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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용수 할머니의 외침 “조선의 아이가 늙은이 돼…정부와 판사는 뭘 했나”

기사승인 2020.11.13  17: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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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1일, 이용수 할머니가 마지막 변론기일에 참석한 후 서울중앙지법을 빠져 나가고 있다.
2020년 11월 11일, 이용수 할머니가 마지막 변론기일에 참석한 후 서울중앙지법을 빠져 나가고 있다.

“겨우 집에 도착해 ‘엄마...’ 하고 울며 부르니, 어머니가 까무라치며 ‘오늘 제사인 줄 알고 혼이 왔구나, 우리 딸은 죽었는데 귀신이 왔다’며 짚단에 불을 붙이더라고...”

지난 1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스무 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마지막 변론 기일이 열렸습니다. 이 날은 원고 중 한 명이자 오랜 시간 위안부 역사를 알리는 데 힘써온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당사자 신문이 진행됐습니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꽉 맞잡았다 풀기를 반복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담담하게 진술을 이어가던 할머니는, 어머니와의 일화를 언급하며 결국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살아 돌아온 딸을 귀신이라 여길 만큼 어머니의 충격은 컸고, 때문에 1년 넘게 언니 방 안에만 머물러야 했다고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법정에서 흐느끼는 할머니를 바라보던 기자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잔혹한 세월 속에서 홀로 눈물을 삼켰을 10대 소녀 이용수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조선의 여자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대한민국 늙은이가 되어 이렇게 법원에 왔습니다. 나라 대 나라로 해결한다고 해서 믿고 또 기다렸습니다. 4년 전에 소송을 냈는데, 그동안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왜 못해줍니까!!”

이용수 할머니는 3년 넘게 공전했던 재판 절차와 뜨뜻미지근한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울분을 토했습니다. 사실 소송이 처음 제기된 건 4년 전이었지만, 첫 재판은 2019년 11월이 되어서야 열렸습니다. 다른 주권국가에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권 면제 원칙’을 이유로 일본이 계속 소장을 반송했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시간 속, 김복동곽예남 할머니 등 6명의 원고들은 법정에 한 번 서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재판 시작 이후 1년 사이에도 또 한 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이제 스무 명의 원고들 중 생존자는 네 명 뿐입니다. “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기다려줍니까, 해가 기다려줍니까?”라고 묻는 이용수 할머니의 외침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국제질서 속에서 배척됐던 피해자들이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지난 2004년 이탈리아 법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독일군의 불법행위를 두고, 독일 정부가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배상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후 국제사법재판소가 독일의 국가면제를 인정해주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이를 거부한 채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서 국가 면제를 적용하면 재판 청구권이 침해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처럼, 21세기 들어 주권 면제론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으며 적용의 폭 또한 점차 좁아지고 있습니다. 국제 엠네스티 역시, 주권면제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반한다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법원의 판단 뿐입니다. 국제 관습법과 헌법 사이에서 우리 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조윤정 기자 bbscho99@bbsi.co.kr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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