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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문재인 정부, 10월 개헌 수용하고 '개헌절차법' 요구해야...권력구조 개편은 공론화위 구성 법제화로"

기사승인 2018.03.18  16: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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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S 뉴스와 사람들]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의 초대 손님은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입니다.

판사 출신의 이상수 전 장관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13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서울 중랑갑 지역에서 3선 의원을 지냈고,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노동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22대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간사를 맡아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을 위해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ㅁ출연 : 이상수 나라살리는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 / 전 노동부 장관
ㅁ진행 : 강동훈 BBS불교방송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이상수 대표님 나와 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상수 : 예, 반갑습니다.

▶강동훈 : BBS불교방송 애청자를 위해서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수 : 저는 원래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서 가끔 방송도 듣고 TV도 보고 그러죠. 

▶강동훈 : 이상수 대표님 하면 과거 인권변호사시절부터, 조금 전에 나레이션에 나왔지만 노동전문가, 중랑갑에 3선 국회의원을 거쳐서 노동부 장관까지 하셨습니다. 과거에 판사로도 재직을 하셨죠? 

▷이상수 : 예.

▶강동훈 : 그랬는데 어찌됐든 개헌 전문가로 등장해서 정치하시는 분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는데. 언제부터 개헌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이상수 : 제가 원내대표, 원내총무를 할 때인데, 상대방 제 파트너가 이재오 의원이죠. 같이 했는데. 그 당시 한나라당의 대표가 이회창 대표였어요. 그 분이 DJ한테 한 번 진 다음에 다시금 선거에 나오려고 고심하던 그런 시절인데. 우리가 정치 회담 하면 언제나 보면 다음 선거를 의식하면서 회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국회가 가만 보면 민의의 전당이 아니고 오히려 다음 선거를 위한 베이스캠프가 아니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원인을 가만 생각해 보니까 대통령의 권한은 강한데, 승자독식 구도로 되어있기 때문에 승자는 모든 것을 다 갖고, 패자는 완전히 아무것도 갖지 않고 소외되기 때문에 죽고 살기로 싸우고 다음 선거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이런 제도 하에서는 안 되겠구나, 좋은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오면 싸움꾼이 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권력구조를 고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해서 정말 이제는 개헌을 할 때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국민참여를 통한 개헌을 이루자, 하는 그런 의미에서 조직도 만들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강동훈 : 이름을 보면 ‘나라살리는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이상수 : 좀 길죠?

▶강동훈 : 예, 그러니까 나라를 살리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된다, 그것도 국민이 주권이 돼서 해야 된다, 이런 취지로 이름을 지으셨는데. 어떻게 이름을 지었고 어떤 분들이 참여를 했습니까?

▷이상수 : 상당히 이름 짓게 된 데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우선 길죠. 헌법 개정을 해야 되는데 헌법개정연대도 있고 국민행동도 있고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 주권회의의 멤버였던, 지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계시는 박은정 서울대 교수, 그 분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주권회의라는 말이 좋겠다고 해서 사람들이 아, 좋은 말이다. 인도의 간디 성인도 생각이 나고 그래서 우리가 주권이라는 말을 붙였고요. 그 다음에 그 앞에다가 정말 중요한 개헌이기 때문에 나라를 살린다는 그런 기구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강동훈 : 최근 국회 발 개헌이 여야 간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고, 세미나도 열고, 이상수 전 장관께서도 이런 부분을, 세미나도 많이 주최도 했는데. 이것이 지지부진하다 보니까 결국에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초안을 내놨습니다. 일부 공개된 내용이 있는데, 이 내용을 BBS 불교방송의 박준상 기자의 리포트를 듣고 다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BBS 박준상 기자의 리포트를 들어봤는데 다시 축약을 해보면 이번에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 4년 연임제, 대선 결선투표 도입, 그리고 수도권 수도조항 명문화, 특히 이번에 5·18 민주화운동이 헌법 전문에 포함된 내용이 눈에 띄고요. 특히 사법 민주주의 강화, 국회의원 소환제 등이 포함됐습니다. 이런 것을 보시면서 이번 개헌안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또는 좋은 점이 있다면 어떻게 보십니까?

