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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의 화쟁토론 45] '한글과 세종 리더십'...손욱-김용준 "국민과 함께 하는 여민(與民) 정신 실천하자"

기사승인 2018.10.12  11: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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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한글 창제의 큰 뜻은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 아닐까?
-세종의 자주정신을 경영학의 리더십과 관련해 생각해 보면 어떻게 될까?
-세종의 리더십, 여민의 정신은 오늘날 어떤 경영리더십이 될지, 또 그런 정신을 어떻게 확산할지?
-한 세종 스스로는 어떤 ‘축적의 시간’을 가졌는지, 엄청난 독서가 밑바탕 아니었을까?
-세종이 오늘날 집권하고 계시다면 어떻게 했을까?
-세종의 고려사 편찬 추진과 조세제도 정비 등에 나타난 철학은?

손욱
-세종 리더십은 자주 역량을 극대화하는 차별화 전략... 소리가 다르니 글자도 달라야 한다.
-링컨의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보다 통합의 시대에는 세종의 “with the people" 철학 필요해.
-여민(與民)이 되려면 소통해야 하고 소통 잘되면 통합도 이뤄져... 한글 창제도 백성과 소통하려다 된 것.
-세종 스스로 많은 독서와 토론...개인의 창의성에 세종의 경영철학이 어우러져 창의시대 열어
-세종이 백성의 역량을 믿었듯 기업들도 조직원들 역량을 믿고 키우고 발휘하도록 해야
-세종은 가장 합리적인 조세제도 만들기 위해 17년간이나 토론을 진행하기도

김용준
-말은 있지만 문자로 쓰지 못해 소통하지 못하는 백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서 한글 창제.
-경연을 통해 경청하려 했기에 많은 인재들이 생기고 창의성도 생겨...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문화 일궈야.
-창의성을 영재성과 혼동해선 안돼... 신나게 일하게 해 줄 때 창의성 발휘돼.
-오늘날 세종이라면 뭐가 문제인지 같이 얘기하고 규제 등 문제 해결에 지속적으로 노력했을 것.
-고려사를 폄하하는 구신들의 역사 기술을 중지시키고 후대에 사실대로 쓰도록 조처.
-싸이와 BTS의 한글 가사가 세계로 퍼지듯 한글의 위대성은 국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각범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이하 이각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는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종대왕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이셨습니다.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자주적 입장을 가졌습니다. 외양으로는 중국에 사대하는 듯 했지만 국방의 강화, 과학기술의 발전 등 자주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철저히 했습니다. 한글은 바로 우리나라의 문자를 스스로 갖겠다는 세종대왕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글은 사회통합을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지배층이 가지고 있던 지식의 독점 벽을 허물고 온 백성이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모든 국민이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길을 열려고 하였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다시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각범의 화쟁토론, 오늘은 ‘한글과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서 토론합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이각범: 
오늘 토론자로 손욱 전 농심 회장님, 현재 사단법인 한국형리더십연구원 원장님으로 계십니다.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욱 한국형리더십연구원 이사장(이하 손욱):
안녕하십니까?

이각범:
그리고 김용준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원장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준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 원장(이하 김용준):
안녕하십니까?

이각범:
네, 먼저 한글 창제 하는데 있어서 세종대왕께서 가장 먼저 강조하신 것이 훈민정음 서문에서 나오지만 우리말이 중국말과 맞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 뜻이 사맛디 아니할 쌔 그러셨잖아요? 이는 세종대왕이 갖고 계시던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지켜야 되겠다고 하시던 그 생각이 한글 창제의 큰 뜻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되는데, 손욱 회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욱:
예. 세종께서는 조선 백성들이 자주성을 가지고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한글뿐만이 아니고 역법에 있어서도 중국의 역법에 따르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법을 가져야 된다, 그래서 자주적 역법을 만들었죠. 그리고 음악도 민족이 다르기 때문에 달라야 된다. 그리고 화포라든지 이런 것도 조선의 지역에 맞는 화포체계를 만들어야 된다. 우리의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의료기들도 달라야 되고 약효가 다 다르기 때문에 처방도 달라야 된다. 소리가 다르니까 글자도 달라야 된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자주적인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차별화 전략이라고 할까요? 그런 의식이 아주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각범:
네. 지금 손욱 회장님이 말씀하신 세종대왕이 갖고 계시던 자주정신 그거는 결국은 우리나라의 환경에 잘 적용해야 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교조적인 주자학을 받아들인 교조적인 이념으로부터 탈피해서 정말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거를 생각하신 세종대왕이신데요. 경영학에서 리더십 관련해서 생각하시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김용준:
우리가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셨다, 전 국민이 다 알고 있고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데, 우리가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좀 더 깊이 공감하고 우리가 배우려고 그러면 좀 세종대왕이 계셨던 가정환경과 성장환경을 우리가 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그의 아버지는 태종이신 이방원이시고 그의 할아버지가 이성계 태조이신데요. 이성계는 기본적으로 고려인으로서 북방 여진족들과 같이 살았고 3대째 거의 같이 사신 거죠. 지금으로 치면 이성계는 해외동포셨던 거죠. 그래서 이제 내려오셔서 고려 말에 정치에 참가하셔서 이제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드셨는데. 세종대왕의 본 이름은 이도이십니다. 이도는 이성계 이씨 조선왕조를 맞던 이씨 왕족 중에 처음으로 여기 서울 한양에서 태어난 위의 북방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왕으로서 그 당시의 자기 아버지나 또는 자기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말도 했고 아마 여진족과 같이 계셨으니까 여진족 말도 하셨을 거고 중국어도 하셨을 거 같아요. 그래서 그거를 보면서 특별히 언어에 대한 다양성에 좀 접해 계셨던 게 아닐까? 세종대왕이 어려서부터. 그리고 거기서 여진족 말을 보면서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어서 그것이 지금 완전히 문화가 사라졌는데 아마 그런 성찰이 있으었던 같아요.

