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겉절이 인생

기사승인 2018.07.10  01:07:37

공유
default_news_ad1

 어느 재벌가의 오랜 갑(甲)질 혐의가 그 집안의 기둥뿌리인 비행기도 멈출 태세이다. 평생 저 집안의 비행기를 타고 다녔던 사람들이 온갖 비난을 입에 담고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한다. 혐의 내용들이 다 맞다면, 저들이 돈만 믿고 벌여온 작태들은 감옥에 가야 셈이 맞다. 어머니와 딸들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포토라인 앞에 섰지만 그들의 속마음을 아는 국민들은 싸늘하다. 한 변호사는 기자에게 지금 어머니가 받고 있는 혐의의 구속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시키려면 대형로펌 전관 변호사들에게 최소 10억 원은 줘야한다고 말했다. 정말 돈의 힘인가. 처자식과 혐의의 질 자체가 다른 아버지까지 총수 일가는 모두 구속을 면했다.

자식들의 나이와 직책을 보면 더욱 기가 차다. 혈기왕성 청운의 꿈을 품고 대기업에 입사해 밤낮 없이 일하며 굽실거리길 30년 해야 겨우 써보는 전무, 부사장, 사장 감투를 ‘금수저’ 하나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겁도 없이 마구 썼다. 또래들은 말단 사원으로 회사에서 복사지나 나르고 눈칫밥이나 먹고 있을 때 말이다. 돈으로 입막음까지 시도했다는 기사들도 넘쳐나고 있는데 ‘유전무죄, 무전유죄’ 돌림노래가 또 다시 흥얼거려진다.

이 집안과 ‘하늘길 돈벌이’를 놓고 자웅을 겨뤘던 옆집 회사도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이른바 ‘투자유치금 갑(甲)질’로 시작된 ‘기내식 대란’으로 완전히 벌집이 됐다. 이 과정에 사람까지 세상을 떠났으니 어쩌면 문제가 더 심각할 수도 있겠다. 이 집안도 자식농사 한 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 인생공부 시킨다며 낙하산으로 딸을 상무에 앉히지를 않나, 아들은 몇 년 만에 냉큼 이사를 달았다. 가장 가관인 것은 ‘늙은 회장에게 바치는 부하 여직원들의 생쇼’다. 물론 철저하게 강요된 것이다. 북한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어린 여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춤추고 노래하며 이 회사의 회장을 찬양하고 아부 떠는 내용인데, 강제 스킨십 요구는 기본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이런 역겨운 짓을 시켰을까. 예상했던 대로 다 모른다고 하고, 다 아니라고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에게 온갖 특혜를 받으며 이 나라의 날개를 독점해 온 이들의 민낯은 갑(甲)질에 찌들은 괴물이었다.

이 쯤 되면 ‘겉절이 인생’들은 분노한다. ‘겉절이’는 배추 또는 푸성귀를 소금에 절였다가 갖은 양념에 무쳐 만든 반찬을 말한다. 결코 주 요리는 될 수 없고,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그날의 밥상이 성찬(盛饌)이 되도록 입맛을 돋운다. 특유의 감칠맛으로 없어서는 안 되지만 밥 먹는 내내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렇게 ‘겉절이 인생’은 한마디로 어중간한 인생이다. 대충 밥 먹고 사는 집에서 남들과 비슷하게 섞이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성장하고, 그저 그렇게 눈치 보며 어쭙잖게 공부해 진짜 잘난 놈들 사뿐히 걸어갈 때,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가서 겨우 보폭 맞추며 간신히 흉내 내고 사는, 지금 우리 시대 대부분의 인생들이 ‘겉절이 인생’이다.