▷이상수 : 우선 저는 내용도 문제고 지금 추진하시는 절차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내용상으로 볼 때 헌법 개정 문제가 제기된 것은 87년 현행 헌법제도가 직선제가 중심이 됐다면, 이번에는 대통령제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이 가장 주된 목표인데, 대통령제에 있어서의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진전이 없고 다른 기본권, 지방분권 한다고 하면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내용상으로도 문제가 있고 또 한편은 대통령이 국회가 하지 않고 있으니까 헌법상 권한도 있으니까 발의를 한다고 하지만 저는 발의를 해도 지금 현재 여러 가지 국회의 화두로 봐서는 쉽지 않은 그런 구도인데. 오히려 정말 헌법에 대해서 개정을 할 의사가 계신다면 국회하고 협상을 통해서 개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내가 공약을 지킨다는 그런 의미에서 그냥 던지는 의미의, 진정한 의미에서 개헌에 관한 진정성을 가지고 하시는 것인지에 대해서 좀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의문도 생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강동훈 : 조금 전에 지적을 했습니다만 여야 간에 개헌안 가지고 지지부진 했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서 혹시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마중물이랄까요? 개헌안에 촉발되는 불을 지피는 그런 모양새, 정치적 색채가 있지 않나.

▷이상수 : 그런 효과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동안 한 1년 6개월 동안 개헌운동을 하고 국회에서 개헌 특위 자문위원도 하면서 지켜봤는데, 국회의원들이 말은 개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개헌에 대해서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다른 문제가 생기면 금방 개헌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그리고 또 국회의원들이 개헌 작업을 하면서 보니까 아주 논의가 폐쇄적이에요. 자문위원들 중에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말은 국민 참여 개헌 하면서도 국민들 말을 잘 안 듣습니다.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서 논의를 하죠. 그런 것이 있어서 지금 개헌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데. 저는 이런 상태를 타파하기 위해서 대통령의 저런 시도는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의미가 있고. 이것이 압박용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국회를 견인해가지고 새로운 어떤 돌파구를 여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설사 6월 개헌이 안 되더라도 여야가 합의해서 연말에라도 하자고 한다든지 이런 새로운 합의의 전환점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는 지금 말씀하신 것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동훈 : 그러니까 야당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내용에 대해서 반발이 심하지만 어쨌든 다음 주 쯤에 자유한국당도 자기 입장을 내놓겠다, 이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여야 합의가 조금 전에 이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합의가 쉽게 되지 않고, 또 의석수 분포라든지 전반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이런 부분들을 한다면 과연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가 되고 그리고 여야가 어느 정도 분위기를 맞춘다면 국민 투표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렵지만 무언가 그 동안에 개헌안과 같이 논의했던 부분에서 해결점이 있다, 실타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상수 : 제가 물어보죠. 당신들 지금 국회의 의석 분포로 봐서는 정부의 대통령 개헌안이 야당이 반대하면 의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데 왜 이렇게 밀어붙이느냐고 제가 물어보면, 우리가 그래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잘 끌어 모아서 합의된 내용대로 만일에 개헌안을 만들어 내면 국민 여론이 우리를 지지하고 야당도 곧 선거가 있는데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야당 내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개헌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라고 우선 이야기를 하고요. 또 두 번째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면, 이렇게 개헌안을 내게 되면 국회의원들을 촉발시켜서 새로운 합의를 얻어내고 어떤 계기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의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 발의는 의미가 있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렇지만 그래도 6월 개헌은 쉬워 보이지 않아서 저는 만일에 야당이 타협안을 내면 정부도 밀어붙이지 않고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타협안을 저는 가상할 수 있는 것이 첫째로, 서로가 그래도 다 인정할 수 있는 아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의 개헌 수준의 합의, 이것을 전제로 해서 단계적인 개헌을 한다는 전제 하에 그런 합의를 해서 그런 개헌을 하고. 반드시 거기에 들어가야 될 것이 저는 두 가지 있다고 보는데요. 국민 발안권, 그러니까 헌법을 국민들이 발안할 수 있고, 또 법률안을 국민이 발의할 수 있는 그런 제도가 포함되는 부분결을 한다면 저는 좋다고 봅니다.