이각범:
아 그러군요.

김용준:
그래서 ‘우리 문자를 가져야겠다.’ 그리고 그런 자주성의 생각이 어려서부터 있으신 거 같고 본인은 22세 되셔서 왕위에 오르셨는데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그거를 대 국민으로 한글, 훈민정음을 발표하신 거는 세종 즉위 28년 1418년이셨거든요. 거의 한 28년 동안을 훈민정음 창제하려고 집현전 학자들하고 노력하면서 만들어 냈던 28 글자였던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세종대왕께서는 한글, 훈민정음이라는 것이 어떤 자주성, 뭐 이런 거에 기본적인 동기나 발상은 있으셨겠지만 훈민정음 처음에 나타난 것처럼 국민, 백성들, 조선시대 백성들에 대한 측은지심, 말은 있는데 문자로 쓰지 못하는 그래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그래서 관료들은 다 중국말로 하고 중국어를 쓰지만 일반 백성들이나 서민들은 하지 못하는 거에 대한 그런 애틋한 마음이 있으셔서 이거를 좀 만드셔야겠다 혹시 그런 마음이 있으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각범:
김용준 교수님 아주 중요한 지적 지금 하셨는데, 혹자는 그 얘기를 합니다. 링컨 대통령이 미국에서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지만 어떻게 보면 단순한 노예해방의 차원이 아니라 세종대왕께서 하신 한글 창제 사업은 우리나라 백성들이 정말 지배층의 한문 문화에 들어가지 못한 일반 백성들이 지식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은, 그야말로 이 문맹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회적인 지위에서 열악한 것인데 그거를 막고 일반 백성들이 새롭게 동등한 인간으로서 나아가기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 있어서의 지위의 높고 낮음, 그 격차에 대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이야 말로 사회 통합적인 조치였다 그렇게 얘기 합니다. 그래서 세종대왕께서 늘 이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셨다고 하셨는데 그게 실질적으로 세종 리더십을 연구하시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손욱:
세종은 언제나 함께 한다는 말을 썼습니다. 여민이라고 했죠. 위민은 통치자가 백성들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이런 뜻이라면 여민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백성과 힘을 합쳐서 함께 해결한다. 여민이죠. 그래서 여민애락, 이런 표현을 잘 쓰시고 아악도 여민락이라는 이름을 쓰시고. 그래서 저는 세종의 위대한 점은 바로 백성과 함께 하겠다고 하는 With the People이죠. 우리는 링컨을 훌륭하다고 하는데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of the people 그러지만 그거 보다 한 단계 위에가 With the People이고 특히 21세기에 들어와서 SNS로 인해서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통합이 필요한 그러한 시대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장 필요로 한 것이 바로 With the People이라고 하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그러니까 세종은 농사꾼이 되던 뭐 아니면 관료가 되던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 사람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그러니까 생생지락이라고 하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신바람 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백성을 만들었고, 그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을 해서 국가 발전에 원동력으로 삼는 통합의 리더십에 아마 가장 위대한 표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각범:
네. 세종대왕께서 직접 작곡하신 그 곡을 들어본 적 있는데 현대판으로 하면 교향곡이죠. 교향곡의 그 장중함이 정악이긴 하지만 그 장중함이 뭐에 비교할 수 있을까 하면 스탈린이 좋아했다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같이 정말 힘차고 장중하고 스케일이 큰 그런 곡을 작곡하셨더라고요. 이 분이 항상 거기서 나타나는 게 뭐냐 하면 우리가 이렇게 우리가 큰 뜻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민족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손욱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정말 여민, 백성과 더불어 나는 행진할 것이다 하는 뜻이 담겨 있는 음악을 직접 작곡하셨습니다. 이렇게 정말 백성에 대해서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통합을 하고 같이 한다고 하는 것이 경영 리더십에서 그런 리더십에서 그런 리더십이 갖고 있는 장점이 많을 텐데요 현대적으로 보면 어떤 리더십이 있습니까?

