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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어쩌면...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기사승인 2018.09.17  20: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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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땅에 두 발이 닿아있지 않으면 내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평소에 별로 겁이 없는 편이지만 비행기를 타거나 배에 오르면 극심한 공포가 몰려온다. 그런데 이제는 육지도 안전하지 않은가 보다. 최근 서울에는 일주일에 걸쳐 두 차례의 지반 함몰이 발생했다.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땅이 가장 무서운 사고 현장으로 돌변한 것이다. 다행히 늦은 밤과 새벽에 사고가 발생하면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만약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갑자기 내려앉는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2. 서울 금천구 가산동 ‘지반 함몰’

생각보다 심각했다. 가로 30m, 세로 10m, 깊이 6m라는 수치상 기록보다 직접 눈으로 목격한 ‘지반 함몰’은 더 거대해 보였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이 발로 짓뭉개버린 것 같은 현장에는 땅과 함께 꺼져버린 아파트 담벼락 잔해물과 가로수, 공사장의 가시설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며 외부인인 기자들도 눈앞이 아찔했다. 땅이 무너져 내리던 새벽, 아파트 주민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주민들이 임시로 대피해 있던 가산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44년생 할머니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북한에서 또 쳐들어오는 줄 알았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 이후로도 6.25 전쟁 당시 이야기를 20여 분간 더 들려주셨다.

멀쩡하게 잘 있던 땅이 갑자기 꺼질 일은 없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니까. 아파트 앞 도로가 갑자기 내려앉은 데는 ‘대우 푸르지오 오피스텔’ 공사장 흙막이(펜스)가 비로 인해 무너진 탓이 컸다. 흙막이가 설치된 공사장은 아파트 담벼락과 불과 3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 사이에는 일방통행 도로 하나만 있었을 뿐인데, 만약 그 시간에 도로를 지나는 사람이나 자동차가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주민들은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주민들 앞에 선다는 대우건설 관계자는 주민들의 뭇매를 맞았다. 비가 더 내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추가 사고 대응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금천구청도 주민들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사고 발생 열흘 전부터 주민들이 땅이 갈라지는 징후들을 포착해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은 구청 직원들을 더 벼랑으로 몰아넣었다. 구청 직원들은 사고 전날에야 해당 건축과에 민원이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구청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싶다.

정말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고,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3. 서울 동작구 상도동 ‘유치원 기우뚱’

빳빳하게 잘 다린 검정 바지에 뿌연 먼지가 내려앉았다. 서울 상도동의 유치원 건물 철거 현장에 도착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온 몸은 먼지를 뒤집어 쓴 후였다. 동작구는 먼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물을 뿌려가며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마치 스모그 현상인 양 동네 전체가 먼지로 가득했다.

가산동의 아파트 앞 도로가 침하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상도동의 공사장 옹벽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지반이 내려앉으며 바로 옆에 있던 상도유치원 건물이 크게 기울었다. 이른 아침, 사고 현장으로 향하는 취재기자의 마음은 씁쓸했다. 실제 현장에서 바라본 유치원 건물은 더 처참했는데, 건물을 받치는 한 쪽 기둥은 무너졌고 건물 여기저기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유치원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그 전부터 공사에 대한 불안감과 불편으로 민원을 제기했었다니 당연한 반응이다. 사고 전날, 유치원 측은 건물에 균열이 생긴다며 현장점검을 요구하는 공문을 동작구청에 보냈다. 그러나 동작구는 현장점검을 실시하지 않았고 유치원 측이 주최한 대책 회의에도 나서지 않았다. 하루에도 여러 공사들에 대한 민원이 수십 건씩 접수된다는 구청 직원의 말을 들으니 어쩌면 혹시, 그래서 민원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졌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건물은 이틀 만에 철거됐다. 대단히 신속한 사후 처리였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고 철거 현장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짠했다. 한 아이는 자신이 다니는 유치원이 철거되는 모습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4. 에필로그

 한번으로도 끔찍한 사고가 일주일 사이 서울에서 두 번이나 잇따라 발생했다. 그것도 거의 흡사한 이유에서였다. 또다시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재 우리가 안전에 대처하는 모습을 본다면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집으로 돌아와 온몸에 뒤덮인 먼지를 닦아 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가산동과 상도동이 기억에 또렷하다. 

 

서일 기자 blueclouds31@bbsi.co.kr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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