▶강동훈 : 그러면 이 안이, 국민 발안권이 포함이 될까요?

▷이상수 : 지금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하시겠다는 그 내용에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야당도 받아서 그것만이라도 통과를 시키면 저는 큰 소득이라고 보는 것이, 앞으로 국민 발안권이 만일에 주어진다면 우리 국민들이 개헌안을 발안할 수 있게 되고, 또 선거법이 지금 문제인데 국회가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으려고 할 때 국민들이 법안을 만들어서 개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두 가지 발안권이 만일 전제되는 그런 일부 개헌이라고 하면 받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도 안 되는 경우에 무엇이 있냐면, 아예 이번에 부분 개헌은 하지 않고 그냥 날짜를 미뤄서 한 10월이나 12월에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여당이, 정부가 양보를 하는 대신에 그것을 확실히 담보하기 위해서 저는 헌법 개정 절차법을 만들어서 아예 법으로 하겠다고 명시하고, 심지어는 만일 권력구조에 대해 합의가 안 되면 그것은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서 하겠다, 이런 어떤 내용상의 합의를 해서 법안을 담아 놓으면 그것은 담보가 될 것이다, 하는 그런 차원에서 어떤 계기를 주는 발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강동훈 : 이번에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갖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 일정을 보면 녹록치 않아요. 일단 4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5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6월에는 지방선거가 예정이 되어있다 말이죠. 그렇게 보면 방금 대표님이 말씀하신 이런 정치 일정이 상당히 민감한 것인데, 차라리 방금 말씀하신 대로 10월, 또는 11월쯤으로 시간, 거리를 두고 하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공감이 있는 부분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혹시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참여자들도 이런 말씀을 하시던가요?

▷이상수 : 제가 가끔 차를 마시면서 그런 전망도 해보는데. 오늘 제가 이 이야기는 처음으로 하는 겁니다. 사실 6월 개헌이 쉽지 않겠다. 그래서 만일에 야당이 6월을 피하고 10월이나 12월에 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정부나 여당은 받아야 된다. 받되, 약속을 하되 헌법 개정 절차법을 만들어서 거기에 따라서 못 박아라. 과거에 우리가 매니페스토 운동을 펴면서 대선 전에 개헌에 대한 약속을 봤는데, 국회 와서 이야기도 안 듣더라고요. 그런데 법을 만들어 놓으면 지키겠지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죠.