김용준:
지금 한국 현대 지금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R&D를 열심히 잘해서 생산을 생산성 높게 해서 그거를 수출하는 그 모델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걸 우리가 50년 동안 이뤄냈거든요. 그런데 이제 제조업 생산을 잘하는데 아주 적절한 기업문화는 군사문화입니다. 생산을 높이기 위해서. R&D를 하기 위해서는 창의성 있는 기업문화가 필요하지만 생산을 잘하기 위해서는 군사문화가 아주 효율적인 기업경영 문화방식인데, 최근에 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이 제조업을 통해서 수출하는 거를 너무 중심으로 하다보니까 R&D를 하기 위한 창의적 문화, 이 부분이 굉장히 부족해졌는데요. 이 R&D는 그런 수직적인 군사문화에서는 생기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수평적이고 서로 의논하고 여러 가지를 융·복합해서 창의성이라는 것이 생길 수가 있는데, 세종대왕께서는 토론 문화, 소위 경연이라는 거를 항상 신하들과 같이 하셨는데, 경연을 하실 때 첫 말씀이 우리 같이 의논해 봅시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내 생각은 이런데 야 당신 생각들은 어떠시오? 이렇게 하기 때문에 수직적인 상황에서는 회장님께서, 오너께서, 사장님께서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아랫사람들이 제 생각에는 어떻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기가 참 힘든데, 처음부터 의논해 봅시다 라고 경청하려고 하는 모습을 세종대왕이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때 많은 인재들이 생기고 많은 창의성들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한국의 현대 기업들도 좀 회장님이나 사장님이나 어른들께서 항상 모이면 좀 의논해 봅시다, 얘기를 들어봅시다 좀 이러면 우리나라 기업들도 수직적인 군사문화에서 좀 더 수평적인 창의성 기업문화로 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우리가 세종대왕께서 하셨던 그 경연을 좀 많이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각범:
지금 말씀하신 그 말하는 방식, 결국은 우리가 한글을 잘 사용하고 하려면 세종대왕께서 강조하셨던 우리말을 잘 가꾸고 또 그 말에 맞게 글자를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 한번 같이 생각해 봅시다 이거 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미 상당히 공식적인 언어로 정착된 이렇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저는 어느 날 자동차를 사는데 자동차를 가지고 세일즈 하러 온 사람이 저보고 아, 이 차는 이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래서, 세일즈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강압적으로 얘기를 하나. 원래 그런 말이 없지 않았습니까? 언제부터 이렇게 강압적인 말이 생겼는가 생각하니까 군사문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흉보면서 본받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말에. 그러니까 그 말처럼 군사문화에서 수직적으로 내려오는 말이 돼서 저항문화도 굉장히 좀 독재적이라고 할까요 그런 문화가 형성이 됐고 우리나라 정치 문화에 있어서도 독재에 대한 대항은 꼭 독재로서 결과 되는 상당히 어려운 사정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수직적 군사문화에 대한 대항으로 해서 그런지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왜 남의 생각을 말이죠, 생각이라는 건 자유스러운 거 아니예요? 어떻게 보느냐 하는 자유스러운 건데, 이렇게 보면 된다, 안된다 라고 얘길 하느냔 말이죠. 그래서 그 연원이 뭔가 하고 죽 여러 사람하고 얘기해봤더니 입시 학원 때문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을 받으면서 사교육장에서 이 문제는 이렇게 푼다고 보면 돼, 이거는 이렇게 생각하면 돼 라고 하는 데에서 은연중에 그게 익어 가지고 존댓말 형태만 붙이면 되는 말인 줄 알고 남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있었는데, 세종대왕께서는 바로 한글을 창제하시면서도 늘 남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거를 그야말로 open discussion, 열린 토론을 하셨다는 거 아니에요? 그 점이 정말 대단하고 그런 의미에서 위국·애민한다는 사람들이 위국·위민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 생각을 국민들에게 많이 강조를 한다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진짜 제대로는 되는 것은 여민이다 하는 거를 우리 손욱 회장님이 아까 말씀하셨는데요. 진짜 그런 한글을 생각하고 세종대왕 즉위한 기념의 해를 우리가 생각하면서 일단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그런 그 여민의 정신을 좀 퍼뜨릴 수 있는 기회가 있겠습니까?

