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집단소송을 하면 승산이 있겠느냐고요? 별 의미 없어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 안 된 마당에, 은행들이 '돌려주면 될 거 아냐' 이렇게 나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실제로 몇몇 은행들은 벌써 그렇게 나오잖아요"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은행권 대출금리 조작 사태'를 취재하던 중, 한 법학교수가 해준 말입니다.
'돌려주면 될 거 아냐'라는 말. 생각해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설마 내가 네 돈 떼먹을까봐 그런 거야?'와 함께 쓰이곤 합니다. 빌려갔거나, 맡아두고 있거나... 어떤 형태로든 타인의 재산을 점유하고 있는 자에게, 재산의 원래 주인이 어떤 이유로든 항의를 하면 돌아오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남의 재산을 부당하게 관리하는 자가, 그 재산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고 해도, 그 이유만으로 부당관리행위가 용서되진 않습니다. 우리 법전에 사기, 횡령과 배임, 기타 여러 경제범죄를 처벌하는 조항은 그래서 존재하는 거겠죠. "돌려주면 될 거 아냐"라는 말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사설계보다 유리하고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한국신탁은행 광고. 1971년 1월 25일자 동아일보 지면 캡쳐. |
지금이야 은행이 흔하고 일상적인 금융기관입니다만, 7~80년대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은행보다는 사설계나 전당포 등을 선호하는 금융소비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은행들은 '계보다 유리하고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고객님이 돈을 맡기면 그 돈에 대한 정확한 이자를 틀림 없이 드리고, 빌릴 경우 정확한 이자만을 요구합니다" 이런 것이겠죠.
사설계와 전당포가 자취를 감춘 건, 은행들의 이런 홍보를 금융소비자들이 신뢰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신뢰가 깨져버렸으니, 금융소비자들의 충격이 얼마나 클까요.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돌려주면 될 거 아냐"만 외치고 있습니다.
더욱 답답한 것은 금융당국의 태도입니다. 은행들을 제재할 수도, 고발조치할 수도 없답니다. 금리는 어디까지나 각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고, 그 자율적인 규정에 대해 당국 차원에서 개입을 할 수 있는 규정도 없답니다.
규정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마련을 해야합니다. 이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입법을 논의할 때입니다.
찾아보면 규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약관규제법 제3조 3항은 '사업자는 약관에 정해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법 34조 2항은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명시돼 있고요. 대출을 받으려는 소비자에게 이자의 산출근거만큼 중요한 내용이 또 있나요? 형량이 약한 감이 있긴 하지만,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일단은 존재한다는 겁니다.
부당하게 산출된 이자를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건 생색낼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은행들은 자신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돌려주면 될 거 아냐" 이 한마디로 넘겨서는 안됩니다.
유상석 기자 listen_well@bbs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