 재판소에서 그 탄핵 소추안을 정당하게 인용했기 때문에 어디 까지나 헌법적 절차에 의해 했다는 거 자체가 우리의 법적 절차에 있는 게임으로 된 것이지 이 자체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촛불을 들어 타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인데 결국은 똑같은 위치에서 서로 교환하고 잘못된 것을 배제하고 잘된 것을 선택하는 그런 자유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자유롭게 의사결정 하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면,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정의는 어떤 면에서는 독선적이고 무모하고 그리고 균형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박정순 교수님 어떻습니까.

박정순:
어떤 의미에서 왜 그 사람들은 그런 악의적인 생각을 할까 한 번 제가 생각해봤는데 첫 번째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 우리는 현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지나간 구 정권은 부정부패했고 우리는 그것을 개선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어떤 정의의 개선 용사인 것처럼. 그래서 물론 정권이 처음 날 때는 그런 자기들이 시대정신을 계승했다, 그 다음에는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바뀌었다, 가장 최상부의 그런 세계관 자체가 바뀌고 있는데, 또 그람시가 이야기하는 헤게모니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를 우리가 잡았는데 단순한 헌법적 헤게모니 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당성에 있어까지도 우리가 헤게모니를 잡았다 이렇게 과신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까 황 교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만 공산주의 혁명이 19세기 정도이고 20세기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다원민주사회입니다. 각자 많은 집합들이 있고 그 속에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가 뭔가를 중첩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사회에서 대통령께서도 야당과 협치를 이야기했지만 또 그것이 그렇게까지 쉽게 되지 않고 있으니까 시대 정신을 갖고 있고 또 헤게모니 갖고 있는 걸 인정하지만 헤게모니 자체도 그람시 자체도 아무리 헤게모니를 갖고 있더라도 언제나 이의제기자 영어에는 디센트dissent라고 하는데 마이크 월츠 교수라고 하는 사회비판론을 이야기하신 분인데 그 분이 하는 교섭 책 저널 이름이 dissent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30년 동안 했는데 그 분 주장이 아무리 헤게모니를 가지고 시대정신을 가지고 이데올로기가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다원민주사회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것을 양보하고 상대방을 경청하고 또 우리는 단순한 그런 자기 자신의 무오류성을 확신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다 오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디센트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의제기자들이 있는 것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또 그것을 통해 반성하고 하는 그런 다원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야지 완전한 자기 모니즘, 하나의 유일주의를 가짐으로써 우리가 유일주의이고 정의를 갖고 헤게모니 그것은 지나간 이론이기 때문에 헤게모니 속에서도 언제나 거기에 이의제기자가 있고 또 이의제기자와 같이 대화를 하는 것이 정권의 현대적인 성숙성, 다원주의적 성숙성을 나타내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또 개방성을 나타내는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각범:
정치에서도 여야가 있습니다. 여야는 서로 상대편을 경쟁하는 상대자로 보고 누가 국민의 마음을 더 많이 살 수 있느냐 하는 경쟁을 하고 똑같은 토양 위에서 경쟁해야지 한 쪽을 궤멸하여야 하는 상대로 하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상당히 많은 파괴와 독선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더더군다나 궤멸해야 하는 이유로서 우리는 정의로운 세력이고 상대편은 궤멸해야 하는 적폐 세력이라고 이렇게 되게 되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아까 황경식 교수님이 강조하셨던, 우리가 이것을 함에 있어서 역지사지로 똑같은 경기장에서 상대편이 있어야지 된다 이런 것이 없지 않은가 생각하고요, 바둑을 두면서 누구나 이기고 싶지만 바둑 두는 상대가 있어야 이길 수 있는 것이지 상대가 없이 혼자서 바둑을 둔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정치를 함에 있어서나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서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서로서로 거기에 대해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서 어느 쪽이 옳으냐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이 아니라 같이 협력해서 경쟁하는 그런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황경식 교수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경식:
철학에서도 철학자들은 이성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성.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 우리 희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칸트나 헤겔 당시 근세시대만 해도 절대이성에 대한 어떤 기대가 컸었습니다. 절대이성이라고 그래서요. 그러나 근래에 와서 현대에 와서는 절대이성이 아니라 대화적 이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은 무오류적인 이성이 아니고 다 오류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대화를 통해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 가는 그런 대화적 이성,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아직도 우리 한국 분들은 역지사지가 안 되는 것은 이 이성 자체에 대해서도 절대이성, 대화적 이성이 아니라 절대이성에 대한 신뢰를 아직도 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그런 생각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각범:
우리 박정순 교수님은 그게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박정순:
우리가 삼권분립이 발전되어 있고, 이것도 정부 사이 권력 사이에서도 서로 대화도 하지만 서로 견제도 하고 그런 장치를 민주주의의 발생에서 만들어 냈잖아요. 그 다음에 우리가 일당제는 독재로 흐르기 때문에 액튼경(John Emerich Dalberg-Acton)이 이야기 한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때문에 우리는 권력을 나누어야 하고 그래서 다당제를 하게 되고 어떤 당이 미국 같으면 뭐 공화당과 민주당 해서 민주당이 이기면 정치적 투표를 통해서 국민들의 신임을 받은 정권이 갖게 되는 이런 사회란 말이죠.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아까 제가 말씀 드렸지만 다원민주사회에서 존 롤스의 정의론이 공정성으로서의 정의거든요. 그래서 그런 정의와 공정성은 똑같은 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정의는 우리가 경쟁할 수 없는, 태어나서 가령 노예제도 같은 것은 부정의하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노예제도를 물론 불공정하다 우리말로 쓰지만 영어에서는 그게 안 맞는 모양인가 봐요. 그래서 노예제도 같은 거는 부정의한 거지만, 그러면 공정성이란 뭔가 하면 두 사람 사이의 게임입니다. 그러니까 페어플레이 정신을 정의에 갖다 대입을 한 겁니다. 그래서 롤스의 경우는 두 사람이 경쟁을 했을 때는 어떤 경쟁의 게임의 룰을 미리 알고 그것을 두 사람이 다 그것을 합의하고 또 그 합의에 의해서 경기가 진행이 되고, 아까 말씀하셨던 처음에 어떤 전제가 있고 과정과 결과가 그게 페어플레이가 모든 경기의 절차를 다 알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공정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단 우리가 아까 제가 말씀하신 헤게모니나 이데올로기 이런 것은 지난 동안의 어떤 유일주의적 사상으로서 하나의 모니즘, 하나의 단편주의로서 자기가 모든 것이 다 옳다고 하는 것은 이제 지나간 세기이고 현대는 다원민주사회입니다. 존 롤스도 <정의론> 다음에는 <정치적 자유>란 책을 Political Liberal이란 책을 내거든요. 그건 뭐냐하면 현대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각각 인생에 있어서 각각 의견, 종교, 정치, 다 다른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거기서 중첩적 합의를 이뤄내서 그걸 통해서 국가를 이룩해 낼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 기저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원주의적 구조 속에 있다, 상대방도 하나의 그 버전이 어떤 모임이나 어떤 단체 또는 어떤 사상, 어떤 도덕이 그 사회 전체를 다 리드하기는 그거는 굉장히 어려운 거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거는 아까 나온 상호 이해의 정신, 무오류의 정신, 그 다음에는 관용의 정신까지 우리는 거기에 포함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몇 가지 황 교수님이 이야기했던 절대이성에 대한 오류 가능성이 있는 거고, 그 다음에 상대방을 상호 이해하는 상대방의 입장에 있는 역지사지, 네 번째는 다원민주사회에 있어서의 관용적 정신, 그 다음에 존 롤스가 이야기하는 페어플레이 정신, 신사도를 지키는 그런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지된다면 그 사람들은 일단 정권을 전 정권으로부터 가져온 사람들은 일단은 자기네들이 절대적 헤게모니를 가졌다 생각하는데, 그건 자만이고 절대적 헤게모니를 가질 수는 없고 자기와 대립적인 사람이라도 서로 아까 말씀드린 상보적 관계라는 개념을 제가 여기서 또 말씀드리고 싶은데, 서로 상보적, 그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없는 거니까 야당도 서로 그거를 리드를 하고 그런 정신 속에서 한다면 어느 정도 협치도 가능하고 또 국민들도 아 참 이번 정권은 물론 헤게모니 잡았지만 야당하고도 협치도 잘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런 정신이 다 국민들의 사회 모든 시민 사회 속으로 스며든다면 우리나라 전체는 그런 정신으로, 또 우리나라가 좀 더 화기애애하고 서로 협력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또 관용적인 나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각범:
공정성이라는 것이 정말 정의와 관련할 때 롤스의 핵심이라고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정말 맞는 견해 같습니다. 우리나라 노사 관계만 하더라도 저는 ‘한국 노사관계의 대안으로서 공정성’이라는 책을 저술한 바 있는데, 그거는 이렇습니다. 노사관계라는 것은 사실은 사용자나 노동자가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것은 기업의 생산을 가능한 한 늘리고 기업 시장에 있어 지배력을 높이면서 거기서 나오는 과실을 노사가 같이 공정한 원칙에 의해서 나눌 때 그 때에 노사는 다 같이 복지를 누릴 수 있고 이것이 어느 한 쪽이 공정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독점하게 되면 그러면 생산도 증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과도 상당히 참담하다 하는 점에서 우리가 국가 발전에 있어서도 한국 노사 관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룰을 잘 생각해야지만 될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 이 공정성이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정의를 한 쪽에서 독점한다는 거 자체가 우리 사회나 정치 전체에 공정성을 끌어가는 데에 있어서 결과적으로도 과정도 공정하지 않지만 공정하지 않은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 또한 모두의 복지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황경식:
현정권이 국정 목표로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는 정의사회 건설 그 프로젝트에 저는 현 정권이 반드시 성공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모처럼 창출한 현정권이 만약에 그것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정권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데, 그 성공을 위해서 지금 사회자가 말씀하신 것 또한 관련해서 한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릴게요. 첫째 하나는 현 정권이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 과거 누대에 걸친 정권들의 적폐 청산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적폐 청산을 이야기 할 때 정말 역지사지 하고 또 그 정의를 독점한다는 그런 독선 의식에 빠져서는 안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폐 청산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취사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 점은 버리는 건데 나쁜 점을 버리면서 좋은 점까지 함께 버려질까 걱정됩니다. 과거 정권들도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그 정권이 갖고 있는 강점들, 그 정권에서 시도한 성공들 이런 것들 잘 살펴서 앞으로 이어가야 한다 생각합니다. 옛날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목욕통 안에 있는 아이까지 버릴라 조심해라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의 나쁜 폐습을 정리하고자 하면서 잘못하면 과거에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성과도 버릴까 그런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현 정권에서 적폐청산을 지나치게 내세우기보다는 취사 선택을 잘 해서 그런 목욕통 속의 아이까지 버리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회 철학을 할 때 성장과 분배는 서로 상당히 길항 관계가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성장이냐 분배냐 이 둘을 결합하기가 아주 어려워요. 성장을 주도하다보면 분배가 부실하게 되고 분배, 균형분배를 주목하다 보면 성장을 놓치게 되고 이런 것인데, 현 정권은 소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언뜻 봐서 성장과 분배를 묘한, 묘하게 다 균형 있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런 것이 성공할 수 있는지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 또 이렇게 한 번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를 그것이 별로 성공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하고 고수하는 것은 우리가 역시 또 다른 어리석음을 범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있어 왔던 성장과 분배의 균형 이런 것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현정권이 지금 현재 뭐 저는 현정권이 분배 쪽으로 굉장히 주력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적 약자들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한다든지 많은 흙수저들에게 고용을 보장하는 그런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한다든지 이런 것은 저는 정의의 관점에서 분배적 정의의 관점에서 아주 바람직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만약에 파탄이 난다면 그것은 심각한 손실이 아닐까 생각해서 이 둘의 균형점을 다시 성찰해보는 그런 좋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립니다.

이각범:
방금 하신 말씀에 대해 아마 이의를 제기할 부분이 없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 성공해야 합니다. 특히 그 동안 사회적인 여러 제약 때문에 억눌리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 새로운 정부가 내세우는 여러 정의로운 기치에 의해서 자신의 억눌렸던 마음을 해소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런 것이 되느냐. 과연 구호를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라고 하면 그게 다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지 지금까지 억눌렸던 그 국민들의 울분과 한을 풀 수 있는 그런 밝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그거를 우리가 정의, 공정성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박정순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정순:
참으로 어려운 과제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현재 전임 대통령 두 분이 영어(囹圄)의 몸으로 계시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을 겁니다. 두 분께서도 각각 취임사를 멋지게 또 우리의 미래를 잘 이끌어 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그 결과는 너무 참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물론 이제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일단 12.12사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부패하고는 좀, 부패 문제도 연결되어 있지만 한 가지 회고해보면 옛날에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고서 모든 그 당시에 파출소라고 하죠, 그 앞에 정의사회구현이라는게 전국에 다 붙어 있습니다. 부정의하게 정권을 잡은 정권이라서 정의사회구현, 뭐 부정의하게 정권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세조처럼 자기 조카를 죽이고 정권을 잡았더라도 잘하면 좋겠지만 결국 부정의하게 잡은 정권은 역시 잘할 수가 없는 그런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거는 어제 촛불도 있었고 또 태극기 대립도 있었습니다만 일단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는 거고 특히 노조는 분명한 결사의 자유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로 보면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진짜로 이번에는 조심하셔가지고 본을 보여야 하는데, 그래서 이제 어렵게 또 대통령 되셨고 그간 노조나 이런 입장에 서 있던 분배적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이 있는 것도 볼 수 있고. 저는 좀 다른 관점으로 보고 싶습니다. 만델라의 정의에서도 공정성 정의가 있지만 공정성으로의 회복적 정의라는게 있습니다. 제주도의 4.3 사건 같은 경우 거기서 회복적 정의는 우리가 어떤 정의를 실현하고 할 때 그거를 강한 칼로써 단칼에 빼가지고 우리 편, 남의 편을 가리지 말고 우리는 똑같이 싸웠다 이렇게 해서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을 해서 정의의 원칙의 회복적 정의는 정의전쟁론에 기반합니다만 맨 마지막에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거기에 2차 세계대전 때는 거기서 전쟁 재판도 있고 다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거를 떠나 회복적 정의,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우리와 싸운 사람이 아니거든요. 