손욱:
여민이 되려고 그러면 결국 소통을 잘해야 되고 그래서 소통이 잘되면 통합이 일어나겠죠.  그래서 이게 하나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세종의 경우에는 백성들과 함께 소통을 하는 그런 단계로 가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경연이라는 걸 통해 가지고 지배계층 사이에서 소통을 원활하게 되도록 소통문화를 만들었죠. 그러니까 재위 32년간 1,898회를 했기 때문에 한 달에 아마 4~5회 정도, 매주 1회 이상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태종이 돌아가시고 혼자서 왕이 되었을 때 세종 5년에는 250회를 토론을 합니다. 그 이유는 고려인으로 탄생한 사람들과 조선인으로 자라난 사람, 그리고 불교를 국교로 가진 사람과 유교에 된 사람, 새로 국가를 세운 사람들과 거기에서 벗어난 사람들, 다양한 계층과 분열이 있을 수 있는 사회구조를 하나로 가져가려면 그 사람들의 생각을 한자리에 모아서 화쟁을 하듯이 정말 토론하고 토론해서 하나가 되어야 되겠다 그래서 세종 10년까지는 연평균 150회 이상 이런 토론을 합니다. 왕이 직접 참여를 해서. 그러다 보니까 지배계층 간에 그런 소통과 통합이 일어나게 된 것이고, 그것을 백성들과 소통하려고 보니까 특히 한자와 우리말의 차이 때문에 이제 소통이 안됐던 거지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한글 창제까지 이어져서 온 백성들과 소통을 해야 되겠다, 그것도 말로만 아니고 글로도 소통을 해야 되겠다, 단 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바로 위국애민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각범:
세종대왕께서 황희 정승을 그야말로 자기에 대한 적대세력인데 그걸 품어 안으셨다는 것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자기의 관직을 다 걸고 양녕대군을 세자로 계속 세워야 된다는 것을 고집하고 그로 인해서 태종으로부터 배척당해서 초야에 묻힌 황희 정승을 찾아가서 자신의 정승으로 하고 더더군다나 황희 정승은 상당히 부패한 분이었는데 그 부패한 부분을 다 감싸 안으면서 내가 이거는 막겠다, 그러나 황희의 재주는 내가 써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품어 안았다는 거 지금 말씀하신 그런 어떤 포용의 리더십이 있어야지 정말 위국·애민의 백성을 위한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슈뢰더 총리가 6, 7년 전에 어느 공식석상에서 이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국가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는 그 질문에 자신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얘기를 했고, 왜 한국이라고 생각하느냐 했더니 한국은 역사적으로 군사작전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배로 만든 군함에 철갑을 씌우고 또 거기에 못을 박아가지고 근접전에서 늘 승리하는 그런 군함의 시초를 만들었던 나라이고 또 그것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문자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쓰는 서양의 알파벳도 그리스에서 로마로 해가지고 내려오면서 변형돼서 원래 생겼던 경험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인데, 한글이야말로 음운체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가지고 그거를 기왕에 갖고 있던 철학과 결합을 해가지고 아주 체계적으로 만들어서 누구나가 그것을 보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고 배운 결과를 가지고 이 세계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음성이 거의 없도록 하는 이런 무로부터 유를 만든 그런 발상이기 때문에 이런 걸 하는 백성이야말로 정말 창의적인 백성이다 이렇게 했는데, 아까 앞에서 창의성, 그 다음에 수직적인 군사문화 말씀하셨는데, 정말 이 창의적인 문화는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김용준:
아마 슈뢰더 총리는 아까 말씀하신 우리 역사 속에서 한민족이 창의성이다 이렇게 얘길하셨는데 최근에 가장 창의적인 한국 여성과 결혼을 하셔서 아마 매일매일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한국적인 창의성을 경험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창의성을 우리 세종대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현재 우리는 이 창의성을 어린이들의 영재성과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각범:
그렇죠.

김용준:
아이큐가 높다든지 뭐 공부를 잘한다든지 이런 영재성을 그게 바로 창의성이라고 연결하는 것 같은데, 그런 영재성은 아마 대학입시에 성공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우리 문명이나 또는 예술 분야에 있어서 창의적인 또는 창의적인 것을 발명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도 한글뿐만 아니라 화포나 또 여러 가지 직제를 만드실 때 항상 집단지성이라는 것을 활용을 하셨고 그래서 그 중에 한 두 사람의 지금으로 치면 팀장과 같은 음악에서는 박연, 과학에서는 장영실 이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우고 그 사람들이 진짜 신나서 일할 수 있게 해줘서 그런 창의성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특히 이 창의성은 요즘 얘기하는 창업하고도 직접 연결이 되는데, 저는 지금 우리나라의 창업 이거는 대학생들이나 젊은이들한테 자꾸만 창업을 하라고 그러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거고 성공확률도 높지 않고 오히려 최근 40~50년 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루셨고 그런 경험과 많은 지식이 있으신 한 50~60대 분들이 좀 창업을 하셔서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고 그 사람들의 영재성이나 창의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그런 창업 전략, 좀 그런 창업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특별히 뭐 한글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의 많은 업적이 어느 하나도 소위 세종대왕께서 본인이 지적재산권, 카피 라이트를 주장하지 않으셨거든요. 항상 그것을 만들었던 학자들이나 젊은 학자들한테 공을 돌리고 그것이 진짜 백성들을 위해서 여민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기 때문에 좀 우리 사회도 그런 문화를 받아들여서 자꾸만 젊은이들한테 창의성 발휘해라, 뭐 창업해라 이러지 말고 진짜 그런 지식을 가지고 그런 네트워크를 가지신 분들이 모여서 좀 창업하고 창의성이 발휘되는 모습을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각범:
네. ‘축적의 시간’인가요?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야 되는가, 또는 세계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야 되는가, 이른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거를 연구한 서울공대 이정동 교수(‘축적의 길’ 저자)죠, 그 분 강연을 들어보니까 우리가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거는 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거는 오랫동안 여러 기술이 집적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가 창의성이지, 창의성이라는 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뭐 비슷한 예로 재정하시는 분들은 그래요, 우리나라 특히 젊은 층에서는 정부 돈은 하늘에서 뚝 딱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정부가 갖고 있는 이 돈이라는 거가 다 국민의 개별 호주머니에서 나와서 모인 것이 정부 돈이다 그 말씀하고도 어떤 면에서는 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창의성이 아니라 집적하는데서 온다 이렇게 했는데, 결국은 세종시대에 세종대왕께서 이렇게 창의적으로 하신 거가 그 분이 엄청난 독서광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독서를 하면서도 그냥 독서를 하신 게 아니라 그 분은 뚜렷한 목적의식,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우리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할까 하는 목적의식으로 했기 때문에 엄청난 독서를 하셨기 때문에 그 많은 창의성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그러나 세종대왕께서 실질적으로 이 축적의 시간을 어떻게 가지셨습니까?

