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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 저자 김성구 교수 인터뷰

기사승인 2018.07.23  09: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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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내신 책이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 부제는 ‘양자역학이 묻고 불교가 답하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우선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란 어떤 것을 말하는지요.

아인슈타인이 생각하기에 진리는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가 둘일 수 없다, 진리는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생각하기를 종교라면 그 교리가 과학적으로 뒷받침되고 과학자들한테 또는 예술가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된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 영감이라는 것은 이성적 사유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떤 종교적 깨달음에 의해서 직관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종교적 깨달음을 아인슈타인은 우주적 종교적 감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우주적 종교적 감정에 바탕을 둔 종교가 우주적 종교인데,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삼는 종교라면 그게 우주적 종교가 되는데, 아인슈타인이 거기에 덧붙이기를 옛날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그런 우주적 종교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불교가 우주적 종교에 아주 가깝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2. 과학과 잘 부합하는 좋은 종교가 불교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좋은 종교라기보다도 제 생각에는 종교라는 것은 꼭 교리와 성자의 깨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실천하는 불교도까지 함께 불교를 만드는 거니까 불교도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불교가 부처님의 본뜻과 달리 갈 수도 있고 바르게 갈 수도 있는데, 만일 바르게 간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이 책의 과학이론과 불교교리를 접목해서 설명하고 끝에 보면 팔정도 수행까지도 묶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책의 특징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징이라기보다는요 현재 불교는 제 생각에 부처님이 깨달은 이치를 잘 설명하기는 하셨지만 그건 2천 6백여 년 전 인도인들의 지식 수준에 맞게 설법하신 거거든요. 그리고 당시 인도인들의 지적수준이라는 것도 사리불이나 목건련처럼 뛰어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닥도 있거든요. 쫄라빤다카처럼. 그런 사람들한테 설법하기다 보니까 현대인이 알아듣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징이라기보다도 현대인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개념으로 부처님 말씀을 쓴다면 어떻게 될 건가, 이렇게 쓰는 거다 하고 써 본 것이 이 책입니다. 그리고 내용은 동국대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을 텍스트로 하고 여러 번 테스트를 해서 학생들의 이해도를 감안해서 이 정도 쓰면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4. 불교의 연기(緣起)와 중도(中道), 그리고 현대과학의 양자역학 등 개념들을 견주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올 상반기에 강의까지 하셨는데, 이게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보시나요?

제 판단으로는 학생들이 상당히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좋아했기 때문에 제가 용기를 얻어서 이걸 일반 사람들도 읽을 수 있게 써보자 하고 쓴 거니까 제가 얼마만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저는 동국대 학생들의 반응과 그 학생들의 이해도를 바탕으로 좀 쉽게 쓴다고 쓴 책입니다.

5. 진정한 미래 종교는 불교다 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그동안에 과학과 불교를 접목한 저서를 여러 권 내시고 이번에 대한불교진흥원 화요열린강좌에 오셔서 강의도 하셨는데요, 과학과 불교,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종교라고 하면 과학과 완전히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구요, 우선 목적과 영역이 같습니다. 과학은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계가 영역이거든요, 불교도 우리가 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라고 말하는데 바로 우리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세계가 바로 불교가 말하는 영역입니다. 영역이 같구요, 그 다음에 현상계를 보면 굉장히 차별성이 많습니다. 다른 게 많지요. 사방이 다른데. 우선 물리학의 기본 정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기와 자기는 우리가 그냥 볼 때는 다른 현상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는 게 뭐냐하면 운동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전기현상이 자기현상으로 보이기도 하고 자기현상이 전기현상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동일한 현상을 운동상태에 따라 다르게 본다고 해서 서로 다른 현상을 통일적인 시각으로 보는 거거든요. 그 다음에 뉴튼의 만유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상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나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이나 똑같이 만유인력이라는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는 운동이라 해서 이 수많은 차별상을 하나의 보편통일적인 이론과 법칙으로 기술하는 건데, 불교가 바로 그렇거든요. 바로 그게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이어서 그거 하나만 따로 떼어내서 이것이라고 할 만한 어떤 실체가 없다, 그렇게 해서 거기서 이론적으로 유도된 것이 공과 중도인데 바로 공과 중도의 원리야말로 우리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보장해 주는 철학이다, 이렇게 불교가 주장하는데 제가 검토해본 바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공통점이거든요. 그런데 차별상이 있지요. 뭐냐하면 과학은 외계 사물을 대상으로 합니다. 외계 물질세계를. 그러니까 이미 주체와 객체가 딱 분리돼 있습니다. 그러면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것은 논리적으로 기술하면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불교는 물론 우주 운행의 원리도 말하지만 주로 내면적인 성찰이거든요. 자기 마음을 관하는 것. 그건 뭐냐면 관하는 자와 관하는 대상이 같다는 뜻입니다. 그걸 논리학에서는 자기언급이라고 그러는데, 자기언급이 있으면 그 관하는 대상을 말로 표현할 때 반드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모순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색즉시공 같은 것이라든지 번뇌즉보리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건데, 그런 걸 피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관적인 내 성찰이기 때문에 자기만 알지 남들은 모르거든요. 물론 깨친 사람들끼리는 인가도 하고 알아보긴 하지만 적어도 깨치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자기의 깨친 바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설명하면 아까 말씀드린대로 논리적으로 모순된 방식으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든가 범부즉부처(凡夫卽佛陀)라든지 이런 식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건 논리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6.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뉴튼 물리학과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있습니다. 거시세계대로 나름의 법칙대로 움직이고 미시세계 역시 나름의 법칙대로 움직인다고 보면, 이 둘이 영역과 작동원리가 다른데, 이것이 하나의 과학으로 내지 불교의 연기 이론으로 두루 적용되는 그런 이론은 없을까요.

