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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남편 독박육아 일기

기사승인 2018.05.08  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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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와 호수가 보이는 신도시의 아침은 분주하다. 서둘러 이 도시를 빠져나가 서울 도심으로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은 새벽부터 미어터진다. ‘저 버스를 타고 가야 몇 시 지하철을 탈 수 있고 그래야 지각을 안 하는데...’ 오직 빨리 가야한다는 일념뿐이다. 뛰고 뛰고 또 뛴다. 또 한편에서는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려는 자가용 승용차들의 물결이 형형색색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사람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의 간격으로 촘촘하게 달라붙어 있다. 신기한 것은 이 거대한 엑소더스가 아침 8시를 넘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도시는 급속도로 비기 시작한다.

텅 빈 도시의 거리를 이내 채우는 것은 노란 색 스쿨버스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를 소형버스들이 마치 경쟁이나 하듯이 저마다의 로고를 붙이고 도로를 활보한다. 다행히 아이들을 위한 버스이니만큼 속도는 내지 않는다. 아이들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들은 대부분 모자를 눌러 쓰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었다. 아빠들은 십 중 팔 구, 축 늘어진 츄리닝에 운동화를 꺽어 신었다. 싸워가며 달래가며 아이 깨워 밥 먹이고, 세수 시켜 옷 입혀 데리고 나오는 과정이 그야말로 전쟁이라 본인은 세수조차 못하고 튀어나왔으리라.

대한민국은 맞벌이 부부가 아이 키우기엔 지옥 같은 나라다. 능력이 있건 없건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하는 3, 40대 직장인들이 회사 일과 집안 일, 육아까지 병행하다 보면 하루 단 1분도 자기를 위해 쓸 시간은 없다. 아니, 생각할 시간이 없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까먹고 그러다 깨지고 다시 일은 또 쌓이고... 정말 토 나올 지경이다. '다 내 일'이라는 책임감에 애써 봉인했던 분노의 감정들이 여과 없이 분출된다.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지만 유치원 갔다 와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릴 자식새끼 눈망울이 어른 거려 얼른 지옥철을 타고 짐짝처럼 쓸려 퇴근하면 온통 난장판으로 어지럽혀진 집구석과 산처럼 쌓인 설거지 거리가 내 양복바지에 천연덕스럽게 초콜릿 떡칠을 하는 아이와 함께 기다린다.

“육아 도우미를 쓰지”, “요즘은 정부에 신청만 하면 다 되는 거 아니야?”, “부모님이 좀 안돌 봐 주시나?”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말들로만 위로랍시고 하는 주변을 보면 더 기가 막히다. 아이는 부모가 있으면 그 누구에게도 가지 않는다. 속된 말로 돈을 발라 육아 도우미를 쓰더라도 아이는 부모가 눈에 보이면 껌처럼 부모 옆에만 달라붙어 있다. 조금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돼 눈이 빠지게 기다릴 자식을 두고 홀로 어디 가서 편하게 쉬었다 귀가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육아 도우미들도 조금 싸다 싶어 정부나 기관에 신청하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지 한 번이라도 신청해 본 부모들은 다 알고 있다. 또 맞벌이들은 대부분 소득이 높아 금전적인 혜택은 어림도 없다. 모두 하나마나한 소리다. 요즘은 대부분 늦은 나이의 결혼으로 부모님들이 연로해 봐줄 기력도 없으시지만 설사 내 아이를 봐준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교육방법 등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고 전전긍긍 눈치만 보다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황혼육아의 이면(裏面)이다. 못마땅함과 죄스러움, 서운함이 야금야금 섞여 감사하면서도 뭔가 불편하고 아쉬운 기분으로 부모 자식 간의 오랜 정리(情理)마저 내 아이 때문에 깨지는 것이다.

사정이 이 지경인데도 나라에서는 돈 10만원 더 줄테니 아이 더 낳으라고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인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사람들은 제때 못 구해주면서 아이들 킥보드 값도 안 되는 돈 보태주고 우쭐거리고 있다. 전쟁터에서 총알이 없어 허덕거리고 있는 전사(戰士)들에게 건빵을 주며 독려하는 격이다. 또 ‘독박육아’라 하여 저 모든 것들을 온전히 엄마들만 알고 있고 다 짊어지고 있다는 요즘 사회 분위기에도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다. 물론 육아는 본래 여성의 몫이고 남성은 선심 쓰듯 도와주는 것이라는 대다수 남편들의 가당치 않은 편견에서 비롯된 사달이지만, 모든 남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처럼 외국에서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모든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아 하는 남편들도 많고,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는 동등한 의무’라고 것은 이미 강요된 슬로건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책임으로 많이들 인식하고 있다. 다만, 육아휴직 하려는 남성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 정도가 아니라 등신 취급하며 당장 책상부터 빼라는 구닥다리 조직문화가 여전히 문제라면 문제겠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자식이 예쁘기 때문이다. 자식은 예쁘다. 자식은 태어나서 부모에게 할 효도의 대부분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다한다고 한다. 그만큼 이 시기의 자식이 예쁘다는 말이다. 사람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홀로 만들 수 있는 행복의 종류와 크기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혼자 돈을 갖고 권력을 쥐고 명예를 얻으면 뭐하겠는가. 결국은 외롭고 공허할 뿐이다. 사실 특별한 인생은 극히 드물다. 우리의 인생은 매일 매일이 거의 비슷한 날들의 반복이다. 그래서 행복했던 날도 별로 없다. 생각해보라. 자신의 삶에서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인생고(人生苦)는 허언(虛言)이 아니다. 인생은 그저 무심하게 흘러갈 뿐이다. 이런 허망한 인생이 자식으로 인해 조금은 행복해진다. 비루하나마 ‘내가 산 흔적(痕迹)’이라는 감투를 쓸 수 있는 것도 자식 때문이다. 어떤 인생이든 자식으로 인해 사후에도 회자되고 곱씹어진다. 언젠가 우리가 다 흘러가도 우리가 지나온 자국들을 우리의 자식들이 다시 밟아 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우리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믿음, 어쩌면 이 기대와 믿음이 오늘도 우리를 자식들에게 목숨 걸게 한다. [문화부장] [2018년 5월 8일]

 

 

 

양창욱 wook1410@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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