▶강동훈 : 이상수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와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이상수 대표님 이제 주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얼마 전 영화 <1987>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국민들의 공감을 굉장히 많이 불러 일으켰어요. 인기도 많이 끌었고. 이상수 전 장관, 이상수 대표, 그리고 또 하나 수식어가 붙은 것이 이상수 인권 변호사. 1980년대로 돌아가면 그 분이 바로 이 대표님이십니다. 인권 변호사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이상수 : 저는 사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법대생이지만 고시를 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군대 갔다 와서 마음을 바꾸어서 고시 준비를 했죠. 그때 저는 대학은 고대를 나왔는데 고대 학생운동이 지리멸렬된 시대였어요. 내가 복학하고 나오니까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 많이 저한테 기대를 했죠. 이상수 선배가 나왔다. 우리 학생운동의 큰 활력소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상황인데 내가 딱 고시 준비한다고 하니까 다들 실망해서 당신 그럴 수 있어? 배반자야,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는데. 내가 그 때 이런 말을 했죠. 고래가 사실 짐승인데 물에서 살 때는 자기가 짐승이라고 해봤자 믿겠느냐. 그렇지만 먼 훗날에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밸 때 아 당신도 짐승이다, 하고 믿을 것이다. 나중에 봐라, 내가 나중에 고시 합격해서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 너희들이 너희 편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래서 처음부터 고시 합격하면 변호사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변호사를 딱 시작하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래도 경험을 좀 쌓아라, 한 몇 년이라도 하라고 해서 판사를 좀 하다가 그때 내가 국가보안법 사건의 영장을 기각하고 판사복 던지고 나와서 노동사건 변호사가 돼서, 저는 주로 노동자들을 위한 변론을 많이 했죠. 그 당시에 인권 변호사들이 한 아홉 명, 특히 권인숙 양 사건 때 고발이 변호사들이 있는데, 죽은 조영래, 지금 박원순 시장, 다 같은 멤버였죠.

▶강동훈 : 그 당시 유명한 분이 이돈명, 조영래, 황인철, 홍성우, 조준희 변호사 이런 분들이 인권 변호사로 주로 활동을 많이 했죠.

▷이상수 : 네, 그때는 김상철, 조영래, 박원순, 저 이렇게 있었는데, 아홉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활동을 했는데. 인권 변호사를 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고, 그러다가 또 묘하게 정치를 하게 됐죠.

▶강동훈 : 노동자 대투쟁할 때 검찰에 구속까지 되셨어요?

▷이상수 : 구속을 저는 국립대학을 두 번 갔는데, 한 번은 노무현 대통령하고 같이 갔어요.

▶강동훈 : 여기서 국립대학이라는 것은 아시죠? 여러분들?

▷이상수 : 그래서 이제 노무현 대통령하고 같이 그 당시에 구속이 됐는데. 대우옥포조선소에서 노동자가 최루탄에 맞아서 사망했어요. 6·29 직후인데, 그 당시에 노동운동이 막 일어나니까 상당히 국민들은 걱정을 해서 불안해했어요. 시민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도 노동운동으로 번지니까 약간 걱정을 했는데. 그 때 노동자가 죽으니까 사람들이 큰일 났다, 저 사태가 노동자들을 더 분규시켜서 정말 사회의 대운동을 촉발시키면 큰일이다, 하는 판에 내가 국민운동본부의 대표로 내려가서 조문을 하러 가고, 진상조사를 하러 갔어요. 그래서 옥포조선소를 가니까 그 때 부산에서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와있더라고요. 둘이 같이 콤비가 되어가지고 조사를 하고 한 일주일 동안 사태를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려고 우리는 망월동으로 간다고 하는데 정부가 남원으로 차를 빼면서 그때 분규가 있을 때 내가 잡혀 들어갔어요. 그래서 충무경찰서에서 49일 동안 살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당시 부산에서 그 정도 살았죠. 그런 경험이 있고, 그리고 그 후에 한 번 있고, 두 번 있습니다.

▶강동훈 : 영화 <변호인>을 보신 애청자 여러분들은 기억나실 겁니다. 노무현 변호사가 대우옥포조선소 앞에서 항쟁하고 하다가 변호사 신분으로 경찰에 끌려가면서 그 때 이상수 대표께서도 같이 그 일을 하셨던 분입니다. 

▷이상수 : 엄밀히 이야기하면요, 지난번 영화는 박종철 후배 고문치사사건이 주된 주제 아닌가요? 그 사건은 제가 개입을 많이 못했죠. 