손욱:
세종대왕이 스스로는 책을 열심히 읽어 책 벌레였지요. 어떤 책은 백번 읽었다고 그러고 어떤 책은 천번 읽은 책을 가지고 있을 정도죠. 그리고 많은 사람과 토론을 통해서 그거를 융합을 하고 새로운 이제 창조를 이룩했다고 하는데. 그거를 근대적인 학문 측면에서 보면 요즘에 긍정심리학이 최근에 많이 발전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연구결과는 긍정적이 되면 창의적이 된다, 인간은 행복하면 창의력이 높아진다, 그런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종 시대는 모든 사람들을 세종은 항상 칭찬을 했습니다, 뭘 했든 간에. 야단치기보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신바람 나서 창의력이 발휘되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 낸거죠. 그리고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창의력은 다른 인간의 뇌와 지적 충돌을 통해서 지식혁명이 일어나듯이 창의성이 살아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집현전 학사들을 통해서 토론의 씨앗을 만들고 그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한번 모여 갖고 깊은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창의력이 창의적인 지혜가 점점점점 중첩돼서 살아 올라가게 만들어 나간 것이죠. 그러면서 리더는 목적을 제시할 때 항상 무엇을 모방하라고 하지 않는 겁니다.  세종의 가장 중요한 점은 앞에 자주성에서 말씀을 하셨지만 항상 우리는 달라야 된다고 얘길 했습니다. 장영실이 중국에 가서 물시계를 그 모방을 해갖고 가지고 왔을 때는 처음에 만든 중국과 같은 물시계 만들었을 때에는 그거에 대해서 찬성을 안했어요. 우리는 달라야 된다고 본거죠. 그래서 자격루라고 하는 세계 최초의 메커니즘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을 칭찬하고 격려했더니 옥루라고 하는 정말 세계 최고의 시계를 만들게 된 것이죠. 장영실이라는 개인의 창의적인 것도 있지만 그런 자주성을 불러일으키고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세종의 리더십, 그리고 세종이 주도해온 그런 토론의 문화,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신바람 나게 일하게 만들어야 되겠다고 하는 생생지락이라고 하는 생생지락의 그 뭐 경영철학, 이런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정말 놀라운 창의적인 시대를 열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각범:
네. 김용준 교수님,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이러 이런 문제를 당면했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실 때가 있죠. 특히 우리나라의 뛰어난 기업인, 우리가 짧은 산업화 기간 동안에 정말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대단한 창의적인 지성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하신 그런 경영인들이 여러 분 계신데. 세종대왕께서도요 과연 우리 같은 이런 현재의 경제적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셨을까, 통일문제, 행복문제, 또는 뭐 우리가 얘기했던 창의성의 문제, 그리고 이제 4차 산업혁명이 와서 우리가 다 바뀌고 있는데,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세종대왕께서 지금 집권하고 계신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만.

