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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칼럼] 당근마켓과 전셋집 구하기

기사승인 2020.10.30  15: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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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마켓에서 처음 물건을 팔아봤다. 요즘 최고 핫하다는 중고거래 플랫폼이란 말만 듣던 중 용돈도 벌 겸 앱을 깔아서 안쓰는 전자제품 2개를 올렸다. 7.1인치 노트패드를 11만원에, 휴대폰 S펜을 1만원에서 내놨다. S펜은 거래창에 띄운지 5분도 채 안돼 거의 동시에 3명한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노트패드는 딱 한번 문의 채팅이 온 뒤 사흘간 감감무소식이다. S펜은 재빨리 직거래가 이뤄졌고, 노트패드는 가격을 낮춰야할 상황에 놓였다. 자본주의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이 새삼 느껴졌다. 사실 패드는 수험생 큰 아이의 인터넷 수업을 돕고자 중고로 구입한지 보름만에 산 가격 거의 그대로 내놔본 것이었다. 반면 S펜은 포장도 안뜯어 새 것이나 진배없지만 시세를 밑도는 가격에 ‘본전 생각’이 담겨있지 않았다. 동네 이웃간 거래의 ‘보이지 않는 손’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용인할 수 있는 제값을 신기하게도 정확히 찾아내고 있었다. 유기적인 기능의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주체의 속마음 마저 투영하는 것 아닐까 궁금해졌다.

   실상 내가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당근마켓에 올라온 엉뚱한 글들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데서 비롯된 것 같다. 2주 전 쯤 입양 절차를 밟던 미혼모가 당근마켓에 '태어난 지 36주 된 아이를 20만 원에 판다'는 글을 올려 엄청한 파장을 낳았다. 이후 아이를 거래하겠다고 올라온 또 다른 당근마켓 게시글은 한 중학생의 장난으로 밝혀지며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새 임대차 보호법 시행 후 귀하디 귀해진 아파트 전세 매물까지 당근마켓에 등장한 것도 심상치 않은 일이다. 매물 하나를 보려고 줄서기, 제비뽑기에 면접 까지 해야 하는 등 전셋집의 씨가 말라버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에 네이버, 직방, 다방등 대형 부동산 전문 플랫폼이 당국의 허위매물 집중단속 모니터링을 받고 있는 사이 사각지대를 노린 불법 행위도 가세한 듯 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지난 9월에만 부동산 광고시장 감시센터에 신고된 허위매물은 1천507건. 사상 최악의 전세난에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의 '미끼 상품'으로 세입자를 유혹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지친 서민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다. 당국과 기업은 방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하고 소비자는 ‘슬기로운 당근생활’이 뭔지를 생각할 시점을 맞았다.

   거액의 보증금을 들여 전셋집을 구하는 것과 당근마켓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비교 대상이 되기 힘들다. 삶의 체제를 갖추는 일에는 단순한 기호품 하나 선택하는 행위에 비할 수 없는 엄중함이 깃들어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두 일은 엄연히 ‘좋은 물건을 보다 저렴하게 손에 넣기 위한 선택’의 틀 안에 존재한다. 쉽게 말해 새 것이 아닌 헌 물건을 택하는 소비자의 위치가 공급자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시장 논리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온갖 상품으로 그야말로 장이 선 당근마켓과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춘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대한민국 동시대에 벌어지는 풍경이다. 새 임대차법의 주역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본인 마저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로 '전세 난민' 신세가 될 뻔했다가 위로금까지 줘서 내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세입자 계약 연장 보장이 끝나기 시작하는 2년 뒤면 온 나라에 전세 난민이 쏟아질 판이다. 서민들의 전셋집 구하기를 위정자들이 당근마켓에 넘쳐나는 중고물품 거래 정도로 여기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경제산업부 이현구 기자

이현구 기자 awakefish9@gmail.com

<저작권자 © 불교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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