▶강동훈 : 인권운동 변호사들이 굉장히 그 당시에는 소위 말하는 군부 독재에 항쟁하는 정말 우리 민초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같이 고통을 함께하는 그런 인권 변호사였고, 또 그 분들이 나중에 어찌됐든 변호사 활동을 하셨지만 정치에 참여하기도 하고 학계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 위기가 닥치면 뭉쳐서 대응하기도 했는데. 그때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셨잖아요? 중랑갑에, 그때는 갑인지 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수 : 제가 딱 국회의원을 시작하니까 선거구가 갈라지면서 중 선거구가 소 선거구로 되면서 제가 중랑갑을 했습니다.

▶강동훈 : 그러면서 국회의원 경험과 원내 총무와 여러 가지 대변인도 역임하셨고. 대변인은 그 때 대변인 했던 분들은 누가 계시죠?

▷이상수 : 자꾸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과거에 잘나갔던 이야기를 하게 되고, 마치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송구스럽긴 하지만요.

▶강동훈 : 여기는 뉴스와 사람들이니까요.

▷이상수 : 제가 처음에 정치에 뛰어든 것도 사실 계기가 있어요. 우리가 국민운동본부에 들어가서 직선제 개헌을 하고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저희들은 민주화운동이 성공해서 우리 쪽에서 대통령이 될 줄 알았거든요.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 중에 한 분이 될 줄 알았는데, 딱 단일화가 안 되면서 오히려 노태우 대통령이 됐잖아요? 그때 굉장히 운동하던 사람들은 실망해가지고, 또 두 분이 단일화를 못하고 하니까 실망해서 이제는 그런 분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선배님이 나가십시오, 선배님같이 젊은 사람이 나가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그때 떠밀리다시피 해서 우리 후배들이 나가라 해서 제가 나간 사람입니다.

▶강동훈 : 본인의 의지는 조금 그렇게는 없고?

▷이상수 : 저는 그렇게 빨리할 줄은 몰랐고, 저도 언젠가는 한 번 정치를 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때 그렇게 빨리 나갈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나갔는데. 그때 나이가 45세인데, 그때 제가 우리 대학에서 한 57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돼가지고 축하회를 하는데 제가 막내더라고요, 보니까. 그러니까 빨리 나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나갔는데 내가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운 사람인데, 나는 대변인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 당시에는 변호사죠. 그런데 어느 날 저를 부르더라고요? 부르더니 “이 변호사, 대변인을 좀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대변인이 뭡니까, 라고 하니까.

▶강동훈 : 그때 당이 평화민주당인가요?

▷이상수 : 평화민주당이요. 무조건 해, 내가 도와줄게, 그래서 그때 그냥 대변인을 했는데. 저는 일반적으로 대변인이 언론인 출신이나 재선 의원쯤이 해야 되죠. 그래서 그 당시만 해도 한나라당은 김중의 3선 의원, 언론계 출신. 또 그 당시 꼬마민주당,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당은 서청원 의원, 재선 의원. 내가 평민당인데 초선 의원, 그래서 상당히 사람들이 놀랬어요. 저 사람이 어떻게 대변인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의외로 제가 곧이곧대로 막 하니까 그것이 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YS도 그렇고 저쪽에서도 우리도 한 번 법조인 대변인을 내보내보자, 해서 그때 서청원 다음에 이인제가 나왔잖아요? 또 한나라당에서도 박희태가 나와서 세 사람이 같이 대변인을 했어요. 법조인 대변인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박상천, 노무현 다 나왔더라고요. 

▶강동훈 : 저희들이 기자 초임 시절의 이야기인데, 벌써 3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그때 대변인들을 보면 참 문장이랄까, 그것이 굉장히 화려했고 명 대변인이다, 서로 인정해주는 그런 분위기도 있었어요.

▷이상수 : 그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굉장히 언론을 중시했고, 그래서 대변인 시절 때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술을 마시고 늦게 나가고 그래도 하여튼 언론인들하고 술 마셨다고 하면 다 익스큐즈... 그래가지고 아주 두 분이 언론을 좋아했고.