김용준:
아마 미뤄 짐작컨대 세종대왕께서도 그 당시 조선 시대는 조선 사람이 만들어야 된다 라고 말씀하신 그런 자주성의 생각은 갖고 계셨지만 그 때 국제정세는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 관계 속을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적인 현상들을 잘 성찰하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흐름에 맞춰서 과학기술이나 제도도 변화시키려고 노력을 하셨고 그래서 장영실 같은 분을 중국에 유학을 보내서 처음에는 모방하게 하셨고 그 모방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격려와 칭찬을 통해서 창신, 새로운 것을 만들게 하는 모방 창신을 관료들과 이런 학자들에게 계속적으로 만들도록 격려하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 4차 산업혁명이 되는데 4차 산업혁명은 이제 ICT 소위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해서 이렇게 융복합하는 거거든요. 여러 개가 합쳐져서 새로운 것들이 나오는 거죠. 뭐 최근에 가장 새롭다고 하는게 구글에서 이제 이렇게 콘택트 렌즈를 만들어서 그 콘텍트 렌즈를 끼고 계시면 당뇨병 걸리신 분들이 매일 같이 피 검사를 하시지 않고 그냥 그 콘텍트 렌즈가 당뇨 검사를 해서 본인의 핸드폰에 당뇨 지수가 얼마다 라는 기술을 개발해서 그런 렌즈가 나왔답니다. 이런 것이 소위 말하는 4차 산업의 새로운 기술이고 테크놀로지인데, 그 내용을 보면 의료과학 기술하고 이런 렌즈 만드는 기술하고 또 ICT, 핸드폰에 그것이 표현하는 이런 것이 융·복합으로 일어나거든요. 이런 융·복합이 일어나려고 그러면 수평적인 소통, 담을 치지 않고 서로 이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이나 의료기술이나 또는 디지털 ICT 기술의 공학자들이 다 같이 모여야지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나 이런 나라 중국이 앞서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이렇게 소통하고 대화하는 이런 문화들이 없고 자꾸만 벽을 치는 문화 우리 쪽한테 있는 것 같고, 두 번째는 이런 규제가 갖고 있는 제도와 정부의 규제가 너무 그 규제 일변도 가다보니까 새로운 산업이나 새로운 창의성이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가 있는 것이 지금 현재의 우리가 당면한 큰 문제가 아닌가 싶고요. 세종대왕께서는 당연히 이 문제를 보시면 첫째 이 문제를 같이 얘기해 보자, 의논해 보자, 뭐가 문제인지 그러셨을 것 같고요, 두 번째는 본인들의 관료들을 통해서 규제 문제나 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주 지속적인 노력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선 이렇게 대화하고 소통하고 새로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는 아마 두 선배님들께서는 본인들이 한참 일하셨을 때 젊었을 때 그런 것들을 많이 하셨을 거고 밤샘토론을 많이 하셨을 텐데, 지금은 좀 그거보다는 벽이 많은 그런 데에 있어서 참 답답한 마음이 있고요, 아마 이거를 깨는 것이 우리가 세종대왕의 정신과 리더십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각범:
특히 저 우리 손욱 회장님은 삼성 종기원 회장도 하셔서 이 종기원을 운영하시면서 거기가 삼성이 하여튼 미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미래의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그야말로 창의적인 기업을 만드는 센터이지 않습니까? 창의성 문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셨을 텐데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그 창의성과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창의성의 문제를 좀 결합이 될지 모르지만 결부시켜서 설명하시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손욱:
저도 종합기술원에서 5년 동안 일을 할 때 세종으로부터 배워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회의실이나 이런 데 앞에다가 세종시대 여러 가지 이름들 세종대왕실, 장영실방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그런 걸 고취하기도 했는데요. 세종은 결국은 누구를 믿는거냐 하면 백성을 믿는 거죠, 백성들의 능력. 마찬가지로 기업에서도 그 기업 조직의 조직원들의 역량을 믿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조직원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신바람 나서 자기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러니까 세종은 금속활자를 개발을 해갖고 많은 서적을 간행해서 펼친다던지 아니면 농민들 농업기술을 위해서 특별히 농사직설 같은 책을 배포한다든지 그 전체적인 소양을 높이기 위해서 소학이라는 책을 일 만권이나 배포를 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여튼 전체의 지적 수준, 그리고 스스로의 지혜 수준을 끌어올려서 그것을 이제 행복한 문화를 통해서 신바람 나게 발휘하도록 만들어 놓으면 돌파구들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왕이 어떤 생각을 해내서 그것을 온 백성이 힘을 합쳐서 달성해야 하는 그런 체계가 아니고 모든 백성들이 자기 맡은 분야에서 정말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고 개척하고 하는 이런 역할을 해나가면 반드시 이겨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 때에는 정말 농업기술·의료기술·화포기술 할 것 없이 수많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과학기술이 많이 나와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유태인들이 노벨상 22% 가져갔다고 놀라는데 15세기 세종시대의 과학기술 평가를 보면 47% 정도가 노벨상급 기술의 47%가 조선 것이 될 수 있었다 이런 평가를 받는데, 그것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훌륭한 아이큐, 지적 역량이 있죠, 그것을 신바람 나게 발휘하게만 만들면 기적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민족적 역량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틀을 이렇게 내려다보면 각각의 기업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것은 어떠한 변화가 창조적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죠. 그것을 대응하려고 그러면 자주적인 역량을 개발하게 하고 신바람 나게 대응하게 하고 하는 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각범:
네. 세종대왕께서는 역사에 대해서도 굉장히 투철하게 연구를 하시고 특히 우리나라 역사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여러 차례 새로운 시도를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고려사’ 책을 내셨는데, 그 어떤 근거와 배경이 있습니까?

김용준:
역사의식이 워낙 강하셔서 고려사를 좀 제대로 써놔야 된다 그래서 후세에 기록으로 남겨야 된다. 그런데 이제 할아버지 이성계가 개국을 하고 조선을 만들고 아버지 이방원이 이제 태종께서 나라를 기본적으로 정리한 상태에서 역사서를 쓸려고 하니까 그 때 세종대왕하고 같이 했던 학자들 특히 집현전은 젊은 학자들이었지만 세종대왕은 본인이 아버지에서 자기 자식으로 넘어가는 3세대 지도자이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나 개국공신들을 지속적으로 구신은 구신대로 썼던 거 같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재들을 키웠는데. 구신들한테 역사서를 쓰라고 하니까 당연히 전 나라였던 고려를 굉장히 폄하해서 쓰고 정확한 사실을 쓰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첫 번째 고려사 썼던 것을 흡족하지 않으셔서 한 30년 동안 발행금지를 시켜 놓으셨다가 새로운 학자들 정인지, 신숙주와 같은 새로운 학자들에게 고려사를 쓰도록 명을 하셨고, 그 때 변계량이라는 학자가 있었으나 그 학자가 본인의 뜻하고 잘 맞지가 않으셨기 때문에 그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각범:
아, 그러셨어요?

