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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구의 북악산 자락]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부쳐

기사승인 2018.01.12  07: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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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가진 새해 기자회견이 무성한 뒷말을 낳고 있습니다. 질문자들을 대통령이 즉석에서 손수 선택한 ‘각본 없는’ 1시간 30분 생방송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그 안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인터넷 무대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즉문즉답’의 난코스들을 별 어려움 없이 가뿐히 통과한 대통령의 말솜씨와 국정 이해력에 많은 국민들이 갈채를 보내는 듯 합니다. 반면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발언과 태도에는 신통치 않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완벽한 문전 찬스에서 허공으로 볼을 날린 축구선수 대하듯 하는 분위기도 읽힙니다. 일부 기자는 ‘촌철살인’은 고사하고 어쩜 그 따위 수준낮은 질문을 하느냐는 친여 성향 여론의 모진 시달림도 겪었습니다. 청와대 출입 경력이 있는 모 신문사 부장은 “기량을 마음껏 펼치게끔 ‘활짝 연’ 기자회견이 춘추관 상주 기자들을 완벽하게 기레기(기자+쓰레기)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탁현민 행정관이 총괄 기획했다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기자회견은 이렇듯 인기높은 대통령의 멋진 모습과 기레기들의 찌질함을 교차시키며 국민들에게 더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압도한 이번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역설적이게도 21세기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민낯을 슬쩍 드러내 보였습니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적폐 청산’과 ‘평등주의’, ‘보편적 복지’ 등 진보정책 기조의 ‘양면성’이 기자회견에 투영된 듯 했습니다. 그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의 실상은 소위 메이저 언론사들의 주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대학 서열처럼 고착화된 주류 언론계에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란 초대형 이벤트는 중소언론사, 지방 신문, 외신 등에게 구색 맞추기식 질문 기회만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정권의 청와대는 메이저 언론의 질문 특권을 과감히 없앴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으레 기자단 대표격인 총 간사가 해왔던 이전 정권 때의 ‘적폐’도 당연히 청산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고를때는 ‘보편적’ 혜택이 적용됐습니다. 앞 자리에 앉았다고 더 좋은 순번, 더 많은 횟수가 돌아가지 않게끔 구석진 곳에서 손을 드는 기자를 열심히 찾아서 지목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언론사별 질문의 기회는 정말 골고루 돌아갔습니다. 질문을 한 17명 기자의 소속사를 보면 지방지가 4곳, 외신이 3군데나 됐지만 지상파 TV는 1곳, 중앙 일간지는 2곳에 그쳤고, 거대 언론사인 KBS, MBC, 동아일보 등은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다수가 박수칠 이같은 열린 구조의 회견이 그만큼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쉽게도 정말 중요한 주제들이 질문에서 빠졌고, 질문 수준은 그야말로 ‘하향 평준화’라는 지적들이 쏟아졌습니다. 정국의 최대 관심사이자 야당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있는 ‘적폐청산’에 관해서는 아예 질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처럼 온갖 대책을 내놓고도 길을 잃고 있는 부동산 문제와 폭주기관차 같은 가계부채에 관해서도 질문이 없었습니다. 반면 무려 3명의 기자가 ‘지방분권 개헌’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개헌을 주제로 사실상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습니다. 누군가는 여러개의 질문을 동시에 던져놓고 대통령이 1가지만 선택해달라고 하자 “대통령의 선택에 맡기겠다”며 조았던 나사를 스스로 풀어버렸습니다. “보라색 옷 입은 것이 신의 한수였다”며 지명받은 기쁨을 감추지 않은 한 여기자는 ‘2기 내각 구성의 방향이 뭔가?’란 시점 안맞는 질문으로 아까운 기회를 허비했습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대통령을 쩔쩔매게 하지도, 심도깊은 질문으로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위상을 높이지도 못한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은 현재 대한민국 언론계가 처한 매우 불안하고 위태로운 지점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듯 합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구호를 최상의 미덕으로 삼아온 기자 사회마저도 언론 생태계 변화 속에서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돼버린 건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문재인 정권은 기자회견을 당연히 ‘베스트’였다고 자평하겠지만 드러난 문제점에는 함께 고민해볼 것을 기대합니다. 출중한 소통의 기자회견에 ‘적폐 청산’, ‘평등주의’, ‘보편적 복지’의 부정적 단면을 비춰본 것을 지나친 억지나 괜한 트집잡기라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바람입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이현구 기자 awakefish9@gmail.com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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