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구의 북악산 자락] 자유한국당 계파 싸움에 떠오른 ‘친박 기자’

   국회 출입 기자를 꽤 오래 하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관해 바뀐 몇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국회의원 되기가 그렇게까지 험난하진 않다는 것 하나가 있고요, 사회 각 영역에서 배출된 국회의원의 ‘전문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도 한가지입니다. 지역이 아니라 분야별 대표성을 띠는 비례대표 의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선거 없이 순번을 받아 금배지를 다니 액면상 국회 입성은 한결 수월합니다. 각 직능 분야 대표로 뽑혔다지만 ‘천하의 인재’는 고사하고 ‘실력’ 자체가 의심스러운 인물도 많습니다. 이들 국회의원을 싸잡아 ‘함량 미달’이라거나 ‘놀고 먹는다’고 비하하는 인터넷 댓글식 막무가내 비판에는 결코 동의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평균 이상 잘난 것은 분명한 그들 제각각에게 ‘뭔가 한방’이 분명 있을 것이란 기대치는 겪어보니 ‘탁월한 처세술’과 ‘화려한 말발’로 포장된 허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언론사 선배들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기자 출신이 대부분인 그들 가운데 후배의 귀감이 된 소위 ‘에이스 언론인’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그런 분이라면 애초부터 정치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테지요.

   송구하게도 언론계 선배격 국회의원들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는 요즘 정치권에서 재연된 ‘친이, 친박’ 논쟁 때문입니다. ‘친이,친박 싸움질에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모른다’는 말이 나온게 10년이 넘었고, 이것이 ‘친박-비박’ 구도로 전환돼 결국 보수 정치세력이 ‘폭망’했는데도 자유한국당이 정신을 못차리는 듯 하니 자연스럽게 과거 ‘친이 기자, 친박 기자’ 용어가 생각났습니다. 정치부 국회반장 타이틀로 정치권을 취재하던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치러진 해였습니다. 그 당시 국회 기자실 정론관은 ‘친박 기자’들이 주름잡던 시절이었는데, 적어도 여당인 새누리당 취재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당시 여권 권력의 중추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와 친밀한 ‘A언론사 S기자, B신문사 K기자, C방송사 P기자 등’이 그룹을 지어 이른바 ‘친박 기자’ 행세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수백명의 각사 취재기자가 포진한 국회 기자실은 친박계 핵심 취재원과 서로 ‘형님, 동생’하며 마치 당원처럼 전장에 몸을 던진 소수 기자들과 그들을 내심 부러워하거나 하찮게 보거나 아니면 그 존재조차 몰랐던 다수 기자들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그 해 대선이 있기 6개월전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는 기자를 갓 그만둔 언론인들이 대거 새누리당 공천으로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A신문사 출신 P의원, B신문사 출신 L의원, C방송사 출신 H의원’ 등이 초선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했는데, 그들은 모두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즈음 태동한 친이-친박 대결에서 친박에 우호적인 기사를 남발한 기자들이었습니다. 2012년 대선은 이들의 대를 이은 후배 ‘친박 기자’들의 맹활약이 있었고 저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일부 친박 기자의 몰락(?) 또는 변신을 청와대 춘추관에 함께 상주하며 뚜렷이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개인의 보수 또는 진보적 성향은 뉴스 작성에 곧잘 묻어납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도 공공연히 드러납니다. 우리나라 정치 뉴스 의제가 정책 보다는 인물을, 생산적 논의보다 정략적 대결 구도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대한민국 정치의 폐단인 ‘패거리 문화’와 닮는다면 그건 큰 문제입니다. 정치 권력에 종속된 ‘친0 기자’란 어처구니 없는 실체적 집단이 또다시 언론계에 등장한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일로, 2017년 대통령 탄핵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과도 배치될 테지요. 지난 6.13 국회의원 재보선 12개 지역에서 자유한국당 간판으로 홀로 살아남은 송언석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이런 말로 인사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조리 다 바꿔야 합니다” 냉혹한 민심의 서릿발 속에 송 의원은 어쩌면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당 현직 의원입니다. 그래서 이 발언의 무게감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김무성 의원의 ‘당권 도전용’ 총선 불출마와 서청원 의원의 ‘정계은퇴 아닌’ 탈당 선언이 말해주듯 당 수습을 빙자해 패권을 이어가려는 구태를 막아선 막내의 처절한 몸짓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혹여 자기 패거리가 당권에서 밀려나고 그것이 자신의 안위에 악영향을 줄지만을 노심초사하는 상당수 동료 의원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결심으로도 읽힙니다. 한국당이 2020년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명함 하나라도 겨우 내밀 수 있으려면 근본부터 바꿔야만 가능할 겁니다. 이제는 정치 한켠의 빗장을 걸어온 보수 언론부터 촛불 정국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사뭇 달라졌을테니 기득권 보수 정치세력의 적당한 물갈이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홍보거리입니다. 친박, 친이 기자들이 금배지를 달아 출세를 하고 기성 언론과의 멋진(?) 합작품을 만들어내던 언론 흑역사의 시절을 다시 꿈꾸지 않는다면요/ 이현구 정치외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