우리 전 대에 국정을 운영했던 사람들이니까 어찌 됐던 약간의 잘못이 있다고 할지라도 대통령으로서 나름대로 감싸고 지나온 세월들을 잘 분석을 하고 이런 점이 좋았고 그런 뭔가 균형 있는 그런 걸 해야지 무조건 지나간 것은 다 적폐다 이것은 잘못이고. 그래서 제 생각은 만델라가 정권을 가져왔을 때 그 당시 남아연방에 있던 백인들을 다 처단해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 다 안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안고 가는 지나간 사람들의 잘못이 있고 대통령이 여기 들어가 있고 대통령으로서 한번 면회 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뭔가 그런 회복적 정의, 보듬는 정의 그거를 보여주시면 정부도 그런 걸 보여주면 국민들도 서로 항상 노조 싸우다가도 그렇게 하다가도 또 여기서 치열하게 싸우긴 하겠지만 일단 한 발자국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고 또 우리 마음 속에 있었던 응어리들을 회복시키는 회복적 정의가 현재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을까, 누가 잘났다고 정의를 하기보다는.

이각범: 
우리가 정의를 구현함에 있어 방금 박정순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회복적 정의 참 중요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해가지고 우리가 정의가 정말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정의가 어느 쪽에서 보에 갇혀 독점되지 않는 그런 나라를 만들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마무리 말씀으로 두 분께 간단히 요청 드리겠습니다.

황경식: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을 때 대한민국에 150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팔렸을까요. 저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일단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 정의가 부재하는 이유가 대한민국 사람이 정의의 기준을 몰라서 그러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척동자도 정의가 무엇이고 부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러나 우리는 정의에 대해서 아는 만큼이라도 실천, 실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차세대에게 정의를 실행할 수 있는 의지와 지혜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제도의 개편이 굉장히 필요하다 생각하고 우리 애들이 살아있는 정의를 배울 수 있도록 체험적인 정의 교육이 저는 절실히 요구되고, 또 정의감과 같은 그런 덕목을 우리 애들이 습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편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박정순:
아까 맨 처음에 운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거로 떠올랐는데요. 제가 그리스 신화를 보니까 정의의 여신 디케가 나오게 됩니다. 디케라는 말은 정의의 여신 자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최초의 정의의 여신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디케라는 거 그 당시에 디케라는 말은 디카이오시네라는 말인데 그래서 정의의 여신이 등장하게 되고 그게 나중에 유스티티아 여신으로 세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안대를 하고 칼을 들고 천칭을 들고 그렇게 되는데, 그 전에 정의의 여신 전에 정의의 여신을 대변했던 것은 운명의 여신입니다. 그래서 운명에 주어진 몫을 다 받는 건데 현재 제가 볼 때 우리나라 수준은 아직 운명의 여신 단계에요. 주어진 흙수저.금수저 그거에 고착되어 아무런 변동도 없고 상향 이동도 없는 사회거든요. 그래서 정의의 여신 다음대로 올라가기 위해서 디케가, 중요한 게 뭐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 말하면 채용비리, 고용세습 나왔고 헬조선 이런 것도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이, 아까 우리 충분하게 공정성의 문제를 이야기 했으니까 그 앞에 특히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을 잘 지키게 되면 이제 우리는 헬조선과 채용비리 이런 거, 정의 사회로 가는 굉장히 중차대한 큰 발자취를 딛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각범:
오늘 정의는 독점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이각범의 화쟁토론 논의를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 그리고 박정순 연세대 철학과 교수님 나와서 많은 토론을 해주셨습니다. 저희 세대는 입시를 통하여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었고 경쟁이 정당화 된 세대였습니다. 나름대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회적 이동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전체적으로는 불평등하였다고 하더라도 바로 이 높은 사회적 이동 때문에 사람들은 정당한 사회라고 인식을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세종대왕은 인류 역사상 정말 가장 뛰어난 임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백성과 더불어 늘 생각하는 연민의 리더십,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혁신의 리더십, 그리고 국방을 튼튼히 하면서도 백성들의 배를 불리는 국리민복,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들고자 절치부심 하였습니다. 그 때의 세종대왕은 비록 자신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끝까지 경청하면서 설득하면서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변화, 자신이 생각하는 부국강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바로 공정성과 역지사지가 기본 정신으로 흐르는 정의 사회,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감사합니다.(끝)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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