김용준:
그리고서는 자기 유지를 담아서 그 다음 자기 아들인 문종 때 고려사를 내게 되는, 그런 바른 훈민정음이 바른 소리인 것처럼 바른 생각, 역사는 역사대로 제대로 고증해서 써놔야 된다는 그 생각을 지키시기 위해서 본인 때 업적으로 고려사를 내놓으시지 않으시고 후대에 역사서를 내게 하시는 그러한 안목과 참을성이 많으셨던 분일 것 같습니다. 바른 일을 위해서는.

이각범:
네. 아, 정말 그렇군요. 그리고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던 부분이 일반 백성들이 글자를 모르니까 부당한 계약에 많이 무인(拇印)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계약 내용이 무엇인지를 글자로 이해하고 그래서 본인의 경우는 불이익을 안 받도록 해야 된다 하는 뜻에서 정말 백성들의 아픈 구석을 살펴보신 거죠. 그러면서 세종대왕께서 여러 차례 또 강조하신 게 그 때 뭐 저 군을 안간 사람들이 내는 세금도 있고 그 다음에 곡식을 내야 되는 것도 있고 그 다음에 포목을 내야 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형태의 세금 내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서 일반 백성들이 과중한 세 부담에서 벗어나도록 세법 정비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이게 한글 창제하는 정신과 이런 세법 정비 이거에 또 같이 녹아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욱:
백성을 사랑한다고 하는 애민을 바로 그 세법으로 설명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백성으로부터 거두는 것이다,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조세제도 만들기 위해서 17년간이나 토론하고 또 토론합니다. 그 때 우리나라 역사에 최초로 뭐라고 그럴까요 국민투표를 하는 거죠.

이각범:
아, 그렇습니까?

손욱:
전 가가호호를 방문해서 전부다 물어봤습니다, 찬성과 반대를. 그래서 그 결과를 놓고 또 그걸 개선한 점을 찾고 개선점을 찾고 해서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다 찬성할 정도로 만들어서 실시를 했거든요. 그래서 백성을 사랑하는 그 절절한 마음이 그런 노력을 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서 세종 26년이 돼서 평가를 해보면 농업생산성이 400% 향상이 되었습니다. 한 결당 생산되는 게 400%가 늘어났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농지개발이 또 활발해 져가지고 아마 전체적으로 보면 10배 이상 생산성이 늘어나서 그 당시에 왜구들이 침략을 하지 않도록 왜구들한테도 식량을 나눠주고 여진족에게도 베풀고 해서 정말 이웃나라에도 모두가 다 성군이 났다고 칭송하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각범:
네. 그렇게 잘사는 나라를 통치자가 열린 생각을 가지면 만들 수가 있네요. 그러면 그렇게 세종대왕께서 조세제도에까지 백성들을 생각해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가면서 그것이 계속해서 세종대왕께서 측우기 만들고 이런 것이 다 농업 증산을 하기 위해서 하신 거고 이게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먹는 문제를 식량 증산을 통해가지고 해결해 주셨는데. 이 한글도 말이죠, 바로 이런 그 세종대왕의 여민하는 마음, 그리고 세종대왕의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우리가 자주적이어야 된다는 그런 철학이 한글에 녹아있지 않습니까?