▶강동훈 : 두 분 다 역시 김대중 대변인, 김영삼 대변인 역할도 하셨거든요? 두 분 다?

▷이상수 : 그리고 그 때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김정겸 청와대 비서실장이 1년 동안 대통령을 모시면서 매일 아침 목욕재계하고 갔다고 해서 대단한 분이라고 했는데. 제가 해보니까 첫 날 언론인들하고도 술 마시고 그때는 술을 다 좋아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음날 아침을 꼭 다섯 시 쯤 동교동으로 가야 해요. 가서 인사드리고 같이 식사하면서 그날 할 일을 정하는데. 그때 제가 언제나 집에서 술 마시고 이랬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나가야 되지 않습니까? 샤워하고 대통령을 만나러 갔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김정겸 씨도 목욕재계한 것이 샤워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더라고요.

▶강동훈 : 아마 그랬을 겁니다. 냄새라든지 흐트러진 모습을 대통령께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중랑은 서울이란 말이에요? 이 대표님은 고향이 전남 여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역은 중랑으로 나가게 됐는지?

▷이상수 : 제가 처음에 국회의원을 나가겠다고 하니까 후배들이, 또 평민당을 들어가니까 이상수 의원, 이상수 선배 이해하자. 저 분은 고향이 여수니까 여수에서 나오려면 평민당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이해를 했어요. 내가 처음에 여수에서 나올 것을 생각을 해봤는데 딱 보니까 김충조 선배가 계시더라고요.

▶강동훈 : 같은 고대 선배이고 고향 선배시고?

▷이상수 : 예, 그 분이 세 번, 네 번 떨어져서 완전히 낭인이다시피 했어요. 마지막 기회인데. 내가 부딪히면 분명히 내가 공천 받지요. 내가 정말 부딪힐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선배님 하십시오, 하고 내가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 동대문서 나왔어요. 그것이 약간 좋게 보였던지 대변인 된 것에 하나의 원인이 됐죠.

▶강동훈 : 김중초,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당시에 민주당 사무총장, 국민회의 사무총장을 했잖아요? 그리고 끝날 때도 깔끔하게 물러서는 굉장히 웅변의 달변이시고. 그런데 그 선배를 위해서 정말 세 번 떨어지셨어요? 여수에서?

▷이상수 : 그 분은 정말 제가 만일에 부딪쳤으면 영영 국회의원을 못 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거기서는 한 번 되면 계속 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강동훈 : 중랑 이야기하니까 이 분을 빼고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국회의원 경선 당시에 경선에 13대 하고 14대에 떨어지셨나요? 14대에 떨어지셨을 때 상대방 진영의 국회의원이 이른바 탤런트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 씨였죠?

▷이상수 : 예, 이순재 선배님하고는 제가 두 번 붙었거든요? 두 번 붙은 것인데, 처음에는 제가 됐어요. 제가 육백 칠십 몇 표 차로 됐고, 두 번째는 이순재 선배가 됐어요. 유명한 <사랑이 뭐길래> 대발이 아빠로 나오셨으니까 졌는데. 하여튼 세 번째 붙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때 이순재 선배님이 <목욕탕집 사람들>, 그것으로 드라마로 나오려고 해서 제가 법적으로 클레임을 걸었죠. 안 된다, 해서 선관위에서 나오든지, 국회의원을 나오든지 양가택일을 하라고 해서 그 때 이순재 선배님이 나 이제 국회의원 하지 않겠다고 양보하는 바람에 3판 결승전은 못하고 말았죠. 그런데 두 사람이 두 번 붙으면서 굉장히 서로 간에 존경하고 사랑해주고 그래서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최근에 부천서 선거에 나왔을 때 당을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니까 후원회 회장이 돼서 아주 화제를 일으켰죠. 당도 다르고 옛날 싸웠던 상대방인데 저렇게 후원회 회장을 해주네, 할 정도로 그 선배님이 인품이 훌륭하시고 그래서 아주 좋은 화제를 남겼습니다.