특별히 돈 있는 부모 만나 일찍이 해외유학의 분칠을 경험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머리가 좋아 초일류명문대 훈장을 평생 안고 가는 인생도 아니다. 그렇다고 형제가 10명도 넘는 산골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출세해 나이 먹어 추앙받고 각광받는 인생도 아니다. ‘겉절이 인생’들은 또 이런 ‘흙수저’들의 ‘자수성가 성공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어느 덧 세월도 지나 이젠 돈 좀 벌고 싶고, 한 자리 하고 싶고,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제대로 인정받고 싶고, 보란 듯이 ‘저녁이 있는 삶’도 살고 싶고, 여하튼 하나 뿐인 내 인생, 좀 번듯하게 기름칠 좀 하고 싶은 데 언제나 뜻대로 잘 안 되는 인생이 ‘겉저리 인생’이다.

그래서 ‘겉절이 인생’들은 저런 ‘갑(甲)질의 향연’에 가장 치가 떨린다. 타고난 부(富)도 핑계댈 가난도 없이, 남다른 머리도 번듯한 학벌도 없어, 그저 나만 바라보고 사는 내 가족들 위해 열심히만 살아가려고 하는 데, 그렇게 아등바등 거리며 평범한 소시민의 삶만 묵묵히 살아가려고 하는데, 어느 날 정말 느닷없이 저런 가진 자들의 개념 없는 특권과 반칙을 마주하게 되면, 허탈함을 넘어 적개심으로 오래도록 상처받는 것이다.

‘겉절이 인생’들이 ‘로스쿨’ 제도 실시와 수능 ‘수시’ 확대에 내심 불만을 갖는 것도 이런 적개심과 무관치 않다. ‘고시 낭인’ 양산이라는 결정적인 폐단에도 사법고시는 오랜 세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용하고 확실한 신분상승의 사다리였다. 한 날, 한 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시험지 한 장’으로 승부를 보는 것, 이것은 그 모든 것을 떠나 ‘공정함’을 담보할 수 있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짓는 가혹함 등 학력고사가 물려준 비판의 굴레를 대부분 답습하고 있지만 ‘수능 정시’가 ‘수능 수시’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공평하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명백하게 교육이 신분을 대물림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로스쿨’이나 ‘수시’는 아무래도 시험에 붙을 자신이 없는 ‘금수저’들이 만들어낸 ‘돈지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겉절이 인생’들은, 어린 날 한번쯤 꾸어봤을 그 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인생들이다. 이렇게까지 빨리 갈림길을 만날 줄은 몰랐지만 한 번 길을 잃어버리고 매일 매일 전쟁처럼 살다보니 어느 새 여기까지 와버렸다. 시계처럼 출근해 시체처럼 퇴근하는 삶의 고단함과 의무감은 유년의 ‘그 꿈’을 철저하게 박제시키고 돌아보기조차 민망하게 만들었다. 이제 살면서 특별히 재미있는 것도 없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둘러싼 사방 천지에 해서는 안 될 것들과 숨죽이며 조심해야할 것들만 가득하다. 이렇게 달려서 무덤까지 가야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면 몸서리쳐지게 끔찍하고 허망하지만, 그렇다고 이 나이에 이 무게와 책무를 벗어던지고 당장 ‘행복의 나라’로 도망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나 곱씹으며 혼술이나 하다 잠드는 수밖에. [보도제작부장] [2018년 7월 10일]

 

 

양창욱 wook1410@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지나가다 2018-07-12 15:18:08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신고 | 삭제

    • 겉절이1 2018-07-10 14:13:14

      일반 소시민을 음식 그것도 "겉절이"로 비유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특히 불교방송칼럼에서 이런 저급한 글이 실리는 것에 대해 화가 납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힘없는 민중을 겉절이로 표현해도 되는 대단한 직업인지 몰랐습니다. 결국 변호사의 수임료는 말씀하신 겉절이들이 대부분 지불하지 않나요?신고 | 삭제

      최신기사

      set_A2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set_C1
      ad44
      ad36

      BBS 취재수첩

      item41

      BBS 칼럼

      item35

      BBS <박경수의 아침저널> 인터뷰

      item58

      BBS 기획/단독

      item36

      BBS 불교뉴스

      item42
      default_side_ad3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