김용준:
네. 한글의 위대성은 최근에 600년이 지나고 나서 예술·음악 분야에서 아주 국제화가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의 많은 음악인들이 국제화를 하기 위해서 영어로도 노래를 부르고 불어로 불러보고 일본어로 불러보고 많이 했지만 그렇게 크게 그 지역에서는 성공했을런지 모르겠지만 74억의 인구들이 환호하는 그런 노래는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튜브에서 한 30억 정도 조회된 그 노래는 순수 한글로 된 가사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BTS 가 미국에서 공연하면 모든 티켓이 팔리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환호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 되는 BTS의 곡도 다 한글로 부릅니다. 그래서 한글이라는 게 세종대왕께서는 조선시대에 백성들을 위해서 만들어내셨지만 그 글이 워낙 독특하고 또 여러 사람들이 세계인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그게 지금 600년 지나고 나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의 음악을 통해서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것은 다시한번 싸이의 강남스타일하고 BTS의 노래는 세종대왕한테 지적재산권을 패턴트(patent,특허권)를 좀 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각범:
이번에 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다시 재협약하는 협약서에 체결을 하는데 사인하면서 내가 생전 내 이름이 한글로 적힌 것은 처음 본다. 그런데 아마 트럼프 대통령도 놀랬을 겁내다. 자기 이름을 이렇게 쉽게 적을 수가 있구나. 이런 문자가 있구나 하는데, 저도 외국 다니면서 외국 사람에게 한글을 알파벳을 가르쳐 주거든요. 그러면 대개 한일 관계에서 다닐 때는 도쿄에서 떠서 뭐 저 비행기 떠가지고 바로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중간에 한글에 우수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리고서는 어디 한번 배워보겠느냐 이래가지고 얘기하면 옛날에는 김포공항이었는데 김포공항 내리기 전에 완전히 깨쳐 가지고 자기 이름도 한글로 쓰고 뭐 안녕하십니까 우리말로 이런 인사말은 뭐라고 그러냐 그러면 안녕하십니까 라고 한다고 그러면 안녕하십니까를 한글로 써보고 해가지고 대개 보통 정도의 아이큐를 가진 사람은 한글은 1시간 내지 1시간 반이면 다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너무 체계적이고요. 그래서 왜 그 체계적인 한글이 저는 가나다라마바사가 아닌데 가나다라마바사가 아니고 세종대왕께서 처음에 하셨듯이 입술부터 시작해가지고 비읍, 히읗, 미음 이렇게 해서 시작하는데 언제 그렇게 훈몽자회하면서 가나다라마바사로 바뀌어 가지고 비체계적으로 바뀌었는데, 원래의 순서대로 하게 되면 정말 배우기 쉬운 것이 되고 또 이것도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바꿔야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손욱 회장님께서는 한글에 녹아있는 세종대왕의 철학을 짧게 요약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손욱:
세종대왕이 한글을 왜 만들었을까. 예를 들어서 이제 그거는 아까 말씀하신대로 그 나랏말이 중국하고 달라서 소통하는데 문제가 있다 하는 국가적인 측면도 있지만 백성들이 하고 싶어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제대로 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억울한 당하기 쉽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뭔가 문자를 만들어 줘야 되겠다, 소통을 위해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 만든 것이 한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백성사랑의 절절한 마음이 바로 이 한글인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결국 중국이나 외국과의 어떤 소통에도 큰 도구가 돼서 어떻게 보면 세계화라고 하는 그런 차원에서도 한글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거죠. 발음기호를 한글로 하면 못 듣는 발음 기호가 없다고 그러죠. 이런 생각이 그 때서부터 뭐라고 그럴까요 아주 나라사랑과 백성사랑 두 개로 통합을 해가지고 꽃을 피우게 된 것이 바로 한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각범:
시간이 짧습니다. 그래서 벌써 마무리 말씀해주셔야 되겠는데요. 네, 오늘 말씀을 요약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용준:
세종대왕께서 600년 전에 한글을 만들어 주신 거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계 어디를 다니면서도 제가 한국인으로서 가장 자긍심을 갖는 것은 저희 문자 한글이 있다는 사실이고요, 이 한글 때문에 앞으로 우리 한반도에서 사는 8천만 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 역사성을 계속 가질 수 있다 라는 아주 큰 믿음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동기가 그 시대에 본인이 처하셨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어떤 백성들에 대한 측은지심, 그들과 같이 안고 하는데 그들이 어려움이 많아서 문자를 만드셨던 그 생각을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면서 앞으로 저도 대학에서 학생들하고 같이 지낼 때 세종대왕의 정신과 삶을 잘 되새기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각범:
네. 손욱 회장님.

손욱: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화두는 융합과 창조, 상생입니다. 그렇게 되려고 그러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세종의 가르침은 한글이 가지고 있는 창조성도 중요하지만 한글이 탄생하게 된 그런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국가의 어떤 자주성, 주체성 이런 것들을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만들어서 남과 다른 차별화된 기술을 개발하게 되고 창의력을 발휘해서 중국을 놀라게 할 정도의 세계적인 기술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주변의 모든 나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글의 과학성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되고 세종이 이끌었던 창조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생각을 해야 되고, 더 하나 더 나아간다면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려사를 편찬한 이유에도 나타납니다만 고려사를 연구한 이유는 민족의 역사를 올바로 알면 긍지와 자부심이 생겨서 중국에 종속된 나라가 아니고 자주적인 조선을 이룰 수 있겠다 이런 꿈을 가지고 고려사를 편찬했다고 생각을 하고 고조선의 역사를 심도 있게 연구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소홀히 하고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날 이런 혼돈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창의적인 문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선조들의 지혜를 계승·발전하는 그러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각범:
네. 오늘 토론자로 손욱 전 농심 회장님, 그리고 김용준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원장님 나오셨습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도 우리 문자를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28 글자를 만들어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드셨습니다. 바로 그 자주의 생각에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를 만드셨습니다. 저도 김영삼 정부에서 정보통신정책, 그리고 정보통신을 활용하는 정책에 깊이 참여하면서 늘 세종대왕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4차 산업혁명시대에 세계의 선진의 나라를 발돋움 할 수 있는 그 문자의 기초가 바로 한글에 있고 이것은 세종대왕께서 가지신 역사 존중의 의식과 미래를 보는 혜안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과거를 매도하고 그리고 반대편에 대해서 칼질을 하는데, 세종대왕께서 보이신 포용정신, 자주정신, 그리고 이념에 매이지 않고 늘 현실을 추구하는 과학정신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끝)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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