▶강동훈 : 그러니까 국회를 출마할 때도 후보들의 등에 떠밀려서 나온 형태가 됐고, 그 다음에 14대 때는 소위 말하는 적군인 이순재 국회의원으로부터 오히려 그런 지지를 받고 있고, 후원회장도 했고. 지금 현재 국회의원이 서영교 의원이에요. 그 다음에 보좌관 하셨던 모 전 의원도 사실은 이상수 의원님의 그것을 봤고, 국회의원을 하셨고. 그러니까 사실은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들의 브릿지, 변호사들의 브릿지 역할을 많이 해 오신 것 같아요.

▷이상수 : 이아영 보좌관이 제가 옥고를 치렀을 때 저를 대신해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 억울해 보이는데 당신 부인을 국회의원으로 내보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상당히 우리 집사람도 자질이 괜찮은데 내가 그것은 아니다, 내가 안 된다고 딱 하고 우리 보좌관을 대신 국회의원으로 내보냈죠. 그것도 그 당시로 봐서는 잘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동훈 : 시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데. 이상수 대표님, 또 이상

수 장관님, 이상수 국회의원님 여러 가지 호칭이 있지만 이상수 대표님께서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중에 수필가로도 유명해요. 글도 잘 쓰시고, 대변인도 하셨다고 하니까. 원래 문학에 소질이 있었어요?

▷이상수 : 저는 사실 문학을 하고 싶었기도 하고 소설을 쓰고 싶은 그런 입장도 갖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도 문학 서클에서 자주 모여서 토론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제가 쓴 수필집이 두 권이 있는데 한 권은 수필대상도 받았죠. 

▶강동훈 : 또 제가 알고 보니, 노래도 굉장히 가곡도 잘 부르신다고 하는데, 주로 좋아하는 노래가?

▷이상수 : 노래는 가곡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고 제가 한국 오페라단의 후원회장을 8년을 지냈습니다. 아주 최단 기록을 세웠는데. 그래서 우리 오페라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도 했고요. 우리가 후원회에서 돈을 많이 걷어야 되요. 오페라는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후원회 문제가 사건 때문에 안 돼서 오페라를 못 열게 될 그런 상황이 돼서 내가 국무회의에서 노동부 장관으로서 그때 대통령이 계신 자리에서도 각 장관들이 좀 후원을 해주십시오, 해서 후원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죠. 그래서 노래도 좋아하고 그렇습니다.

▶강동훈 : 수필도, 글도 잘 쓰시고 노래도 잘하시고. 이제 변호사로 계속 활동 중이신데, 이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 역할을 계속 하시면서 앞으로 헌법이 개정되면 또 다른 일도 하시겠네요? 

▷이상수 : 저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고요.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바르게 살아온 선배로서 좋은 분이다, 라는 말을 듣고 살기를 기대하고요. 대신 내가 욕심이 없으니까 앞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서 쓴 소리는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강동훈 : 우리 정치가 혼탁이라는 표현은 요즘 안 씁니다만, 여야가 한 치도 양보도 없는 이런 부분이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정치에, 언론에 선배가 없다, 선배 역할이 좀 필요한데. 과거에 보면 김상현 의원이라든지 이런 분들이 없어서 아쉽다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역할을 잘 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BBS 뉴스와 사람들> 잘 말씀해주시고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인사말씀 한 번 부탁드립니다.

▷이상수 :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너무 제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서 송구스럽긴 한데요. 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불교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공부를 많이 하려고 하고 있고요. 심지어는 금강경을 한 번 암기해볼까, 라고 생각도 할 정도로 한 쪽으로 관심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방송을 듣는 혹시 불자님들 계시면 같이 열심히 해서 좋은 길로 같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강동훈 : 이상수 국회의원은 과거 고려대 불자회 회원이기도 하셨습니다. 이상수 의원님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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