지금 현재 모순이 안되는 겁니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를 설명하는데 성공을 했구요, 뉴튼 역학은 태양계를 포함해 우리 일상 경험세계를 설명하는데 성공을 했지요. 그러면 뉴튼 역학이 설명하는 세계와 양자역학이 설명하는 세계는 다른 거고 다른 현상이냐, 그렇지는 않구요, 실제로 양자역학으로 현상세계를 설명하려면 귀찮습니다. 쉽게 말해서. 뭐냐하면 원리적으로는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와 뉴튼 역학도 포함합니다. 그런데 뉴튼 역학으로는 미시세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양자역학을 두고서 그걸 과학적 용어로는 근사이론이라고 하는데, 양자역학에 나오는 어떤 상수 하나를 플랑크 상수라고 하는데 이 상수를 0으로 보내면 그대로 뉴튼 역학으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원리적으로는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데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그 방식으로 거시세계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서 그냥 근사법칙인 뉴튼 법칙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7. 지금은 4차산업혁명 시대라 하고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존속해야 할텐데,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변해 나갈 것으로 보시고 그 속에서 우리 불교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제 생각에는요 물론 제 생각이기만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뇌과학자들이라든지 뇌공학자들, 미래학자들의 얘기를 듣고 검토하고 그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아닌지 바탕으로 제가 판단한 것입니다만 언제인지 모르지만 인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될 겁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재미있는 것이 인간과 같은 감정과 욕망과 질투와 사랑을 하면서 인간과 똑같거든요. 그러면서 능력은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렇게 될 거라고 봅니다. 우주여행도 하고 정말 불사의 인간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지금 뇌공학자들 중 일부가 구글에 있는 이사,  이름이 얼른 생각이 안나는데(레이 커즈와일) <특이점 온다>라는 책을 썼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결국 인간의 두뇌에 있는 정보를 다운로드 받아서 불사의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부분적으로는 가능하거든요. 정말 두뇌를 다 복사할 수 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지만 부분적으로는 되거든요. 어쨌든 건강도 좋아지고 그러게 될 겁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능력만으로 행(幸).불행(不倖)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요, 소위 감성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서 질투하고 미워하고 하는 마음이 순화되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거든요. 그리고 욕심도 많고. 그러니까 감성을 순화하고 그런 신과 같은 존재가 되면 제우스는 스트레스가 없을지 몰라도 제우스에게 당하는 신들은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데, 반드시 불교를 찾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하나의 조짐이 보이는데, 지금 실리콘밸리는 소위 명상문화가 자리를 잡아서 거기서는 명상이 우리 마치 차 마시고 하는 것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명상을 하면서 일을 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명상문화가 정착되는데 기여를 한 차드 멍탄이라는 구글의, 은퇴했지만, 검색창을 발견한 엔지니어입니다. 그 사람의 경우에는 명상시대가 앞으로 도래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인간이 엄청나게 부유해지고 능력도 우주여행하면서 이렇게 신처럼 됐을 때 반드시 자기 마음이 뭔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명상시대가 도래한다는 차드 멍탄의 생각에는 저는 동의합니다.

8. 불교계 안팎이 어수선하기도 하고 또 남북간에는 돌파구를 모색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불교방송 청취자 시청자들이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야 할지 당부를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주실지요.

그건 제 생각에 팔정도에 맞는 생활을 하면 되거든요. 우리가 지금 교육이 조금 잘못됐다고 보는 게 물질을 숭배하는 마음 때문에 부와 출세를 위해서 교육을 하다 보니까 시험만 잘치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윤리 도덕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왜 바르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바르게 사는 게 뭐가 좋은지. 그런데 그런 쪽으로 가르쳐야 되거든요. 쉽게 예를 하나 들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복잡한 자연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우리나라 정부 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관광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지금 유치하는 것 다 해야 돼요. 그런데 관광산업이라는 것이 꼭 멋진 문화유적이 있거나 경치가 좋아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곳이라 해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정직하고 내가 갔을 때 기분이 좋아요, 음식을 사 먹더라도 믿을 만한 음식을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거기의 상품은 적어도 질에 비해서 값은 싸고 그러면 관광객은 모이게 됩니다. 그런 기반이 말하자면 그게 윤리도덕인데, 윤리도덕은 항상 중시하고 가정과 학교에서 그걸 바탕으로 그 다음에 정책도 세우고 공부도 하고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끝)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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